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 날 제 3 교시: 인문학 시간 – 통합으로 찾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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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어드벤처 영화의 공통점은 하나의 보물을 찾기 위해 다양한 단서를 종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Indiana Jones And The Last Crusade, 1989)>에서는 포르투갈의 해안, 앙카라의 북쪽, 베니스 등 세계의 곳곳에 숨겨 있는 단서들을 결합해서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사용했다는 성배를 찾는다. <내셔널 트레져 (National Treasure, 2004)>의 주인공 니콜라스 케이지는 미국의 역사에서 단서를 찾아 직소 퍼즐(Jigsaw puzzle)을 맞추듯 보물 지도를 그려 나간다. 한국의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1999>이라는 영화에서는 흡사 난수표와도 같은 이상(李箱)의 시를 단서로 각종 역사적 미스터리를 풀어간다. 이런 종류의 영화가 가지는 특징은 누군가 보물을 찾을 수 있는 지도나 설명서를 여러 개로 나누어 숨겨 놓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인공은 이런 단서를 모두 종합해야 임무를 완성할 수 있게 된다.

분석이란 쉽게 말하면 복잡한 실체를 잘게 잘라보는 것이다. 반면 종합이란 그 조각들을 다시 재구성해 보는 생각의 방법이다. 분석을 통해 우리는 중복되거나 불필요한 정보를 걸러내어 근본 물질이나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 이제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석된 내용들을 종합해 내야 한다. 분석된 조각들을 비교하고 묶어내고 연결해 보는 것이 종합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이다. 같은 종류들은 한 유형으로 분류하고, 분석된 조각들에게 관계를 부여하여 논리를 가지고 묶어내야 한다. 그 중에 어떤 것들은 다른 것의 부분집합일 수도 있고 단순한 구성요소에 해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어느 하나는 다른 것의 원인이 되고 또 어떤 것은 그에 대한 결과일 수도 있다. 이렇게 종합하는 과정에서 만약 잃어버린 조각이나 보이지 않는 파편이 있다면, 우리는 ‘상상’과 ‘모형’을 통해 연결고리를 추론해 내야 한다. 조각으로 드러난 한 실체를 보고 “왜 그런데(Why so)?” 또는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So what)?”라고 물어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미 알려진 원리와 이치를 알고 있다면 위의 질문에 답을 간단히 내놓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아니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양한 시각을 모아 전체의 그림을 만들어 내야 통합적 이해가 가능하다. 숲의 나무를 관찰한 후 다시 숲을 만들어 보는 것이기도 하다. 화학의 주기율표나 생물의 계통수는 그런 통합을 통해 얻어진 결과물이다. 사실은 분석하고 종합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지식이 축적되고 지혜가 증가한다. 그런 의미에서 존 모리슨John A. Morrison이 이야기한 “지식은 분석을 통해 얻어지지만, 지혜는 그 모든 것의 통합을 통해 얻어 진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통합은 지금까지 논의한 생각의 방법들을 모두 활용하는 것이다. 무엇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과 경험을 결합하는 일이기도 하다. 자기가 아는 만큼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똑 같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모두 똑같이 이해하지는 않는다. 이해한다는 것은 알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통합하는 능력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총명하다는 말은 남들과 같은 지식을 가지고 더 잘 조합하는 능력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루트번스타인은 이런 이해력을 종합지(綜合知, Synosia)라고 부른다. Synosia는 그리스어의 통합을 뜻하는 ‘Syn’과 이성이나 인식의 작용을 뜻하는 ‘Noesis’를 합성해 만들어낸 루트번스타인의 작품이다. 그는 “창조적 이해가 갖고 있는 통합적 성격을 인지하는 일은 너무 드물기 때문에 이에 해당하는 마땅한 단어가 없었다고” 새로운 단어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학교나 일상의 경험 그리고 심지어 놀이에서 지식을 배운다. 하지만 그 지식은 우리가 배우는 일부에 불과하다. 지식의 습득만큼 우리는 생각의 방법을 배워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술은 단순히 무엇인가 그려내는 작업이 아니다. 사물을 관찰하고 그 특징을 찾아내고 그 감동을 추상화하면서 우리는 많은 생각의 훈련을 한다. 단순해 보이는 그림을 그리는 일도 관찰력과 분석력 그리고 형상화 능력 그리고 상상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런 훈련을 통해 우리는 다른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키운다. 루트번스타인이 과학자들에게도 미술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학은 현상을 단순화하는 생각을 훈련시킨다. 수학은 연산이라는 생각의 훈련을 통해 우리의 뇌를 단련시켜준다. 생물학은 분류하는 능력을, 화학은 분석하고 종합하는 능력을, 철학은 논리적인 생각을 키워준다. 이렇게 종합적으로 훈련해온 것이 우리의 생각하는 능력을 결정한다.


