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째 날 제 1 교시: 문학 시간 –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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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빅 피쉬, Big Fish, 2003)>는 UPI 기자인 아들 윌(빌리 쿠루덥)과 기상천외한 ‘이야기’로 사람들을 사로잡던 허풍쟁이 아버지 에드워드(이완 맥그리거와 앨버트 피니)간의 오해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태생적으로 호기심이 많았던 윌의 아버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자신이 자라면서 또 여행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마치 재미있는 동화처럼 아들에게 들려준다. 아버지 에드워드는 자신은 태어나자마자 온 병원을 헤집고 다닐 정도로 별났고, 자라면서는 원인불명의 ‘성장병’으로 남보다 빨리 자랐다고 허풍을 친다. 학창시절에는 주변의 모든 일의 해결사였으며 만능 스포츠맨이었다고 과장된 전력을 늘어놓는다. 누구나 과장되게 기억하고 있는 자신의 성장기 이야기 외에도 그의 인생은 평범하지 않은 모험담으로 가득하다. 동굴에서 만난 거인과 맺은 우정, 자신의 죽는 장면을 보여준다는 마녀의 유리눈알, 늑대인간인 서커스 단장, 신비로운 호수에서 만났다는 큰 물고기와의 인연 등 그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나중에 아버지의 병상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이야기가 있어 행복했으며 많은 사람이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위안을 얻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아들 윌은 점차 그런 아버지의 이야기를 지겨워 한다. 아들 윌은 아버지의 삶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우리 아버지 이야기는 8할의 거짓말과 2할의 과장으로 이루어 져있다. (In telling the story of my father’s life, it’s impossible to separate the fact from the fiction.)”


영화 <빅 피쉬>의 제작진은 자신들의 영화를 ‘거짓과 진실이 만나는 순간 건져 올린 아주 특별한 행복’을 그린 영화라고 소개하고 있다. 거짓과 진실이 만나면 결국 진실이 아닌 거짓이 될 수 밖에 없다. 거짓이란 것도 진실의 일부를 가지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사실 우리는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언어 자체가 그렇다. 말이란 느낌을 나타내는 기호이며, 표현을 위한 약속에 불과하다. <오쇼의 짜라투스트라>의 저자 오쇼Osho Rajneesh는 그래서 “진리를 경험한 사람이 절대적으로 진실만을 말하고자 한다면, 그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그땐 침묵이 유일한 표현 수단이다. 그러나 누가 침묵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이야기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말이나 글 또는 동작으로 표현하는 행위다. 이런 수단으로는 시간적으로나 방법적으로 실제를 그대로 재현할 수 없다.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경험 모든 것을 표현하려고 든다면 아마도 정말 재미없고 따분한 이야기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루트번스타인은 “글쓰기의 본질은 종이 위에 단어를 늘어 놓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골라내고 버리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모든 글과 말은 실제의 일부 특징만을 형상화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수단에 한계가 있는데다가 우리는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해석을 더하게 되고 결국 누구나 조금씩 거짓말을 하고 있다. 여기에 윌의 아버지 에드워드처럼 2%의 과장으로 포장하게 되면, 거짓말이 안될 수 없는 거다. 기억, 해석, 과장이라는 순서를 거치면서 우리가 실제로 경험한 것과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것에는 늘 차이가 존재하게 되어있다. 만약 상대방의 경험치나 보유하고 있는 지식이 나와 다르다면 전혀 엉뚱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인간의 그런 특징을 잘 이해하고 있는 우리는 서로 적당히 조절해서 받아들이는 지혜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누구나 조금씩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면서 살고 있다.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다고 해도, 보통 사람들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짓말의 긍정적인 면을 인정하기도 한다. 진실을 말하고 살아야 하지만 진실이 자유자재로 모습을 드러내면 난감한 상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위 ‘벌거벗은 진실’이라고 하는 것은 많은 사람을 당혹스럽게 하기도 하지만, 지루하게 만들기도 한다. 진실 그 자체가 환영 받지 못하는 경우다. <스토리텔링: 대화와 협상의 마이더스>의 저자 아네트 시몬스Annette Simmons는 그래서 “이야기는 진실에 따뜻한 옷을 입힌 것과 같다”고 이야기 한다. 상상력을 통해 재창조된 따뜻한 이야기는 진실보다 쉽게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다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진실이란 때로 밋밋하거나 때론 너무 복잡해서 그대로 전달하면 무엇인가 결핍되어 있거나 아니면 혼란스러운 것이 되고 만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조금씩 변형하여 이야기로 만들어 낸다.


