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관장하고 있는 신이 지쳤다. 그래서 일주일간 휴가를 가기로 결정한다. 오랜 기간 신이 유럽이라는 지역의 자리를 비웠던 중세의 암흑시대(Dark Age)와는 달리, 이번에는 불평분자 브루스를 불러와 뉴욕의 일부에 대해 직무대행을 맡긴다.
2003년 상영된 짐 캐리 주연의 코미디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에 나오는 이야기다. 브루스는 뉴욕의 버펄로 지방 방송국의 뉴스 리포터다. 직장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하는 일 마다 꼬여 늘 불만이다. 그는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해대며, 자신의 불행은 신 탓이라며 원망한다. 여자 친구 그레이스(제니퍼 애니스톤)와 싸우던 날은 원망을 넘어서 비방에 들어간다. “신이 있으면 어디 한번 대답해 보슈! 자기 할 일을 제대로 못하면서 놀고먹는 유일한 사람은 당신이 아닙니까?”라고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삐삐가 울리고 555-0123이라는 번호 하나가 찍힌다. 몇 번을 무시한 끝에 그 정체 모를 번호에 전화를 걸게 된 브루스는 한 청소부(모건 프리먼)을 만나게 된다. 그 청소부가 스스로 본인이 신이라고 소개하며, 자신이 휴가를 가는 동안 전능한 능력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이런 브루스가 자기 마음대로 손가락을 휘둘러대기 시작한 탓에, 세상은 엉망진창이 된다. 브루스가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에 괴로워하며 신을 찾아가 자신의 잘못을 빌자, 신은 브루스에게 한 마디 한다.
“사람들은 기적의 능력을 갖고서도 그걸 잊고 나한테 소원을 빌지. 기적을 보고 싶나? 자네 스스로 기적을 만들어 봐(People want me to do everything for them. What they don’t realize is that they have the power. You want to see a miracle? Be the miracle).”
인간이 가진 기적의 원천을 사람들은 종종 인간의 잠재의식에서 찾는다. 간절히 원하거나 위급한 상황을 만났을 때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는 일도 잠재의식에서 나오는 능력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로버트 콜리어, 나폴레온 힐 그리고 클로드 브리스톨 같은 자기계발 관련 베스트 셀러의 저자들은 우리 모두 기적 같은 무의식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단지 신념과 긍정적인 생각 그리고 생각의 크기에 따라 활성화될 뿐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런 능력이 정말 우리에게 있기는 한 것인가?
우리의 장기기억용량이 개인 PC에 비해 어림잡아 약 1,000배정도 크다고 했지만, 인간 뇌의 밀도는 컴퓨터보다 실제로 1,000배정도는 크다. 인간의 기억용량을 계산하는 방법 자체가 매우 임의적인 반면, 밀도라는 것은 비교적 객관적인 수치를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라면 우리의 뇌는 컴퓨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복잡하다. 약 천억 개의 신경세포 하나하나에는 일반세포와는 달리 수많은 가지들이 달려 있다. 그 가지가 다른 세포와 연결된다. 하나의 신경세포가 다른 신경세포와 연결을 이루는 것이 시냅스다. 시냅스를 자세히 살펴보면 두 신경세포의 가지 끝이 완전히 연결된 것이 아니고 아주 작은 간격으로 떨어져 있다. 이 간격을 연결하는 물체가 따로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물체가 우리가 알고 있는 세라토닌, 노르아드레날린,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다. 전기적 신호가 신경세포 가지를 따라 말단에 오면 화학물질이 분비되고 이 물질이 시냅스의 좁은 간격을 헤엄쳐 건너서 정보를 전달하게 된다. 아무리 큰 컴퓨터라 할지라도 뇌에 존재하는 시냅스 회로망의 이런 복잡함과는 비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인간 뇌의 이런 복잡성에 우리 잠재능력의 비밀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특별한 능력도 있다. 학습능력과 상상력이 바로 그것이다.