통합적 사고는 어쩌면 자신의 생각만을 종합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진정한 통합은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을 받아들이고, 그들이 얻어낸 성과와 나의 독창적인 사고가 합해지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사람들은 경험과 학습에서 얻은 지식들은 점차 통합되면서 자신의 지혜를 만들어 나간다. 혼자서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수고로 얻어진 분석을 자신의 분석과 통합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바로 이 순간 글을 쓰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자극을 받은 것들이며, 내가 여기에 쓰고 있는 글들의 일부가 다른 사람들의 새로운 생각을 유발시킬지도 모른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중세를 거쳐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은 물체가 힘을 받으면 움직이고 힘을 받지 않으면 정지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물체가 힘을 받지 않으면 직선 위를 일정한 빠르기로 계속 움직인다는 점을 증명하였다. 그것이 갈릴레오의 관성의 법칙이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는 지구가 중심이라는 생각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다시 케플러Johannes Kepler를 자극하여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되, 일반적으로 상상했던 원모양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낸다. 지구를 포함한 행성이 태양을 원형이 아닌 타원형으로 돌고 있다는 발견은 케플러의 스승 티코 브라헤Tycho Brahe의 관측자료 덕분이었다. 뉴턴 이전 사람들은 두 물체가 접촉하였을 때만 힘이 작용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멀리 떨어진 물체 사이에도 힘이 작용할 것이라는 만유인력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생각이었을 것이다. 만유인력이 작용한다면 행성은 태양 방향으로 끌려가야 하는 데,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이런 현상은 뉴턴의 만유인력, 갈릴레오의 관성의 법칙, 케플러의 행성운동의 법칙을 통합해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들이 현재 알고 있는 세상에 대한 지식 대부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얻어낸 지식이 결합되고 진화되면서 얻어낸 것들이다. 원래 학문이 지금처럼 다양한 분야로 세분화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식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학문 역시 공장의 분업화처럼 각자의 분야에서 더 깊은 전문성을 요구하면서 학문의 분업화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발전이 각 학문 특히 과학의 세계를 놀라울 정도로 발전시켰다.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마치 각자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처럼 각 학문 분야의 언어와 사고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용에는 반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학문적 통합을 통해 진리를 탐구해야 하며, 전인적 교육을 통한 통찰력을 키워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별히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는 거대한 통합 학문 이론을 통섭이라 부르며 그러한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통섭(統攝)은 지식의 대통합을 뜻하는 라틴어 계통의 영어 ‘컨실리언스(Consilience)’와 같은 의미로, 원효대사는 일찍이 ‘모든 것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자주 사용했다고 한다. 루트번스타인의 종합지와도 같은 개념이 된다. 통섭이라는 단어가 일상에 사용하는 말도 아니고 새롭게 강조되는 말이기는 하지만, 통섭 그 자체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다방면에 걸쳐 학문적, 예술적 업적을 남긴 아리스토텔레스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정약용 같은 동서고금의 대가들은 통섭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였다. 당시의 지식의 총량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던 시대였기는 하다. 한 개인은 재능만 있으면 통섭적인 지식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란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방법론을 총동원해야 가까워 질 수 있는 것이다. 13세기 통일신라말기의 학자 최치원은 화랑인 난랑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지은 난랑비서(鸞郞碑序)에 당시 우리나라의 철학은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를 통합한 것’이었다고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우리나라에는 현묘한 도(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고 한다. 이 풍류사상은 유교와 불교와 도교를 포함한 것으로서, 많은 사람을 교화시켰다. 가정에서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고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은 공자의 가르침[충효]과 같고, 모든 일을 순리에 따라 묵묵히 실행하는 것은 노자의 가르침[무위]과 같으며, 악한 행동을 아니 하고 착한 행실만을 신봉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선행]과 같다.”


