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300>은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가 17만 명의 페르시아군과 맞붙는 전쟁이야기다. 이 영화는 실제 페르시아 전쟁의 한 전투인 데르모필레(Thermopylae) 전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데르모필레는 산과 바다 사이에 있던 좁은 길이 있는 지명으로 그리스어로<뜨거운 문>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도중에 온천이 있고 그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유래 된 이름이라고 한다. 실제로 좁은 길이 이어져 있기 때문에 대군을 수비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는 천혜의 장소다.
페르시아를 통일한 다리우스는 BC 490년 그리스의 마라톤 평원까지 침입했으나 패배하고 말았다. 마라톤의 기원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10년 뒤 페르시아군은 훨씬 큰 규모로 다시 그리스 본토를 침공했다. 이번에 페르시아군을 지휘한 사람은 다리우스의 후계자인 크세르크세스였다.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는 영화와는 달리 1,000여명을 이끌고 이 좁은 길에서 페르시아군의 남하를 저지하게 된다. 그 많은 페르시아군도 좁은 길에서는 숫자의 우세함을 발휘 할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이 길을 돌파할 수 없게 되자, 산 너머의 사잇길을 알아내 물밀듯이 몰려 오기 시작했다. 스파르타 1000명의 용사는 전력을 다해 싸웠으나 여기서 모두 전사하고 만다.

그런데 스파르타 1,000명이 전멸하면서 입힌 페르시아 군이 입은 피해는 얼마나 될까?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흥미롭게도 서양 최초의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를 저술한 헤로도토스(Herodotus)에 의하면 약 2만 명 정도가 죽었다고 한다. 페르시아군은 뒤쪽에서 아군이 때리는 채찍에 내 몰려 좁은 길로 쇄도 했지만 스파르타 군의 결사적인 저항에 막혀 혼란을 일으켜 밟혀 죽거나 바다에 떨어져 죽는 자들을 포함해서 그렇다. 믿기지 않을 정도의 숫자지만 여하튼 페르시아의 용사들은 일당 20명 정도는 한 셈이다.
전쟁이나 액션 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은 늘 일당 백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흔한 일은 아니다. 더구나 <300>의 용사들이 처음 만난 상대는 페르시아의 정예가 아니라 노예로 동원된 병사들이다. 실력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면 일대일 맞붙는 전투에서는 숫자가 우세한 쪽이 승리하기 마련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적보다 월등한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
제대로 된 상대를 골라라
영화 <300>의 배경이 되었던 BC 480년경에 총을 가지고 페르시아와 스파르타가 맞섰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페르시아는 10 만 명 그리고 스파르타는 5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였으며 각 병사들의 명중률은 모두 20%라고 가정해보자. 넓은 마라톤 평원에서 맞선 스파르타와 페르시아 군들이 상대를 향해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 스파르타의 5만 명은 각자 자신의 앞에 있는 페르시아 병사를 겨눌 것이고 명중률이 20%이니 페르시아 군 1 만 명이 전사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페르시아 10 만 명이 일제히 사격을 한다면 스파르타의 5 만 명 중 2 만 명은 그 첫 번째 사격에서 살아남기 어렵게 된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양쪽의 전력은 10:5 즉 2:1 이었다. 그런데 한번의 총격전이 끝나고 나면 페르시아는 9만 명이 생존하는 반면 스파르타 병사는 3만이 살아남게 되어 전력은 9:3 즉 3:1이 된다. 이제 두 번째 총격이 시작되었다고 하자. 페르시아군 9 만 명이 쏜 총알의 20%가 명중할 테니 1만 8천명의 스파르타 군사가 쓰러지고 말 것이며, 페르시아군은 3만의 20%인 6,000명이 총에 맞아 넘어갈 것이다. 두 번째 총격전이 끝나고 나면 페르시아 군은 8만 4천명 그리고 스파르타는 1만 2천명이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
이제 페르시아와 스파르타의 전력은 차이가 더 커져 8:1도 안되고 만다. 다시 세 번째 사격이 시작되었다고 하자. 페르시아 군 8만 4천명이 일제히 사격을 가하면 그 20%인 1만 6천 8백발이 스파르타 군 1만 2천명에 명중할 것이다. 한 마디로 전멸이다. 반면 1만 2천의 스파르타가 쏜 총알에 2천 4 백 명의 페르시아 군이 전사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스파르타의 5만 군사는 전멸한 반면 페르시아는 아직도 8만 1천 6 백 명이 남아있게 된다.