디지털 컴퓨터의 정보처리 방식과 뇌의 정보처리 방식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AI라는 단어가 일반화 되고 딥러닝(Deep Learning)과 같은 단어가 자주 등장하지만 기본적으로 컴퓨터에는 학습 능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에게는 어떤 사실이나 법칙을 배우면 그것을 이용하여 배우지 않은 문제도 해결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반면 컴퓨터는 근본적으로 그런 종류의 학습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전문가 시스템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서 인간을 대신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환자 진단용 전문가 시스템은 의사가 가지고 있는 지식들을 입력시켜서 프로그래머가 지시한 규칙대로 진단을 내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가지는 이런 학습능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인간의 학습능력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정보들을 조합해 내는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런 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학습능력도 결국은 인간의 상상력에 기인한다.
1997년부터 시작된 인간과 슈퍼컴퓨터간의 체스 대결의 결과도 우리가 생각하는 능력에 특별한 것이 있다는 짐작을 하게 해준다. 오늘날의 컴퓨터는 초당 몇 백만 개의 수를 읽을 수 있다. 그런 컴퓨터와 인간이 대결하여 호각지세를 이루고 있는 거다. 이런 대결의 관점은 사실 컴퓨터의 발전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지만, 역으로 인간에게 무엇인가 잠재적인 능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예를 들어 간단한 체스의 대결에서는 아직은 막상막하의 형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바둑에 있어서는 컴퓨터가 인간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카드로 하는 포커게임에서도 아직은 인간이 우세하다. 포커게임은 다음에 어떤 카드가 나올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운이라는 것이 작용한다는 말이다. 바둑에 있어서도 감(感)이나 기세가 승부를 결정한다. 인간이 아직은 슈퍼 컴퓨터와의 대결을 감당하고 있는 것은 인간에게는 직관이나 감이라는 것이 있고, 속임수와 같은 전략적 능력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에 대한 개념을 처음 소개한 프로이트에게 있어 무의식은 일종에 억압되어 있는 의식이었다. 다시 말해 의식에 있어 고통스러운 것, 허용될 수 없는 것, 온당치 못한 것은 억제되어 무의식의 세계로 추방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현대의 심리학에서는 무의식은 우리의 일상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고 생각한다. 말했듯이 프로이트는 의식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표현하여, 무의식이 우리의 정신활동의 대부분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낯설다>의 티모시 윌슨은 의식은 빙산의 일각이 아니라 빙산의 꼭대기에 쌓인 눈덩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에게 있어 무의식이란 ‘의식에 도달하지는 못하지만 그 사람의 판단과 감정, 혹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정신의 작용’이다. 그런 작용이 우리 정신작용의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런 무의식에 무엇인가 잠재되어 있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를 부여하면 무의식은 잠재의식이 된다. 성공학의 대가나 종교인들은 이 잠재의식이 하나의 능력으로 깨어나기 위해서는 신념과 믿음을 가지고 명상, 기도, 좌선과 같은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런 것은 각자의 믿음에 따라 받아들여야 하는 종류의 것들이다. 하지만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은 이제 더 이상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며,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잠재의식을 통해 우리의 생각의 능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몰입이라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몰입이란 말 그대로 집중하는 것이다. 몰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몰입이라는 것이 자신들만이 경험하고 있는 특별한 것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사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따로 있다는 말 자체가 어색하다. 왜냐하면 몰입이란 자신이 하는 일 이외에는 관심이 없을 정도로 집중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며, 그런 경험은 누구나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표현방법을 생각해 냈다고 해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했다고 할 수는 없다. 여하튼 어떤 일에 깊게 집중하여 시간의 흐름, 공간, 더 나아가서는 자신에 대한 생각까지도 잊어버리게 되는 심리적 상태를 몰입의 경지라고 부른다.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누구라도 그런 경험을 가진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일에 집중했거나, 정신 없이 게임에 몰두했을 때가 그런 것이다.