<제이콥의 거짓말>의 제이콥은 다른 사람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 그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는 거의 창작활동에 가깝다. 제이콥은 생생한 뉴스를 만들기 위해 독일군의 캠프를 들여다 보기도 하면서, 독일군의 패배, 미군의 참전, 당시 유명한 미국의 음악가와 가수인 베니 굳맨과 앤드류 자매의 유럽 방문까지도 지어낸다. 죽음을 무릅쓴 이런 활동을 창작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제이콥의 이야기처럼 모든 창작에는 고통이 따르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 인간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기도 한다.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듣기를 좋아한다. 왜 그럴까? 이야기가 우리의 생존을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잘못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진실로부터 멀어질 수도 있는 데 말이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우리 인간은 연산보다는 귀납적인 사고에 강하다. 몇 가지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 능력은 이미 언급하였듯이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이 네트워크로 잘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의 사실이나 생각이 이미 가지고 있는 수만 가지의 생각을 촉발하여 새로운 생각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낸다. 그런 능력이 우리 상상력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생각의 네트워크를 수시로 변화시키고 강화시키는 과정이다. 크기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런 능력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인간 모두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지기(知己)에서의 ‘상상하기’는 아무 제한 조건 없이 그냥 상상의 날개를 펴고 날아보는 종류의 것이다. 지피(知彼)의 ‘추론하기’는 세상에 보이는 일부를 가지고 나머지를 찾아보는 또 다른 ‘상상하기’였다면, 지피지기(知彼知己)의 ‘따라하기’는 상상력을 동원해 창의적이며 가치 있는 것을 만드는 것이다. ‘이야기 만들기’도 그런 창의적인 활동의 하나다.


결국은 우리 뇌의 활동하는 원리가 그렇게 되어있다. 우리는 책에서 얻는 지식보다는 경험을 통해 구해진 정보를 더 오래 기억한다. 지식이나 정보가 독자적으로 기억되기는 어렵지만, 관련된 지식과 연결되어 있다면 보다 오래 저장할 수 있다. 아무리 작은 경험이라도 그것에는 여러 가지 지식이나 정보가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우리 인간은 태초부터 그렇게 지식을 축적해 왔다. 언어를 발전시키고 글이 발명되면서 더 효율적으로 그리고 더 많은 지식을 획득하기 위해 글을 쓰고 또 글을 통해 지식을 얻어왔을 뿐이지, 진정한 지식은 자신의 체험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독서를 간접경험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간접경험도 가능한 우리가 직접 체험하는 방법처럼 이야기로 구성되어야 그나마 효과적일 수 밖에 없다. 단편적으로 얻어진 지식은 어떤 방법이든지 다른 지식과 연계되어야 지속될 수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도 자신의 경험 또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인 소설이나 영화 등을 통해 다시 강화되어, 나의 일부가 된다. 그런 지식만이 내가 알고 있는 것이고 일상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물리학의 원리를 다 안다고 해서, 삶 속에서 더 현명해 지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루트번스타인은 그의 저서 <생각의 탄생>의 서론에 기계학과 물리는 잘하지만, 오래된 여닫이 문도 잘 못 여는 학생의 사례를 든다. 자신이 배운 이론과 실재세계의 물리적 원리를 연결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뇌의 힘을 키워라>의 저자 이승헌은 “우리의 뇌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받는 것보다 경험으로 얻는 체험적 정보를 더 오래, 더 깊이 기억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이야기는 우리가 학습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란 하나의 ‘과거’가 아니라 ‘과거의 체험들’을 재료로 새롭게 직조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과 색을 더하여 씨실과 날실을 서로 얽어가며 짜다 보면 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이야기가 나타나게 된다. ‘보고 싶다’는 말을 ‘목마르게 보고 싶다’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글 쓰는 기술만 가지고도 그리움을 더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다. 하지만 표현의 방법이나 기술보다 늘 재료의 질이 이야기를 결정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소설가들은 모두 엄청난 독서량과 다양한 삶의 경험을 자랑한다. 