실제로 하나의 학문만으로 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세상의 모든 비밀을 풀었다고 생각했던 만유인력과 상대성이론으로는 미시우주 즉 원자와 더 작은 미립자들의 움직임에 대하여 아직은 잘 설명하지 못한다. 엄청난 지식의 축적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대하여 아는 것은 아직 미비할 뿐이다. 잘 정리된 이론으로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194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오스트리아의 과학자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는 한때 “하나님이 흩어놓으신 것을 인간이 어찌 합칠 수 있겠느냐”는 농담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제 통합을 통해 진실에 더 가깝게 다가가려고 한다. 미국의 핵물리학자인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는 이 하나의 원리를 최종 이론의 꿈(Dreams of a Final Theory)이라고 부른다. 와인버그의 최종이론은 물리학의 대통합을 가리킨다.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의 <사회생물학의 새로운 종합>은 사회생물학이라는 이름으로 생물학과 인문학을 통합하려는 시도였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동물들에게 적용되는 생물학적 원리들을 인문 사회과학에 확장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과학만이 아니라 철학과 자연과학적 발견까지 활용해야 한다. 연구의 편의상 분류된 것이지 학문의 이름처럼 사회현상이 폐쇄적일 수 없다. 이 세상의 현실은 다른 시스템과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처럼 학문 그 자체도 닫혀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닌가? 경제나 경영학이란 우리 사회를 보는 하나의 시각일 뿐이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문학, 경제학, 물리학, 생물학 등 많은 학문이 이루어 낸 성과를 모두 이용해야 한다. 한 사회의 경제 발전이 통화나 금리정책 또는 재정정책으로만 이루어 질 수는 없다. 사람을 이해하고 사회적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도 경제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신뢰하는 사회에서 경제가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연구보고서가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경제학이 하나의 독립된 학문이기는 하지만, 인문학의 기초가 없이는 이 사회의 경제현상을 이해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통합하기는 학문의 세계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들도 통합적 시각이 필요하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생각의 방법을 연결하다 보면 우리에게 엄청난 통찰력을 주게 될지도 모른다. 현실의 세계에서는 과목별로 보는 시험은 좀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종합시험이다. 이 세상의 문제는 단일한 학문에 국한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한 가지 현상이나 사물을 더 많은 방법으로 생각할수록 더 나은 통찰력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과학자도 예술을 훈련해야 하며, 작가는 과학을 배워야 하고, 화가는 음악이나 기하학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세상에 새로운 것들은 대부분 그렇게 탄생된다. 음악에 수학적 사고를 적용하고, 과학에 상상력을 불어넣으며, 사회과학에 자연과학의 지식을 도입하면서 지식의 부족한 틈새를 채워왔다. 그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듯하다. 생각의 구조가 네트워크로 엮어져 있듯이, 지식도 네트워크의 모습을 하고 있음직하다. 연결의 고리가 차츰 늘어나다가 어느 순간 폭발하듯 모든 것이 연결되는 것처럼, 주변의 생각과 지식들이 통합되면서 엄청난 량의 새로운 지식세계가 만들어 질 수 있지 않을까?


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에는 많은 천재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산정에서 햇무리를 보고 그것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싶어했던 청년이 물리학자가 되고, 시에 대한 열정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싶어했던 소녀가 수학자가 되고, 기하학을 사랑했던 젊은이는 곤충학자가 되었으며, 그리고 사회과학을 사랑한 젊은 사회과학도가 화가로 성공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오늘날에는 그런 것이 경쟁력이기도 하다. 음악을 그리는 미술가, 의학을 전공한 기자, 물리학을 공부한 경영자가 각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가장 현실적인 강의를 자랑하는 MBA는 케이스스터디라는 방법을 도입한다. 하나의 비즈니스 케이스를 놓고 그 곳에서 마케팅, 전략, 조직 그리고 회계의 지식을 통합적으로 테스트한다. 요즘 어떤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자연으로 데리고 나가, 그곳에서 생물과 물리를 가르치고 생태계의 원리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친다고도 한다. 체험을 통해 더 효과적인 학습을 할 수 있다는 측면과 함께 세상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생각의 방법과 관점을 익힐 수 있다. 이런 식의 사고는 우리에게도 절실하다. 인생은 모든 지식을 종합적으로 테스트하는 시험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