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인과 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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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 민은 그냥 사람을 가리키는 글자로 알고 지냈다. 그런데 최근 사회적 갈등을 논하는 방송에서 인은 지배층을 가리키고 민은 피지배층을 가리킨다는 말에 갑자기 궁금증이 발동했다. 나이를 먹으며 별의 별 것들이 다 궁금해진다. 그래서 이 두 글자를 어떻게 인식하며 사용해 왔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는 실제로 어떤 의미로 활용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의외로 이런 차이에 대한 주제는 상당히 오랫동안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였다.

子曰 道千乘之國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以時

(공자가 말했다. 천 수레의 나라를 다스릴 때는 일을 신중하게 처리하여 백성들의 신뢰를 얻어야 하며, 씀씀이를 절약하고 백성들을 사랑해야 하며, 백성들을 동원할 때는 때를 가려서 해야 한다.)

논어의 20편 중 첫째 편인 ‘학이’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인과 민의 차이를 설명하는 사람들은 이 문장에서 특별히 ‘愛人 使民’에 주목한다.

일단 두 글자에 집중해 보자. ‘인(人)’과 ‘민(民)’은 모두 사람을 뜻하지만, 그 쓰임새를 살펴보면 단순한 동의어가 아니다. ‘인’은 개별적인 존재를 강조하고, ‘민’은 집단적 정체성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기업인(企業人)’, ‘언론인(言論人)’, ‘연예인(演藝人)’ 같은 단어에서 보이듯이, ‘인’은 특정한 역할을 가진 독립적 개인을 의미한다. 반면, ‘국민(國民)’, ‘시민(市民)’, ‘농민(農民)’, ‘서민(庶民)’처럼 ‘민’이 들어간 단어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집단적 정체성을 강조한다.


역사적으로 ‘인(人)’과 ‘민(民)’이 계급적 차이를 의미하기도 했다. 조선 시대를 보면, ‘인(人)’은 주로 신분이 높거나 독립적인 개인으로 인정받는 계층을 의미했다. ‘양인(良人)’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법적으로 자유로운 신분을 가진 사람들에게 ‘인’이라는 글자가 쓰였다. 반면, ‘민(民)’은 주로 농민이나 노동자 같은 피지배층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다. ‘민란(民亂, 백성의 반란)’이라는 단어가 대표적이다. ‘양인(良人)’과 ‘천민(賤民)’이라는 표현처럼, 과거 사회에서는 ‘인’과 ‘민’이 신분적 차이를 반영하기도 했다. 논어에 나오는 ‘애인(愛人)’과 ‘사민(使民)’의 의미가 조금 드러나는 장면이다. 인은 사랑하고 민은 부리는 대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성 안 즉 도시에 사는 사람은 ‘인’, 성 밖 또는 시골에 사는 사람은 ‘민’이라는 글자를 사용한 것이다. 예를 들어, 도시에 거주하며 글을 쓰는 사람은 ‘언론인(言論人)’, 시장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상인(商人)’이라고 불렀다. 반면, 농촌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농민(農民)’, 바닷가에서 생업을 이어가는 사람은 ‘어민(漁民)’이라는 단어로 불렸다. 이는 단순한 직업 구분을 넘어, 도시와 지방, 상류층과 서민층의 구별이 언어 속에서도 드러났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현상이다.


이러한 개념은 중국에서도 명확하게 구별된다. ‘인(人)’은 개인적인 존재를 뜻하며, 법률이나 철학적 개념에서 많이 사용된다. 예를 들어, ‘인권(人權, human rights)’이라는 단어는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반면, ‘민(民)’은 정치적이고 집단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의 공식 명칭인 ‘중화인민공화국(中华人民共和国)’에서 ‘인민(人民)’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국민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조직된 대중을 의미한다. 마오쩌둥 시대 이후 ‘인민 해방군(人民解放军)’, ‘인민 재판소(人民法院)’, ‘인민 공화국(人民共和国)’과 같은 용어가 사용되면서, ‘민(民)’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집단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핵심 개념이 되었다.


영어에서도 이러한 차이를 어느 정도 반영할 수 있다. ‘인(人)’은 개별적인 존재를 강조하므로 ‘Person’ 또는 ‘Individual’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예를 들어, ‘기업인’은 ‘Businessperson’, ‘언론인’은 ‘Journalist’, ‘연예인’은 ‘Entertainer’처럼 번역된다. 반면, ‘민(民)’은 집단적 속성을 강조하므로 ‘People’이나 ‘The Public’이 적절하다. ‘국민(國民)’은 ‘Citizens’, ‘인민(人民)’은 사회주의적 색채를 반영할 때 ‘The People’, ‘민중(民衆)’은 ‘The Masses’로 번역될 수 있다. ‘Person’이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를 의미하는 반면, ‘People’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사람들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영어에서도 ‘인’과 ‘민’의 차이가 반영되는 셈이다.


결국, 우리는 ‘인(人)’이면서 동시에 ‘민(民)’이다. 개별적인 존재로 살아가면서도 사회의 일부로서 기능한다. 출퇴근길의 지하철에서 우리는 익명의 ‘민’이지만, 회사에서는 특정한 역할을 맡은 ‘인’이 된다. 투표할 때는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때는 ‘서민’으로 불린다. ‘인’과 ‘민’ 사이에서 우리는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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