스스로 밝히지 않더라도 그들이 만들어 놓은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하나의 소설에 등장하는 그 많은 사람들이 뱉어 내놓은 대사를 한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삼국지에는 400명이 넘는 등장인물이 있다고 한다. 이 소설을 잘 읽기 위해 <삼국지사전>이나 <삼국지 인물사전>이 나왔을 정도다. 일반적으로 나관중이 삼국지의 저자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나관중의 단독 창작물이 아니라 중국 삼국시대 이후 1,500년을 거쳐 민담이나 전설, 문인들의 재창작물이 첨가된 집단 창작물이라고 한다. 반면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는 700여명의 인물이 등장한다고 한다. 그들 하나하나의 인생을 저자 한 사람이 모두를 경험한 듯 생생한 인물로 살려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우리는 소설가들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뛰어난 상상력에 매료되어 이야기에 빠져든다. <해리포터>시리즈의 작가 조앤 롤랭은 이야기만으로 1조원이 넘는 부자가 되었다. 하기는 영화라는 이야기를 통해 스타가 되고 부자가 된 사람은 셀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소설가나 시나리오 작가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매일매일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드림 소사이어티>의 저자인 미래학자 롤프 옌센Rolf Jensen은 정보화 시대의 뒤를 이을 사회로 드림 소사이어티를 예견한다. 그는 사실에 기반을 든 정보화 사회는 이미 황혼기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하면서, 이제 감성이 인간의 능력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시대를 전망한다. 회사들은 이야기와 신화를 기반으로 성장하게 되며, 제품이 아니라 이야기를 팔게 될 것이다. 경영 컨설턴트이며 <미래를 경영하라>의 저자 톰 피터스Tom Peters가 미래의 기업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파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팔아야 한다는 말과도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이야기가 우리 삶에서 있어서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 오늘 날만의 일은 아닌 듯하다. 기원전 400년에 활동하던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사회를 지배한다”고 말한 것만을 봐도 그렇다. 오늘날 이야기가 더 중시되는 것은 어쩌면 물질적 풍요와 넘쳐나는 정보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어느 정도 실현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웬만해서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말일 수도 있다.


여하튼 유능한 영업사원도, 기업가도 정치가도 이야기로 사람들을 사로 잡는다. 뛰어난 영업사원은 같은 상품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낸다. 기업의 마케팅에도 이야기는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활약 중이다. 마케터들은 자신의 상품을 이야기로 만들어 내기 위하여 열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는 상품개발 과정이나 창업자의 경험을 이야기로 만들어 낸다. 현대 중공업은 현대그룹의 창업자 정주영이 한 대학에서 특강을 하는 장면을 광고로 활용하고 있다. “당시 가지고 있었던 건 백사장과 설계도면뿐이었지만 해외로 나가 자금을 조달하고 당당하게 수주했다”는 기업가 정신이 가득한 조선소 설립 과정을 설명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유럽의 생수업체인 에비앙은 1789년 알프스의 작은 마을 에비앙에서 한 귀족이 지하수를 먹고 병을 치유함으로써 생수판매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브랜드 강화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원어데이(www.oneaday.co.kr)는 그들이 팔고 있는 상품 하나하나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에세이나 만화로 창조해 낸다. 기업의 리더는 회사의 비전과 전략을 이야기로 만들어, 회사의 구성원과 고객을 만난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도 만만치 않은 이야기꾼이다. 윈도우의 새로운 버전을 시장에 낼 때마다 그는 현재 나온 신제품이 아닌 다음 버전을 예고하면서 언론이 흥미를 가질만한 이야기 거리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이야기의 대상이 된다. 우리가 몇 번씩 그의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 교수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는 “우리 시대의 리더는 다름 아닌 ‘스토리텔러(Storyteller)’”라고 말한다. 역사상의 뛰어난 정치가들은 사실 모두 이야기 꾼이었다. 자신의 비전을 누가 더 대중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내느냐가 정치인의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의 처칠이나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 그리고 맥아더 장군 등이 대표적인 이야기 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야기를 잘하는 대통령들이 있었지만, 끝을 맺지는 못했다.