원래의 병력은 10만 명과 5만 명으로 스파르타의 병력은 페르시아의 절반 정도의 전력으로 시작된 싸움이다. 하지만 3번의 총격전 이후 페르시아의 피해는 1만 8천 4백 명에 불과한데 비해 스파르타의 피해는 5만 명에 달한 것이다. 일대일 맞붙는 백병전이었다면 용감하고 절박한 스파르타의 군사들이 최소 일당 한 명은 했을 것이고 피해상황 역시 2 대 1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미국에는 치킨게임(Chicken Game)이라는 것이 있다. 어느 한 쪽도 양보하지 않고 양쪽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인 게임이론을 의미하지만,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자동차 게임으로 인해 용감한 사람이 누군가를 가리는 게임을 가리킨다.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맞은 편의 상대방 차 정면을 향해 달린다. 그렇게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먼저 꺾는 사람이 패자가 된다. 패자는 겁쟁이가 되는 것이다. 만약 누구도 핸들을 꺾지 않는다면 모두 승자가 되지만, 두 대의 차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고 결국 두 경쟁자 모두 사망하거나 심한 부상을 당하게 된다.
오늘날에도 노사 대결, 남북의 대치, 여야의 정쟁 등 극단적인 경쟁으로 치닫는 상황을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치킨게임은 약자도 강자에게 심한 피해를 가할 수 있다고 믿을 때만 유용한 경쟁방법이 된다. 만약 상대의 자동차가 트럭이고 자신의 자동차가 경차라면 정면 충돌을 해봐야 나만 손해다. 이런 경우 치킨게임에 참여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페르시아와 스파르타가 총을 들고 맞서는 경우 비록 병력의 차이가 반이기는 하지만 결국 병력이 열세인 스파르타 입장에서 보면 매우 무모한 전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강자의 피해는 미미한 반면 약자는 모든 것을 잃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자신이 열세에 놓여있다면 강자와 경쟁에 나서지 말라는 것이다. 강자와 약자가 경쟁할 때 나타나는 결과를 아예 구체적인 수치를 포함하는 법칙으로 만들어 낸 사람이 있다.
이왕 상상의 전투를 시작했으니 아예 페르시아와 스파르타 모두 전투기를 가지고 공중전을 벌이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그리고 페르시아 전투기 5대와 스파르타 전투기 4대가 지중해 상공에서 전투를 벌인다고 가정해보자. 이번에도 스파르타의 전력이 열세이기는 하지만 아주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한 쪽이 완전히 전멸할 때까지 싸웠다면 양쪽의 피해는 얼마나 될까?