특히 책을 읽으면서 몰입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옛날부터 우리는 독서 삼매경(三昧境)이라고 불렀다. 삼매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정신 집중상태를 의미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화하는 것도 몰입이다. 음악에 빠져 주변의 어느 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는 상태도 마찬가지다. 음악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사랑의 기술>의 저자 에릭 프롬Erich Fromm은 ‘사랑은 어떤 대상에 대한 관심, 이해, 앎, 보살핌 그리고 몰입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몰입의 경지도 어떤 것을 사랑해서 열중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허긴 억지로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니, 당연히 그 일을 더 좋아하게 되고 성과도 더 좋아지며 창조적인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다. 이런 몰입의 경지를 심리학자이자 교육학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플로우(flow)’라고 부르며 ‘마치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거나 물이 흐르는 것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행동이 나오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플로우다.
무엇인가 시간 안에 마무리해야 하는 경우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시험을 앞두거나, 논문을 쓸 때 그리고 업무를 시간 내에 마쳐야 할 때도 우리는 몰두하게 된다. 하지만 칙센트미하이는 “목표에 집중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몰입의 경지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목표에 집중한다는 것이 한 가지 조건이기는 하지만, 보상을 위한 몰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불안감이나 지나친 긴장 때문이 아니라 도전적인 목표 자체가 보상이 되는 몰입이 되어야 진정한 몰입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생각한다는 그 사실 그 자체가 보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생각 그 자체를 즐긴다는 말이며, 그래야 우리의 뇌가 작동하게 되어 있다. 우리의 뇌는 좋아하는 것, 흥미가 있는 것, 그리고 충분히 새로운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해마와 편도체는 나란히 붙어있다. 해마는 기억과 관계가 있으며 편도체는 감정을 판단한다. 기억과 감정의 중추가 나란히 자리한 이유는 이 두 가지 기능이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몰입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몰입과 사랑도 해마와 편도체처럼 함께 한다.
시간에 쫓기거나 윗사람에게 몰리거나 업무에 눌려서 집중하는 불안한 상태로는 진정한 몰입을 경험하기 어렵다. 일을 사랑하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업무에 흥미를 잃었거나 목표를 상실한 무기력한 마음으로도 몰입에 도달하기 쉽지 않다. 그런 기분으로 일을 즐길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몰입에 의해 느끼는 ‘플로우’란 결국 우리의 마음이 지루함과 불안감의 중간 쯤에 위치했을 때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몰입>의 저자 황농문 교수는 이를 ‘천천히 생각(Slow Thinking’)하는 상태라고 설명한다. 언급하였듯이 컴퓨터는 속도를, 우리의 뇌는 천천히 생각하는 능력을 강점으로 가지고 있다. 실제로 우리의 뇌는 천천히 생각할 때 더 큰 능력을 발휘하는 듯하다. 천천히 생각할 때와 급한 생각을 할 때 뇌의 활동수준이 다르다는 것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사람의 뇌파에는 베타파, 알파파, 세타파, 델타파 등 4가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뇌파는 뇌에서 나오는 미약한 전기를 증폭시켜 측정한다. 흥분하거나 긴장했을 때에는 주로 베타파라는 뇌파가, 졸리거나 자고 있는 경우에는 델타파가 주로 나타난다. 반면 편안한 상황에서 느리게 생각할 때는 알파파를 발견할 수 있다. 위의 4가지 뇌파를 소개할 때 알파파를 베타파와 델타파 중간에 집어 넣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은 각성과 수면의 상태 중간쯤 되는 상태임으로 일종의 반 수면의 상태 또는 명상에 잠겨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각적이고 급한 생각이 요구될 때는 베타파만 관측되는 데 이 베타파의 파형은 복잡하고 율동성도 없다. 반면 우리들이 무언가에 몰두하거나 집중하여 명상상태에 있는 경우에는 율동적인 알파파를 발생시킨다. 이 알파파는 명상뿐 아니라 자연의 경치나 인간의 창작품에 마음이 감동되거나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에도 강하게 나온다고 한다.