<빅 피쉬>에 등장하는 윌의 아버지 에드워드도 이야기를 재미있게 한다. 조금은 황당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 때문에 에드워드를 좋아한다. 우리도 주변에서 이야기꾼을 만난다. 같은 이야기라도 실감나고 재미있게 만들어 내는 능력이 그들에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야기는 재미있어야 한다. 그런데 재미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기본적으로 우리의 욕구와 관련된 것이겠지만, 뇌 과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새로운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새롭다는 것은 우리의 예상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드시 새로운 정보나 경험에 대한 이야기일 필요는 없다. 남과 다른 시각, 입장의 전환, 배경의 변화 같은 것들이 모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물론 재미라는 것조차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 크게 두 가지의 재미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깊은 생각을 통해서 지적으로 느끼는 재미와 우스운 소리나 장면을 대했을 때 경험하는 단순한 재미가 그것이다. 2004년 6월 8일자 동아일보(www.donga.com)는 고려대 교육과의 김성일 교수를 책임자로 한 고려대, 서울대 그리고 성균관대학의 공동연구팀의 연구결과를 과학기사로 실었다. 그들은 재미를 느낄 때와 그렇지 않은 때 뇌의 반응이 다르며, 재미의 유형에 따라 반응하는 영역이 다르다는 사실을 보고하고 있다. 지네가 내기에 져서 심부름을 갔다. 한참이 지나도 지네가 돌아오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이들 연구팀이 실험을 위해 사용한 퀴즈다. 만약 “지네의 걸음이 워낙 느렸다”고 답을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임으로 재미가 없다. 하지만 “지네가 아직도 스물 세 번째 신발의 끈을 묶고 있었다”고 답을 한다면 어떤가? 지네는 발이 많다는 지식을 자극하는 재미와 그 많은 발에 신발을 신느라 애를 쓰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상하면서 느끼는 정서적인 재미가 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이 단순한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것에 반응한다.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자신을 차별화하고 남보다 빠르게 성장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성장을 갈망하는 사람일수록 지루한 것을 참아내지 못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다.


새롭다는 것 자체가 상상력의 산물이다. 하지만 여러 번 강조했듯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창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씩 비틀어 이단자를 만들어 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할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학을 지금까지 나왔던 글과 글의 틈새를 채우는 작업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창조가 아니라 남이 쓴 글을 다른 형태로 반복할 뿐이라는 말이다. 수 많은 사랑의 이야기가 만들어 지고 있지만, 대부분 그 내용의 원형은 크게 변하지 않고 존재하고 있다. 다만 다양한 형태로 재창조되어 가는 것뿐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집안이 다르다는 이유로 벌어진 사랑의 비극이다. 1970년에 발표된 영화 <러브스토리>는 시한부 인생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실제로는 신분이 다른 남녀의 사랑이야기이기 때문에 흥미를 더한다. <러브스토리>의 남자 주인공 올리버는 할아버지 이름을 딴 강당이 하버드에 있는 어마어마한 집안에 속하는 반면 제니는 홀아버지와 살아가는 가난한 집안의 외동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야기는 그 밖의 많은 사랑이야기에 원형이 된다.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흥행에 성공한 뮬란은 중국 설화에서, 알라딘은 아랍 이야기에서, 포카혼타스는 인디언 이야기에서 소재를 구했다고 한다. 오늘날의 감성에 맞도록 재창조되었지만, 이야기의 핵심 줄거리는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할리우드의 영화사들은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재구성하는 데에도 한계에 달했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점차 아시아의 이야기를 찾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2006년 발표된 키아누 리브스와 산드라 블록이 주연한 <레이크하우스>는 한국영화 <시월애>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홍콩 영화 <무간도>는 할리우드로 넘어가 <디파티드>라는 이름으로 재창조되었다. 이뿐 아니라 <조폭마누라>, <엽기적인 그녀>, <달마야 놀자>, <가문의 영광>, <광복절 특사> 등의 이야기가 할리우드로 팔려가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 지고 있다. 자신의 영역에서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없다면 할리우드 사람들처럼 공간을 달리해 소재를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며, 지구상 그 어떤 곳에서도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없다면 시간을 달리해 과거로 돌아가 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과거의 것이라도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형식만 다를 뿐이지 이야기도 다른 창조적 활동과 마찬가지로 ‘진화’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기존의 것을 단순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급하였던 것처럼 고정관념이 우리의 상상력을 방해하는 유일한 방해요인임으로 새로운 시각만으로도 창의력을 자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체험 마케팅>의 저자 컬럼비아 대학의 번트 슈미트Bernd Schmitt는 이 고정관념을 힌두교의 금기인 성우(聖牛)에 비유하며,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우리를 “저주에 걸려 매일 산을 향해 반복해서 바위를 굴려야 하는 시지프스’라고 부른다. 