다른 조건이 모두 같다면 아마도 페르시아와 스파르타 양쪽의 전투기 4대가 격추되고 페르시아의 전투기만 1대가 살아 남을 것이라고 추정할 것이다. 그런데 영국의 항공 과학자 란체스터(Frederick William Lanchester)는 페르시아 전투기는 3대 정도가 살아남는다는 계산을 내 놓는다.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양쪽의 전력차이는 눈에 보이는 전력의 차이가 아니라 그 제곱의 차이가 된다. 예를 들어 페르시아 전투기 5대와 스파르타 전투기 4대의 전력 차이는 5:4가 아니라 25:16이 되어 배 가까운 차이를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에는 과거와 같이 창과 방패를 들고 근접거리에서 1:1로 싸우는 전투가 아니다. 기관총과 대포 등 확률무기가 등장하면서부터 멀리 떨어져 싸울 수 있게 되었으며 비행기, 미사일, 무인 전투기(드론)등이 개발되면서 더 원거리에서 싸울 수 있게 되었다. 한번에 한 상대와 싸워 승패를 결정하는 전투가 아니라 점차 원격전 광역전의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전투의 전력은 재래식 전투와는 달리 투입전력의 산술적 차이가 아니라 투입전력의 제곱에 비례하게 된다. 결국 작은 전력의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말임으로, 비록 그 차이가 미미하더라도 약자가 강자와 싸워봐야 득이 될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경쟁은 바로 이런 확률로 싸우는 전투와 유사하다. 언급하였듯이 우리의 경쟁은 전장이 아닌 시장에서 벌어진다. 재래식 전투는 재래식 시장에서 고객과 일대일 거래를 하는 마케팅에 비유할 수 있으며, 오늘날 마케팅은 전국민 또는 전세계의 고객을 대상을 향한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다. 경쟁자와 어깨를 마주하고 고객과 직접 만나 자신의 상품이 가진 장점을 목소리 높여 설명하면서 물건을 파는 재래식 시장은 그야말로 1:1 시장이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기업이 수많은 고객을 향해 라디오, 신문, TV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상품을 알리고 있다. 그야말로 광역전 원격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장에서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경쟁의 법칙은 규모가 큰 쪽의 손을 들어준다. 대기업은 더 많은 광고 예산을 쓸 수 있고, 더 많은 판매원을 동원할 수 있게 됨으로 마케팅 전쟁에서도 란체스터의 법칙은 어김없이 적용된다. 시장이 클수록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것이 점점 더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 보다 강한 자를 상대로 직접 경쟁하는 것을 택하는 일은 자살을 선택한 것과도 마찬가지다. 시장에서 강자는 자금력이 우월하거나 시장은 미리 선점하여 시장 점유율이 높은 회사를 가리킨다. 개인의 경우라면 이미 어떤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들이 강자라고 할 수 있다.
란체스터 법칙은 약자가 강자를 이기기 위해서는 강자가 투입하는 전력의 제곱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거나, 상대방의 명중률보다 배가 넘는 사격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강자의 1/2 이라면 마케팅 비용으로 강자의 4배는 집행할 각오가 서있어야 승산이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시장점유율이 높은 대기업의 경우 자금력에서도 우수할 경우가 대부분임으로 약자의 입장에서 정면대결은 어떤 경우라도 피해야 하는 것이다.
<전쟁론>의 클라우제비츠 역시 전쟁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힘의 우열이라고 단언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역사상 수없이 일어났던 전쟁에서 수적으로 2대1의 열세인 군대가 이긴 것은 단 두 번뿐이라고 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이긴 비결은 전략이 아니라 독일군이 2명일 때 연합군은 4명이었다는 수의 우위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법칙을 무시하다 어려움을 당한 기업으로 일본의 닛산 자동차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토요타는 일본뿐 아니라 세계의 1위 자동차 회사다. 닛산은 토요타의 시장점유율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기술의 닛산’이라고 불리며 일본 내 2위의 자동차 업체였다. 그런 닛산이 토요타를 경쟁대상으로 선택하였다. 토요타가 내놓는 자동차와 경쟁하면서 토요타를 쫓아가기 위해 노력하던 닛산은 2000년 6,600억 엔의 적자를 기록하며 위기를 맞게 되었다.

닛산이 공격할 대상은 강자인 토요타가 아니라 바로 아래에 위치한 혼다 자동차였다. 혼다의 자동차와 경쟁하여 그들의 시장을 빼앗아왔어야 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닛산은 토요타와 경쟁하며 출혈을 거듭하였고 그 사이에 혼다가 닛산을 추월하고 말았다. 2000년 혼다는 닛산의 실책으로 닛산 자동차를 따라 잡겠다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의 소망이 달성되었다.
우리는 이런 사례를 주변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같은 시장에서 같은 방법으로는 강자와 아예 경쟁에 임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물론 강자와 경쟁해서 패배하더라도 얻을 것이 있는 경우도 있고, 약자와 경쟁해서 이기더라도 이익이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강자와 경쟁해서 이기려면 정면 대결보다는 제품을 차별화하거나 아예 시장을 차별화하여 전면전 보다는 국지전을 택해야 한다. 아니면 강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훈련하거나, 다른 약자와 연합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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