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상영된 영국 영화의 제목<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은 말 그대로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의 숫자를 세거나 기차번호를 기록하는 일을 의미한다. 이외로 많은 영국사람들이 강태공이 낚시로 세월을 낚듯 목적도 의미도 없는 트레인스포팅을 하면서 시간을 때운다고 한다. 영화 <트레인스포팅>은 불확실한 세상에 대한 좌절을 견디지 못하고 젊은이들이 마약을 하며 백수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주인공 마크 렌턴(이완 맥그리거)이 경찰인 듯한 사람들에게 좇기는 장면을 배경으로 “인생을 선택하라. 직업을 가져라. 출세를 원하라. 가족을 생각하라”는 내레이션 대사로 시작된다. 하지만 렌턴은 곧 이은 다음의 대사로 그 반대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다.
“그런데 내가 왜 그런 것들을 선택을 해야 하지? 나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Why would I want to do a thing like that? I chose not to choose life).”
하기는 선택하지 않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재의 상황을 택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거나 더 나은 선택을 위해 기다리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오랜 생각 끝에 잘못된 선택을 하느니, 선택의 시간을 연기하는 것도 방법이기는 하다. 우리는 자주 ‘선택의 함정’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이나 의사결정학 등은 우리에게 선택을 위한 아주 간단하고도 유용한 생각의 틀을 제공해 준다. 한계분석적인 편익분석은 비용과 이익만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늘 우리에게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문제는 비용과 이익이라는 것이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비용과 이익이 정확한 숫자로 표현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이런저런 이유로 세상은 우리에게 정확한 답을 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주관적인 판단이나 직관적인 평가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착각에 의한 선택의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가장 많은 실수는 시간이라는 변수와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이익과 비용이 단 한번씩만 발생한다면 선택의 문제는 조금은 간단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의 대부분의 선택은 여러 번의 비용과 다양한 이익을 동반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발생 시점도 동시적이지 않다. 오늘의 선택이 앞으로 지속적인 노력과 계속되는 비용을 요구할 수 있다. 반면 그에 대한 그 이익은 매우 먼 장래에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경우 우리는 쉽게 눈 앞에 이익에 집착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물론 오늘의 100만원과 10년 후 100만원은 전혀 다른 가치를 가진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누구라도 오늘 사용할 수 있는 100만원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10년 후 200만원이라면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경우는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할인율에 따라 달라진다. 할인율이란 기대이익을 다른 측면에서 바라본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만약 기대이익이 10%라면 10년 후 200만원은 오늘날의 100만원보다 가치가 적어진다. 그렇지만 10년 후 1000만원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좋은 습관을 만들거나 학습을 통해 얻어지는 가치는 이런 수치를 넘어선다. 10년 후에 1000만원이 생길 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수입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것뿐 아니라, 돈을 벌어주는 수익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단기적인 이익을 너무 강조하는 오류를 범한다. 이런 ‘시간의 함정’은 늘상 일어나는 현상이다.
미국에서는 한 때 코카콜라와 펩시콜라가 시음테스트로 전쟁을 벌인 적이 있다. 70년대 ‘펩시첼린지’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것이다. 눈을 가리고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를 맛본 뒤 평가하는 블라인드 시음 테스트였다. 펩시는 코카콜라보다 더 달콤하기 때문에 첫 맛으로 선택해야 하는 테스트에서 펩시가 우세한 형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TV광고를 통해서 연일 쏟아지는 펩시의 승리가 코카콜라의 경영진을 불안하게 했다. 마침내 코카콜라의 경영진은 역사상 가장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코카콜라의 맛에 카랴멜 향을 첨가해 당도를 높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의 함정에 빠져버린 잘못된 선택이었다. 시음대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주어진 세팅에 따라 단지 한 모금을 마시지만, 현실에서 콜라를 마시는 사람들은 한 모금이 아니라 한잔 또는 한 캔을 마신다. 소비자들은 한 모금의 달콤함으로 콜라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한잔을 마시는 동안의 지속적인 짜릿함과 시원함 때문에 콜라를 집어 든다 말이다. 시음테스트의 결과만을 가지고 전략을 바꾸었던 코카콜라는 엄청난 시장점유율을 빼앗긴 후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우리도 이처럼 착각에 의해 순간을 선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명한 선택을 위해서는 모든 이익과 비용을 함께 고려해야 하지만 발생하는 시점에 시간적 공간적 차이가 있는 경우 한쪽을 놓치고 만다. 