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는 전쟁과 같이 서로를 해하는 경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쟁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합은 언제나 사회전체에 도움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학은 평화의 학문이다.
경쟁은 경제학 이론의 전개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경쟁이 없다면 거래가 존재하지 않는다. 경쟁하지 않는다면 가격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 서로 더 싸게 주려 하고 더 비싸게 사려는 이타적인 사람들만 있다면 가격이 형성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10만원짜리 자전거를 파는 사람은 9만원에 팔겠다고 하고, 사는 사람은 11만원에 사겠다면서 서로 양보한다면 가격의 차이는 점점 멀어지고 말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기적인 인간이 서로 경쟁적으로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할 때 가격이라는 중요한 정보가 만들어 진다. 이 가격이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오늘 날처럼 복잡한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다.
경쟁이 공유하는 가치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는 지구상에 있는 귀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게 해준다. 둘째로 서로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준다. 이런 경쟁을 통해 점점 지식이 확산된다.
경제학에도 여러 학파가 존재하는 데 그 학파들 마다 조금씩 경쟁에 대해 다른 가설을 가지고 있다. 가장 영향력을 가진 학파는 고전학파와 그 가치를 이어받은 새고전학파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경쟁의 메커니즘이 개개의 수요와 공급을 균형에 이르게 한다는 절대적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있어 경쟁은 가격이며 이 가격을 통해 시장이 균형을 이루게 된다. 이런 경쟁에 의해 시장은 효율적인 시장이 된다. 빌프레도 파레토는 경쟁에 의한 경제적 균형이 시장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사회적 균형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즉 경쟁이 경제와 사회 모두에서 최적화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경쟁을 다윈주의적인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경쟁이 효율성이 떨어지는 시장 참여자들은 하나씩 탈락시키고, 소위 가성비가 높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참여자들은 생존하게 하는 시장 생태계를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소위 신자유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만들어 낸 루드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같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처럼 경쟁이 혁신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그렇다면 경제학에서는 우리에게 자기 만족을 위해 무엇을 하라고 가르치고 있는가? 이 역시 다름 아닌 차별화다. 그리고 차별화의 중요성을 비교우위이론으로 간단히 설명해 버린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비교우위라는 단어를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우위에 있는 경쟁력이라는 의미로 잘못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비교우위란 경쟁자와 비교해서 우위에 있는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다른 능력과 비교해서 우위에 있는 경쟁력을 가리킨다.
경제학의 비교우위이론은 세상에 누구에게나 가치 있는 일이 있고, 그런 일을 통해 생존이 가능하며 전체 사회에도 이익이 된다는 점을 설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학은 평화의 학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경쟁을 통해 한 사람이 독식하는 것이 아니고 주고 받을 것이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비교우위에 대한 논의를 하기 전에 먼저 절대우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에서 절대우위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논한 사람은 ‘고전학파 경제학’이 시작되는 애덤 스미스다. 아담 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에서 생산량을 증대 시키는 요인으로 분업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국제무역 역시 분업의 특수한 형태라고 보았다. 한 사람이 일하는 것보다 둘 이상이 모여 자기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기만 해도 생산량은 두 배가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생산량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것이 시너지효과이며, 수확체증의 법칙이다.
여기서 분업을 시도할 때 누가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생산성이 달라질 수 있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잘하는 것에 따라 일을 나누면 된다. 세상 사람이 모두 같지는 않다. 힘이 센 사람이 있는 반면, 세밀한 일에 능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특성에 따라 일을 함께 하면 당연히 생산성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애덤 스미스는 이런 분업의 원리를 개인들 간에 적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 국가까지 확대적용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국가 간에 분업을 실시하고 무역을 통해 교환하는 것이 국가에 이득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밀을 생산하는데 5파운드가 필요하고 프랑스에서 밀을 수입하는데 3파운드가 필요하다면 영국은 밀을 아예 생산하지 말고 프랑스로부터 전량 수입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애덤 스미스는 이와 같이 한 국가가 특정 상품의 생산에 우위가 있는 것을 절대우위라고 했으며 국가는 절대우위를 지닌 외국상품에 한해서만 수입을 허락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좀더 현실적인 예를 들어보자. 맞벌이를 하고 있는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이 부부는 아이의 양육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둘 중에 한 명이 전담하여 아이를 돌보고 한 사람만 돈 버는 일에 집중하기로 하였다고 하자. 누가 아이를 돌보아야 할까? 일반적으로 여자가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 절대적 우위를 가지고 있다. 모유를 줄 수 있고 또 아이와 한 몸을 이루던 여자가 아이를 키우는데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말이다. 반면 밖에 나가 힘을 쓰는 일이 있다면 보통은 남자들이 유리하다. 우리는 이럴 경우 남자가 돈 버는 일에 있어 절대적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가정에서의 분업은 분명해 진다. 여자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남자는 일터로 나가 돈을 벌어오는 것이 가장 생산적인 분업이 된다. 이처럼 개인이나 기업 그리고 국가도 자신이 가지는 절대우위에 있는 상품만 생산해야 한다. 그렇다면 절대우위에 있는 나라는 다른 나라와 교역을 일체 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애덤 스미스로 시작된 고전학파의 이론 체계를 완성한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르도 (David Ricardo)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그는 비교우위의 개념을 통해 자유무역은 모든 나라를 이롭게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리카르도는 자유로운 무역이 이루어지는 경우 각 나라는 비교우위를 갖는 상품에 특화 하여 수출하고, 비교우위가 없는 상품은 해외로부터 수입하면 모든 국가가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리카르도가 이야기하는 비교우위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경쟁에 대한 우위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It is here we come to the heart of the matter. The economic principle of comparative advantage’, ‘a country may, in return for manufactured commodities, import corn even if it can be grown with less labour than in the country from which it is imported.