창조적이 되기 위해서는 “시지프스가 아니라, 트로이 목마 하나로 10년의 전쟁을 뒤집은 오디세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나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기술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롭다는 것 이외의 몇 가지 원칙이 더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중 하나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결하고 단순해야 하며, 들려주는 이야기에 대하여 스토리메이커 자신이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감동을 주는 이야기일수록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그만큼 이야기 자체가 강력한 재미와 주제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역으로 재미없는 이야기일수록 화장하는 시간도 길어지고, 많은 화장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특히 시간이 제한된 이야기일수록 간결하고 단순해야 한다는 것은 중요한 덕목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설은 모두 짧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라는 구절로 유명한 링컨Abraham Lincoln의 게티츠버그 연설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으며, 링컨이 대통령이 된지 정확하게 100년 후인 1961년 대통령에 당선된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가 “여러분의 조국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들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자문해보라(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고 말한 취임사는 단 15분이었다.

단순한 메시지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게 나름대로의 해석할 수 있는 여백을 준다. 단순함이란 비록 현실과 괴리가 있음을 시사하지만, 여백을 통해 각자 채워 넣을 수 있는 여유를 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온갖 나무와 꽃으로 빈틈없이 꽉 들어찬 아름다운 정원에서 숨막힘을 느끼는 반면 소박한 시골정원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경우가 그렇다. 정말 좋은 시에서 감동을 느끼듯이 말이다.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이야기에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역으로 이야기하면, 확신이 없는 이야기를 쉽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신이 팔고 있는 상품에 자신이 있는 세일즈맨의 이야기는 활기에 차있기 마련이다. <스토리텔링>의 저자 아네트 시몬스는 자사의 가전제품으로 채워진 집에서 일주일 동안 생활하면서 영업훈련을 하는 월풀이라는 회사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른 창작물과 같이 좋은 이야기는 오랜 준비기간을 걸쳐 얻은 확신에서 나온다.


우리는 모두는 하나의 소설이다. 주변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야기 거리가 없는 사람들이 없으며, 그것도 하나같이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스토리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 수 있다고, <나는 내가 낯설다>의 티모시 윌슨은 지적하고 있다. 아니 진정한 자신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자신을 과대 포장하기 위해 펴내는 자서전이 아니라도 그렇다. 누구라도 지내온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의식에 맞도록 재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슬프고 아픈 상처를 마음에 가지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자주 기억할수록 잘못하면 점차 더 슬픈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가능하다면 그런 상처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재구성한 이야기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어차피 정확하게 그 상황을 모두 떠올리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고생했던 경험을 나를 이만큼 강하게 만들기 위한 훈련의 이야기로 만들어 보는 것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우리는 현재 이 순간 과거의 이야기가 만들어 낸 소설이기도 하지만, 미래의 이야기를 써나가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런 ‘이야기 만들기’도 티모시 윌슨의 말대로라면 나의 의식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나의 무의식과 함께 해야 한다. 그렇다면 수시로 나의 무의식과 대화할 필요가 있다. 화가 나고 절망스런 일을 만날수록 더 그렇다. 쓸데없이 기분이 나빠지고 화가 난다면 나 자신에게 “왜 또 화가 나셨수?”라고 물어 볼 수도 있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는 SK의 기업광고처럼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실패를 극복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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