이익에 집중하다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비용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그렇다. 물로 가는 자동차가 발명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과 언론까지 동원된 자리에서 그 시연회를 가졌다. 드디어 휘발유대신 물을 넣고 달리는 데 성공하자 모두 환호성을 올렸다. 친환경적인데다 그 경제적 효과에 대한 이익을 생각한다면 정말 쾌거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동차를 움직이기 위해 휘발유를 사용하는 것보다 물을 연료로 바꾸는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특성에다 대중을 따르는 심리가 더해져 너무나 뻔한 비용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반드시 인식해야 할 비용을 놓치거나, 고려해야 하지 않을 비용을 비용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빠지는 ‘선택의 함정’이 곳곳에 널려 있다. 경제학은 그 중요성을 감안하여 매몰비용과 기회비용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해 두고 있다.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서는 무엇이 이익인가는 물론 어떤 것이 비용인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 그 중에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실제로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비용을 비용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중 그 유명한 기회비용이라는 것이 있다. 기회비용이란 한 가지를 선택함으로써 포기하게 되는 것의 총가치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포기한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기회비용이라는 말이다. 기회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비용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를 선택했다는 것은 다른 선택의 기회들을 포기한 것이고 한결 같이 놓치기 아까운 것들이다. 그 중에서 가장 아까운 기회와 바꾼 비용이 기회비용이다. 우리들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기회비용에 따라 행동을 결정한다. 수시로 함정에 빠지기도 하면서 말이다.
우리가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가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영화 관람료가 8,000원이라고 하자. 그러면 우리가 지불하는 비용은 총 얼마가 되나? 영화요금 8,000 원이 비용의 전부인가? 그렇지 않다. 영화를 보기 위해 우리가 지불하는 비용은 금전적 비용 외에도 시간비용이 있다.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갔다 왔다 하는 시간과 영화를 보는 시간을 모두 합해 4시간이 필요하다고 해보자. 물론 사람마다 기회비용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시간당 임금이 10만원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영화를 선택함으로써 발생하는 기회비용은 40만원에 달한다. 물론 그 시간에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그렇게 비싼 영화를 봐야 할까? 물론 이익이 비용보다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 시간에 돈을 받고 일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영화를 봄으로써 생기는 이익이 책을 보거나 다른 일을 해서 얻어질 이익 즉 기회비용보다 크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선택이란 알게 모르게 이처럼 기회비용을 감안하게 되어 있다.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일을 나두고 영화를 보러 가는 경우는 비합리적인 ‘선택의 함정’ 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것이 기회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비용과 관련되어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무엇이 비용이 아닌가?’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계비용이 아닌 것을 비용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 비용은 침몰원가 또는 매몰비용(Sunk Costs)이라고 불린다. 매몰비용은 이미 지출된 비용 중에서 현재 의사 결정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는 비용을 뜻한다. 아니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되는 비용이다. 오랜 기간 동안 투자해서 출시된 상품에 판촉과 광고를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고액의 회비를 낸 스포츠 클럽에서는 팔의 무리가 가더라도 계속 운동을 해야 한다는 어리석음이 바로 매몰비용에 대한 집착에서 파생된 것이다. 새로운 자동차를 출시하기 위해 이미 들어간 비용은 마케팅에 대한 의사결정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이미 사용된 비용은 자동차 판매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자동차로 얼마나 벌 수 있느냐의 판단이 중요하다. 한가지 더 생각해 보자.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 위해 한 호텔을 10만원에 예약하고 계약금을 2만원 지급했다고 하자. 만약 그 날짜에 가지 않으면 계약금 2만원은 돌려봤을 수 없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좋은 호텔을 8만원에 숙박할 수 있는 제안을 받았다고 해보자. 어느 호텔을 가야 할까? 분명해 보이지만 계약금 2만원이 아까워 원래 예약했던 호텔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8만원을 지출하고 더 좋은 호텔로 가느냐 아니면 같은 8만원을 주고 원래 예약했던 호텔을 택하느냐의 선택이 되어야 한다.