플로우를 경험하는 수준이 너무 긴장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지루하지 않은 중간상태라는 보고와 일치한다. 다시 말해 알파파는 긴장 상태의 베타파와 수면시의 델타파 사이에 놓여있는 상태다. 이때가 바로 우리의 두뇌가 기억력과 집중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을 때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뇌의 알파파는 엔돌핀의 분비와도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엔돌핀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몸 안에서 만들어지는 마약이다.
우리들이 상쾌하고 기분이 좋을 때 그리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될 때 우리의 뇌하수체에서 직접 만들어져 나온다. 다시 말해 긍정적인 사고와 기분 좋은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들면 자연히 만들어진다. 따라서 알파파를 방출한다는 것은 엔돌핀 같은 물질을 분비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며, 몰입의 경험자들이 플로우의 상태가 되면 편안하고 즐거워 진다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몰입과 명상의 상태에 도달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뇌의 활동의 느려진다. 그런 상태에서 우리의 뇌는 알파파를 발산한다. 하지만 명상과 몰입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명상이 심신단련을 위한 훈련이라면, 몰입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자기계발 행동이기 때문이다. 또한 명상은 생각의 대상을 생각하지 않고 마음을 모으는 것이라면, 몰입은 능동적인 사고과정이 포함된다는 차이를 가진다. 명상은 생각을 비우는 것이고 몰입은 생각에 집중한다는 방법상에서도 크게 다르다. 문제에 집중하고 그 해답을 찾으려는 사고에 몰두하는 것이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몰입이다. 말했다시피 몰입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느낄 정도의 긴장감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도전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몰입의 대상이 흥미로울 정도로 새롭고 또 자신에게 소중한 것일수록 더 도전하고 싶은 의욕이 생길 것이다. 어떠한 도전이라도 그런 몰입의 과정에서 작은 실마리라도 찾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의욕이 생기고 성취감이 일기 시작한다. 만족하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이런 만족은 단순한 쾌락에 비해 더 지속적이고 생산적인 것이다. 이런 만족의 감정에 있어서 ‘도파민’의 분비가 큰 역할을 한다고 한다. 도파민을 만족의 물질이면서 의욕의 물질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로운 일을 만났을 때 하고 싶은 동기 즉 의욕을 불러 일으키는 물질로서, 일을 끝냈다고 생각할 때보다는 의욕이 솟아날 때 도파민의 분비가 활성화된다. 여행지에서의 즐거움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느끼는 설레임이 더 큰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물질이 과다하게 분비될 경우 필요 이상의 에너지가 소모되어 정신분열증 같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보고가 있으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 큰 일을 이룬 천재나 사업가들이 일찍 사망 하거나 정신병이 걸렸던 이유도 도파민의 과잉 분비와 관계가 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우리는 자신의 일에 ‘미치는’ 사람들을 흔하지 않게 만난다. 미친다는 말은 집중한다는 말과도 같다. 그런 과정에서 즐거움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미치면 일 중독이 될 수도 있으며,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스스로를 해칠 수 있다. 다행히도 스트레스에 의한 몰두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서 몰입하는 경우에는 엔돌핀이 함께 활성화된다고 한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는 큰 행운이다. 소량의 도파민에 엔돌핀이 결합되면 별다른 부작용 없이 그 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상태가 우리가 추구하는 몰입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뇌의 활용법이 된다. 긴장감은 있지만 즐겁게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가 바로 그 때다. 이렇게 어렵게 이야기할 것도 없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그런 상황을 늘 맞닥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극작가 버나드 쇼우Bernard Shaw와 시대를 같이한 아놀드 달리Anold Daly라는 미국 영화배우이자 제작자는 다음과 같이 쉬운 말로 몰입의 특징을 설명해준다.
