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하늘까지 자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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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소련 수상 니키타 흐루시초프(Nikita Khrushchev)는 “나무는 하늘까지 자라지 않는다”라는 말로 성장에 한계가 있음을 강조했다. 월 스트리트에서는 이 말을 주식시장의 가격이 끝없이 오를 수 없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돈이 있는 사람에게 돈이 몰리고, 정보가 있는 기관에 더 많은 정보가 축적된다. 완전 평등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돈과 정보를 이미 가진 사람은 스스로의 노력 이외에도 돈이 돈을 벌고 정보가 정보를 물어 온다. 밀림에 똑 같은 크기의 사자가 있다고 하자. 우연히 초기에 많은 먹이를 먹을 수 있었다면, 더 덩치가 커지고 먹이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이 남보다 우월해져 더 덩치가 커진다. 이런 것을 양의 피드백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계속되지는 않는다. 어느 순간 살이 찐 사자는 느려질 것이고, 돈이 많은 부자는 게을러 지거나 교만으로 인해 실수를 할지도 모른다. 가난한 사람은 빚을 지게 되고 자신의 노동으로 벌은 돈의 일부를 이자로 지급해야 한다. 점점 가난해 지고 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음의 피드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을 교훈 삼아 각고의 노력으로 기회를 잡고 양의 피드백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일종의 순환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대부분은 이렇게 음과 양의 피드백에 의해 순환이 계속되는 현상을 계속하고 있다.

사실 전통 경제학의 세상은 수확체감의 법칙(Diminishing Returns to Scale)이 적용되는 세상이다. 수확체감이란 수확체증의 반대 현상으로 어떤 생산물을 생산하는 데 필요로 하는 다른 투입량을 일정하게 하고 노동의 투입량을 증가시키면, 생산물 전체로서는 증대되지만 추가 투입량 1단위에 대한 생산물의 한계적 증가분은 차차 감소하게 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일정한 농지에서 작업하는 노동자수가 증가할수록 1인당 수확량은 점차 적어진다는 말이다.

과거의 경제학자들은 수확체증과 체감에 대한 개념을 함께 정리하였지만, 현실에서는 늘 수확체감이 지배한다고 생각했다. 이 개념을 정립한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샬이 살던 시대는 수확체감이 쉽게 발견되는 산업이 주를 이루던 시절이다. 천연자원을 가공하는 생산의 경우 쉽게 수확체감의 단계가 도달하게 된다. 대부분의 비용이 변동비용이기 때문이다.


지식경제에서 수확체증 현상이 일어나는 규모가 더 커지는 이유로 높은 개발비용을 예로 든다. 사실, 실제 경제의 많은 부분이 수확체증에 따라 운용되고 있다. 다만 기술집약도가 높은 산업일수록 그런 현상이 더 오랫동안 지속될 뿐이다.

그런데 컴퓨터가 발전하고 디지털 경제라는 새로운 가치 생산의 방법이 나타나자 수확체증이 지속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착각하기 시작했다. 수확체증이 지속되는 새로운 경제가 나타났다고 말이다. 특별히 수확체증이라는 것을 새롭게 조명한 스탠포드(Stanford)대 경제학과 교수 브라이언 아서는 농업이나 자연 자원을 많이 소모하는 대량 생산 체제에서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지배하게 되고, 첨단 기술의 개발과 지식 중심의 생산 체제에서는 반대로 수확체증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수확체증의 법칙은 대부분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하이테크 산업뿐만 아니라 전통적 산업에서도 나타난다는 말이다. 디지털 경제에서 특별히 눈에 잘 뛴다고 해서 수확체증의 법칙이 새로운 이론이라고 할 수 없다.


거대한 초기 개발 비용은 그 제품을 많이 팔수록 제품의 단위 비용이 줄어들게 되는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사실 대규모 시설을 필요로 하는 굴뚝 사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수확체증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을 뿐이지, 과거의 산업에도 이런 현상을 쭉 존재하였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규모의 경제’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규모의 경제란 생산요소 투입량의 증대, 즉 생산규모의 확대에 따라 생산비용이 절감되어 이익이 커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생산자 입장에서 수확체증이 일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평균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개발비용이나 고정비용이 클수록 수확체증이 계속된다. 평균비용이 계속해서 줄어드는 만큼 한계생산성이 계속 높아진다.

수확체증으로 인한 생산성 증가와 효율성도 마찬가지다. 신경제는 과거 수확체감의 시대에서 수확체증의 시대로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역시 한계를 맞이하게 된다. 토너먼트의 형태와 특성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생산성은 오히려 줄어들게 되어 있다. 공룡처럼 커진 거대기업이 유연성과 스피드가 떨어져 경쟁력을 잃게 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노동력과 자원에 의존하는 생산의 경우에는 어느 단계에 이르게 되면 생산요소의 증가로 인한 이익보다 그를 관리하기 위한 비용이 더 쉽게 늘어날 수 있을 뿐이다. 단순한 예로 많은 사람이 모여 함께 일하다 보면 복잡해지고 혼란스럽고 갈등이 커지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느 단계에 이르면 또 다른 고정비용과 관리비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어느 순간이 되면 모든 분야에서 마이너스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수확체감의 법칙이 나타날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수확체증과 체감이 번갈아 나타날 수도 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세상에서는 투입과 산출이 일정한 비율로 나타나는 현상은 오히려 매우 특수한 경우다. 복잡계 학자들이 이야기하는 비선형 관계  (non-linear) 가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현상이다.


어느 단계에 들어서면 한계 생산성뿐 아니라 전체의 생산량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생산요소가 늘어난다고 계속해서 생산량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한정된 공간에 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오히려 서로에게 방해가 되어 생산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단순히 모이는 것만으로 힘이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방법으로 모인 사람들을 뭉치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다시 말해 수확체증이 지속적으로 존재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설계가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오합지졸烏合之卒이라는 말이 있다. 까마귀가 모인 것처럼 질서가 없이 모인 병졸이라는 뜻으로, 임시로 모여들어서 규율이 없고 무질서한 병졸을 가리킨다. 이런 병사가 많이 모인다고 전체의 힘이 강해질 리 없다. 이들을 조직하고 하나의 힘으로 뭉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기업에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더 나은 아이디어가 나오지는 않는다. 각자 학습에 대한 의지가 있으며 서로를 자극하고 또 자극을 받으려는 열린 마음이 없다면 그야말로 음해와 갈등만 나타날지도 모른다. 시너지효과도 그리고 수확체증의 법칙도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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