<300>에 나오는 전투가 있기 전 10년 전인 기원전 490년에 1만 5천에 이르는 페르시아 군대가 아테네 북동쪽에 있는 마라톤 만에 상륙하여 1만의 아테네 군과 대결하였다. 바로 1차 페르시아 전쟁 이야기다. 이때도 페르시아의 대군을 그리스의 아테네가 승리하게 된다. 그리스 군이 페르시아군보다 우수한 무기를 가지고 있거나 우수한 무술을 갖추고 있었던 것일까?
군 전략가들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이때 아테네 군이 수적으로 열세하였음에도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밀집방진(方陣) 전법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리스 병사들은 밀집된 형태로 진을 구성하여 방패를 옆 사람과 겹치게 들어 반은 자신을 방어하고, 반은 자신의 왼쪽에 있는 병사를 보호하였다. 일대일 전투에만 익숙해 있던 페르시아 군은 그리스 병사들이 협력하며 벌이는 전투방식에 당황했고 결국 엄청난 타격을 입고 철수하고 만다. 잘 조직된 군대는 병사 한 명의 전력을 모두 합한 것보다 훨씬 월등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팔랑크스 진법이라 부르던 그리스의 밀집방진, 알렉산더 기병이 중앙을 돌진하며 펼쳤던 예진, 제갈량이 적병대전에서 펼쳤다는 팔문금쇄진, 소수로 다수를 포위하여 공격하는 이순신 장군의 학의진 등 전투에서의 진법은 조직을 통해 개개인의 힘을 합친 것 이상의 전력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단순히 숫자만 증가시켜도 전력은 증강하게 되어 있다. 작은 동물들은 떼를 이루어 다녀 더 크고 위협적으로 보이게 함으로써 포식자에게 덜 잡아 먹힌다. 하이에나는 사자에 비해 덩치도 작고 힘이 약하지만, 사자보다 무리의 숫자도 많고 잘 뭉치기 때문에 힘의 균형을 유지한다.
하지만 역할을 분담하여 협업하면 단순한 수의 증가 이상의 힘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이런 조직력은 사실 태초부터 존재하였다. 진화생물학자인 로빈 베이커 Robin Baker는 그의 저서 <정자전쟁>에서 정자전쟁이 단순히 난자를 향한 달리기 경주로 보면 오산이라고 강조한다. 정자가 난자를 향해 달려가다 보면 병균도 만나고 또 다른 남자의 정자도 만날 수 있다. 여성의 바람과 외도가 같은 특별한 경우에는 두 팀이 동시에 경주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자들도 그런 상황을 대비해 잘 조직된 군대 조직을 가지고 있다. 로빈 베이커는 정자는 보통 세 부대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방어조, 공격조, 침투조가 그것이다. 방어조는 질 입구를 자기 몸으로 틀어막아 다른 정자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공격조는 이미 들어와 있는 다른 정자를 가미가제 전법으로 공격한다. 침투조는 난자와의 결합을 목적으로 한 특수 부대다. 정자도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고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다. 선이란 그들의 공동목표인 자신들의 복제하고 번식시키는 것이다.
인간은 고대로부터 이러한 원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혼자 살지 않고 무리를 지어 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경쟁에 이기기 위한 전략으로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다. 중국의 전국시대에는 이런 외교전략을 합종연횡(合從連橫)이라 이름하였고, 오늘 날에는 전략적 제휴(Strategic Alliance)라고 부른다.
유라시아 대륙의 남서쪽에서 그리스와 페르시아가 충돌한 페르시아 전쟁 (BC 492경~449경), 그리스의 패권쟁탈을 위한 펠레폰네소스 전쟁(BC 431~404년), 알렉산더의 페르시아 정복전쟁(BC 334~323) 그리고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하게 된 포에니 전쟁(BC 264~BC 201) 등이 펼쳐지고 있을 무렵 중국대륙에서는 전국시대(戰國時代, Warring States)가 전개되고 있었다.

100여 개 나라로 나뉘어 할거하던 중국대륙이 전국시대에 와서는 한(韓) 위(魏) 조(趙) 제(齊) 진(秦) 초(楚) 연(燕) 등 소위 ‘전국 7웅’으로 압축되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던 시절이다. 이 전국시대가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게 될 진 나라가 두각을 나타나게 된다. 이때 소진(蘇秦)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연나라를 비롯해 조 위 한 초 제 등 여섯 나라가 남북으로 손을 잡아 힘을 합치면 강대국인 진나라에 대항할 수 있다”고 설득하고 다녔다. 강한 나라에 대항해야 하는 약소국의 위기의식을 간파한 여섯 나라는 연맹을 맺게 되고, 소진은 이 6국의 재상이 되었다. 이른바 합종책(合從策)이라는 것이다.
반면 소진과 같은 스승에게서 수학한 장의(張儀)는 “여섯 나라가 아무리 동맹을 맺었다 하더라도 진 나라로부터 고립된 나라는 하나씩 정벌 당할 수밖에 없다. 멸망하지 않으려면 강한 진 나라와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합종하여 연맹을 맺은 약소국들이지만, 장의의 설득력 있는 이 연횡책(連橫策)에 마음이 크게 흔들리고 만다. 이때부터 소진은 장의의 연횡책에 위기감을 느껴 위, 조, 한, 초, 연 5개국 합종을 추진해 초나라 왕을 맹주로 추대되어 진나라를 공격했으나 함곡관에서 대패하고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결국 약한 나라들이 결합하여 강한 나라를 이긴 것이 아니라 강한 진나라가 약한 나라를 하나씩 정벌하여 천하를 통일하게 된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뭉쳐야 하고 역으로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분열시키는 방법이 최선의 전략이라는 말이다. 손자는 “아군은 전부 한곳으로 집중하고 적을 열로 분산시키면 열개의 힘으로 적의 한곳을 공격하는 것이 된다 (我專爲一, 敵分爲十, 是以十攻其一也)”고 가르쳤다.
이런 전략은 오늘날 ‘기업전쟁’에서도 기본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간 세계대전은 가정용 비디오 시장에서 벌어진 소니의 베타와 파나소닉의 VHS간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소니의 베타가 기술적으로 우세했지만, 파나소닉은 VHS기술을 다른 회사에 개방하는 전략으로 대항했다. 결국 VHS방식의 기기가 늘어나고, 할리우드 영화사들도 동참하면서 컨텐츠가 늘어난 VHS에 1988년 소니는 패배를 인정하고 말았다. 이런 합종연횡의 전략은 기업세계에서도 계속된다. 비디오가 1차 대전이라면 2005년 시작된 2차 대전은 차세대DVD에서 벌어졌다. 이번에는 소니, 파나소닉, 삼성전자, LG전자, 필립스의 불루레이 연합군이 도시바와 NEC의 ‘HD DVD’ 동맹군을 누르고 승리를 거두었다. 일본 자동차업계에서 2위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어온 혼다와 닛산이 전기차 기간 부품의 공통화나 부품의 공동 조달, 소프트웨어의 공동 개발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이 같은 전쟁이 첨단산업이라고 불리는 분야에서 어김없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표준을 차지하기 위함이다. 만약 자신의 기술이나 제품이 국제표준으로 자리를 굳힐 경우 시장을 장악하게 되고, 시장을 장악하게 되면 수확체증의 법칙에 의해 오랫동안 승리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면 앞선 자는 더욱 앞서 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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