골프나 사랑 모두 즐거운 도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경우라야 우리는 쉽게 어딘가에 몰입할 수 있고 그 자체가 즐거움이 된다. 스포츠 게임에서 상대가 우리보다 몇 수 아래라면, 게임에 몰두할 수도 없으며 재미도 덜하다. 하지만 맞수가 되는 사람과 게임을 하는 경우는 다르다. 재미있게 게임을 즐길 수 있고 또 이겼을 경우 큰 성취감도 맛볼 수 있다. 결국 몰입이란 ‘즐거운 도전’을 만났을 때, 그것에 집중하는 상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평사 시에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몰입의 효과라고 할 수 있다.
몰입의 전문가들은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긴 뉴턴, 에디슨 같은 천재들이 발견하고 발명한 것들이 몰입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무엇인가 집중해서 생각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무엇이든 하나만 열심히 생각하다 보면, 안 풀릴 것 같은 문제의 해답이 떠오르기도 하고 정말 우연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찾아내기도 한다.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사실 몰입의 좋은 점이나 효과는 대부분 다 아는 것이다. 학습을 할 때나 업무를 할 때도 집중해야 더 잘할 수 있으며, 운동경기를 할 때도 집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아닌 사람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사실 모든 운동경기가 최정점으로 가면 모두 멘탈 게임이 된다. 세계 최고의 선수간에 기술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중요한 시점에서 집중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몰입이란 무엇보다도 집중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 기술은 습관이며 따라서 훈련에 의해 만들어지고 자신감에 의해 강화될 수 있는 것이다. 프로골프 선수들은 그래서 명상과 같은 훈련을 육체적 훈련과 병행한다. 미국 골프계의 전설인 벤 호건은 “골프의 20%는 기술이고, 80%는 멘탈이다”라고 했다. 잭 니클로스는 “골프경기의 승패는 심리기술이 90% 이상 좌우한다”며 심리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 심리기술의 핵심이 집중력이다.
만약 매번 주어지는 순간에 몰입을 할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늘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하지만, 몰입 상태에서의 생각이 가지는 특징은 천천히 생각한다는 것임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의식적인 사고는 즉각적이지 않기 때문에, 의식을 가지고 어느 문제에 집중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몸이 행하는 노동과는 다른 것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바로 문제에 다가가는 일이 쉽지 않다. 글을 쓰는 일은 더 하다. 책상을 정리하고, 일어났다 섰다 하면서 사고에 깊이 들어가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일종의 워밍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몰입을 위한 시간을 억지로라도 만들라고 조언한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씽크 위크’라는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다시 유명해 졌다. 그는 1년에 2번은 일주일간은 아무도 오지 않는 외딴 별장에 가서 오직 생각만 한다고 한다. 우리도 가끔 여행을 떠나고 휴식을 가진다. 그런 시간에 우리는 당면한 인생의 중요한 과제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일상에서도 우리는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몰입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비교적 조용하고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에서 시작하여야겠지만, 한번 몰두하기 시작하면 움직이면서도 하나의 주제에 집중할 수 있다. 이런 것 역시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하는 일이다. 이렇게 시작한 우리의 의식의 사고는 점차 몰입의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 그 후에는 출근하면서,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저녁에 친구를 기다리면서도 그 주제를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것이 우리가 일상에서 몰입이라는 생각의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전철에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면서 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순한 정보이거나 기껏해야 파편적인 지식뿐이다. 물론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들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시간에 자신이 정한 주제를 골몰히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인생에 필요한 정말 중요한 지혜를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잡생각’이 아닌 구체적이며 해결해야 할 문제나 명제를 생각한다는 전제하에서 그렇다. 따라서 단순히 무엇인가 읽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강조했듯이 독서를 강조한 나머지 생각하는 과정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스스로 생각에 몰두함으로써 얻어지기 때문이다.