David Ricardo
앞에서 예로 든 부부의 이야기를 조금 더 진행시켜 보기로 하자. 밖에서 힘을 사용해서 돈을 버는 직업만 있다면, 일반적으로 남성이 유리하다. 그런데 이 부부의 경우 여자는 회계사 자격증이 있다고 해보자. 그리고 남자가 일하는 공장의 생산직 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일 그리고 돈 버는 일 모두에서 여자가 남자에 비해 절대우위에 있는 셈이다. 이런 특수한 상황이 존재한다면 누가 아이를 돌보고 누가 돈을 벌어와야 할까? 돈을 버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면 여자가 나가서 일을 하고 남자가 아이를 돌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경우 남자는 아이를 키우는 일에 비교우위에 있다고 말한다.
비교우위를 조금 더 정밀하게 정의하면 비록 절대우위에서 뒤처지더라도 생산의 기회비용을 고려하였을 때 상대적인 우위를 지닐 수 있는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회비용이다. 다시 말해 어떤 특정 제품을 생산할 때 기회비용이 낮은 사람이 비교우위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기회비용이란 단순히 무엇을 얻기 위해 포기한 그 무엇이다. 가치나 비용이라는 측정할 수 있는 단위로 표현하면, 하나를 선택하였을 때 그로 인해 포기한 것들 중 가장 높은 가치를 의미한다. 포기한 가치가 선택한 것에 대한 비용이며 그 비용은 잃어버린 기회의 비용이다.
위에서 남자가 아이를 돌봄으로써 생기는 기회비용은 직장에 나가서 벌어오던 수입이다. 여자가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의 기회비용은 그녀가 회계사로서 벌 수 있는 수입이다. 다시 말해 아이를 기우는 것에 대한 기회비용이 여자는 높고 남자는 낮다. 따라서 남자는 아이를 키우는 것에 비교우위가 있게 된다. 돈의 가치로만 보면 그렇다.
일상의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한 변호사 사무실에는 변호사와 문서를 작성해주는 사원이 함께 일하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 변호사는 법도 많이 알고 변론도 잘하지만, 문서를 만드는 데에도 사원보다 월등한 능력이 있다고 하자. 이 사원의 문서작성 속도조차도 변호사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변호사는 사원을 고용하지 않고 혼자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유리할까? 그렇지 않다. 비록 변호사가 더 적은 시간을 들여 더 많은 문서를 작성할 수 있지만 그 시간에 더 많은 소송을 맡거나 재판을 준비하는 것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비록 사원이 변호사보다 문서작성을 잘 못하지만, 사원이 줄여준 시간으로 변호사가 추가로 더 많은 수입을 올려 사원에게 급여를 주고 단돈 1원이라도 남는 게 있다면 사원은 문서작성에 비교우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은 이런 이유로 많은 일자리가 생겨난다.
이와 같이 어느 개인이나 국가가 다른 개인이나 국가보다 모든 면에서 능력이 뒤쳐진다고 하더라도 각자 분야에서 비교우위가 있어서 각자자신의 분야에 열중하여 만든 재화를 서로 교환한다면, 교환하지 않고 각자 여러 물건을 생산하는 것보다 더 풍부한 재화를 생산할 수 있어 행복한 사회가 된다.
비교우위론의 주된 목적은 국제무역의 이익을 설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각 나라가 상대적으로 효율적인 분야에 특화하고 그 분야의 생산물 일부를 수출해서 비교열위의 상품들과 교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절대우위를 가진 나라가 모든 것을 만들어 수출에 주력하고 수입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절대우위를 가지지 못하는 나라는 결국 빚쟁이가 되고 말 것이다. 다시 말해 비교우위를 찾는 것은 그 분야에 집중하여 절대우위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말이다. 그때까지는 비교우위를 찾았다고 해도 결코 위에 등장한 남자처럼 절망감을 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비교우위론에서 우리는 비교우위를 찾아서 그것을 훈련하고 발전시켜 절대우위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그런 절대우위가 경쟁력이라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는 학문은 경영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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