명상이나 몰입 모두 우리의 의식이 하던 일의 일부를 무의식에 맡기는 것과도 같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무의식에 있는 모든 정보를 활용하는 것은 경험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장치에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모든 사건이 막대한 지식으로서 저장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몰입이라는 것도 역시 이미 우리가 언급한 한 생각의 꼬리에 또 다른 생각이 꼬리를 물도록 하는 것이다. 단 집중하는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던 아이디어가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던 생각의 꼬리를 물고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집중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몰입하려는 이유다.
사람은 보통 자신 일생의 3분 1을 잠으로 보낸다. 만약 우리가 이 시간을 활용할 수 만 있다면, 대단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 될 것이다. 물론 수면의 기본 목적은 휴식이다. 잠을 자면서 우리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체온을 낮추어 낮의 활동으로 고갈된 에너지를 충전한다. 또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등으로 축적된 각종 피로물질을 분해하여 약해진 육체와 뇌를 회복시킨다. 하지만 잠을 잔다고 해서 우리의 뇌가 완전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잠을 8시간 잔다고 해도, 내내 같은 수준의 수면을 취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잠든 상태를 지켜보면 그 깊이가 일정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잠들고 나서 30분에서 1시간쯤 지났을 때 가장 깊이 잠에 빠져든다고 한다. 그로부터 1시간 정도 지나면 점점 잠이 얕아지고 계속해서 그런 상태를 유지하다가, 일어날 무렵쯤 돼서야 30분 정도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가 눈을 뜬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수면의 깊이를 알 수 있는 근거 역시 뇌파를 통해서 찾아볼 수 있다. 가장 깊이 잠든 때에는 파동이 전혀 일어나지 않고 평평한 직선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은 뇌의 모든 부분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뇌파를 자세히 살펴보면 아무리 깊이 잠들었다고 해도 몇 분에 몇 회씩은 일부에서 파동이 계속 일어나고 있어 뇌가 하룻밤 동안 완전히 쉬고 있는 경우는 고작 15분 정도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잠을 자면서도 우리의 뇌는 완전히 휴식을 취하지 않고 중간중간에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기억할 수 있는 꿈을 꾸는 상태를 ‘렘(REM-Rapid Eye Movement)수면’이라고 한다. 잠을 자면서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상태다. 이 때의 특징은 기억활동과 관련된 세타파와 건강파라고 부르는 알파파가 함께 관측된다는 점이다. 뇌파를 소개하며 베타파, 알파파, 세타파, 델타파의 순서로 적어 두었던 것을 기억해 보자. 베타파는 일상의 상태를 가리키며, 델타파는 완전히 잠든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 중간이라고 할 수 있는 렘 수면 상태에서 알파파와 세타파를 관측할 수 있다는 말은 뇌가 활동하고 있고 그것을 우리가 기억할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렘 수면 상태에서 우리의 뇌는 잡동사니 같은 기억을 제거하고 정보를 갈무리하는 등 집안 정돈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컴퓨터에서 과거의 파일을 정리되고 분류하고 삭제하는 것과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쓸모 없는 기억과 불쾌하고 불안한 감정들을 컴퓨터처럼 ‘휴지통’으로 옮겨버리고, 낮에 일시 저장한 정보를 장기기억으로 바꾸는 활동 등이 그것이다. 렘 상태에 들어가면 단백질 합성이 증가한다는 사실로도 기억과 관련한 작업이 왕성하게 이뤄진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렘 수면 상태에서 꾸는 꿈을 우리가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역으로 렘 수면 이외의 잠자는 시간 동안에 뇌가 활동한 내용은 기억할 수 없다는 말이다. 기억에 필요한 물질이 분비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이던 우리의 뇌는 밤에도 활동 중이다. 따라서 “낮에는 경험하고 밤에는 학습을 한다는 말”을 수면 시에 우리 뇌가 정보를 정리하면서 컴퓨터가 가지지 못하는 학습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KBS의 과학카페(www.kbs.co.kr/1tv/sisa/davinci)는 2007년 ‘수면의 과학’이라는 제목으로, 학습할 때와 잠을 잘 때 우리의 뇌가 활성화되는 부분이 동일하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몰입을 한다는 것은 바로 이 수면시간의 뇌의 활동을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는 동안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자면서 영어 테이프를 듣는다고 영어가 익혀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미 습득한 기억에 대해서는 무엇인가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잠을 자기 전에 기억해야 될 내용들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는 것이 기억에 도움이 될 수 밖에 없다. 내일이면 사라져 버릴지 모르는 중요한 정보가 자는 동안 정리될 수 있다는 말이다. 현재 몰두하고 있는 주제를 깊이 생각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내가 자는 동안에 나의 잠재의식이 나를 위해 밤새 수고를 해 줄지도 모른다. 어떤 생각에 몰입하다 보면 그와 관련한 일이나 생각이 꿈 속에 나타나거나, 꿈 속에서 그 해답을 찾는 경우가 있다. 물론 아침에 일어나 다시 생각해 보면 꿈에서 느꼈던 것처럼 현실적인 답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기는 하다. 하지만 잠을 자는 동안에도 우리의 뇌가 그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아니면 실제로 그 답을 찾아 우리의 장기기억에 저장해 두었음에도 우리의 의식이 그것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곳에 저장해 놓기만 했다면, 시간이 문제지 그 해답을 연상시켜줄 단어나 정보를 만나기만 하면 기억해 낼 수 있다.
다음 날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 올랐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밤새 우리의 뇌가 고생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비틀즈에 관한 작가로 유명한 배리 마일스Barry Miles가 1997년 출간한 <폴 매카트니의 과거>에 의하면 최고의 팝이라고 불리는 비틀즈의 ‘예스터데이(Yesterady)’도 꿈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한다. 비틀즈의 멤버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자신의 어머니 집 다락방에서 머물던 당시, 꿈속에서 아름다운 현악 앙상블 연주을 듣는다. 한동안 자신이 꿈속에서 들은 음악이 다른 사람이 만든 곡이라고 의심했지만, 결국 자신이 만든 자작곡이라는 알게 되자 그 곡에 가사를 붙여 발표한 노래가 이후 불후의 명작이된 ‘예스터데이’다. 그는 작곡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 곡은 내 작품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곡이었어요. 믿을 수 없는 행운이 내게 가져다준 선물이었죠.”
그런 것이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것이다.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지만, 특히 실험 도중에 실패한 결과에서 얻어진 중대한 발견을 가리키기도 한다. 알렉산더 플래밍Alexander Fleming이 자신의 실험 목적과는 관계없이 우연히 인류에게 엄청난 혜택을 제공한 페니실린을 발견하는 경우가 그런 것이다. 그런 우연도 일에 집중하면서 얻어진 우연이다. 크기만 다르지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기분 좋게 유식해지는 심리학>의 다쿠미 에이이치匠 英一는 벤젠의 분자구조를 발견한 독일의 화학자 케쿨레F. A. Kekule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케쿨레가 살고 있던 당시에는 아직 벤젠의 화학구조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어느 날 케쿨레는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무수한 원자의 행렬 한 곳에 뱀 한 마리가 나타나서 꼬리를 물고 빙글빙글 도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잠에서 깬 케쿨레는 “벤젠의 분자 구조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꿈에서 힌트를 얻은 그는 결국 벤젠의 분자 구조를 밝히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얻어진 아이디어나 발명이 우연히 얻어진 것은 아니다. 무엇인가 해결하기 위해 또는 창작을 위해 생각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나의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던 정보가 새로운 방법으로 연결되면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결과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몰입한다는 것은 이처럼 영감을 얻어내는 생각의 기술이며, 우리의 무의식 또는 잠재의식을 활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심리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의 말처럼 우리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 많은 답이 있다고 믿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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