좀더 확실한 예를 하나 더 들어 보자. 새로 개봉한 영화를 보는데 1만원의 가치를 느낀다고 하자. 그런데 6천원에 예매한 표를 잃어 버렸다. 표를 다시 구입해야 할까? 아니면 영화를 보기 위해 1만2천원을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야 할까?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에게 정답은 표를 다시 사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계비용은 6천원이지만 한계이익은 1만원이기 때문이다. 이때 잃어버린 표의 비용 6천원은 이미 매몰비용이다. 엎질러진 물을 후회해 봐도 소용없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많이 투자할수록 그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 오랜 시간 끌어온 협상이나 프로젝트는 그 결과가 가져다 주는 이익과 상관없이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투자가 꼭 돈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잘못 고른 지루하고 도움도 별로 안 되는 책을 중간에 던져 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 시간에 다른 책을 읽는 것이 더 현명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잘못된 인간관계도 그렇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바로 인연을 끊어야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 매몰비용 오류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기업의 투자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투자로 판명이 났는데도 그 동안 들인 돈과 노력이 아까워 사업을 그만두지 못한다. 이런 함정은 똑똑한 사람은, 물론 수많은 전문가를 보유한 조직에게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책임의 문제로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황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자기 합리화나 기대를 가지고 주변사람의 긍정적인 의견에 귀 기울이게 된다. 그러나 매몰비용은 결코 되돌릴 수 없고, 더 나가면 손실은 더 커진다. 의사결정 과정에 매몰비용 오류가 개입하지 못하게 하려면 과거는 과거이고, 쓴 돈은 쓴 돈이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기회비용와 매몰비용이 아니라도 비용은 잘 보이지 않는 종류의 것이다. 이익과 비용을 비교하여 이익이 큰 것을 선택한다는 간단한 원칙도, 숨어 있는 비용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새로운 국토개발사업의 경우 이익은 비교적 잘 파악되지만, 그에 따른 환경에 미치는 마이너스 영향 즉 비용은 잘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인간의 특성이 더해지면, 이익만 크게 강조해서 보게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생각의 속도나 용량의 한계로 인하여 우리는 잘못된 결정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경제학은 우리 모두 매우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숨겨진 이익과 비용을 모두 찾아낼 수없다면, 결코 최선의 선택을 얻을 수 없다. 더 나아가 현실에서의 우리는 너무 자신 만만해서 또는 감정 또는 무의식의 지배를 받아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들을 ‘심리적 함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사고 자체가 한계를 가지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들이다. 인간에 관한 수많은 심리적 특성이 보고되고 있지만, 선택과 관련된 부분만 다시 요약하면 몇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여러 번 언급한바와 같이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현상을 해석하려는 특징을 들 수 있다. 흔히 고정관념이라고 부르는 것이 여기에 포함된다. 언급하였듯이 효율성을 위해 우리의 의식이 무의식에 많은 부분을 위임한 탓이기도 하다. 둘째로 자신이 속한 무리의 움직임이나 의견을 바람직한 수준 이상으로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이었거나 본능적인 사회성 때문일 수도 있다. 세째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부정적인 측면을 실제보다 더 강하게 인식한다는 점이다. 한번의 위험한 상황이 생존과 관계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네째로 일단 자신에게 닥치거나 스스로 결정한 상황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드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고 객관적으로 낮은 확률을 가진 상황에서도 “잘 되겠지”라는 기대를 가진다는 말이다. 위 네가지 인간의 특성 모두 효율적인 일상을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곧잘 ‘선택의 함정’에 빠져들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다.
고정관념의 함정이란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어 버리기 때문에 생기는 것을 말한다. 현상유지의 함정이라는 것도 고정관념에 의한 함정의 한 유형이다. 의사 결정시 현재 상태를 지속하려는 보수성 때문에 생기는 오류로, 여러 가지 대안 중에 현상 유지에 도움이 되는 방안에 집착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트레인스포팅>의 젊은이들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이유를 찾아 그것을 합리화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 역시 우리 모두가 모험심 보다 위험을 회피하려는 본성이 더 강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며 기존의 정보를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지기(知己)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의 판단은 이미 알고 있거나 무의식에 저장된 가장 극적이거나 최근에 경험한 사건에 영향을 받는다. 인간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그렇게 진화되어 온 것이다. 이처럼 선입견을 갖게 되면 처음에 생각했던 견해나 느낌을 뒷받침해 줄 정보만 받아들이고 그에 반하는 정보를 무시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이미 논의한 것처럼 어떤 문제든지 항상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또는 여러 사람들과 의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주변 사람이 전문가일 경우에 그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아 오히려 고정관념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얻으려는 것은 다양한 시각이지, 다른 사람의 결정이 아니다.
부정적인 정보를 실제 이상으로 강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생기는 선택의 오류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편이다. 예를들어 2000년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대니얼 맥퍼든Daniel McFadden은 사람들은 똑같은 당첨 확률을 가진 복권이라도 이익을 강조해 설명하느냐, 손해를 강조해 설명하느냐에 따라 당첨 확률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똑 같은 이야기인데도 긍정적인 면을 앞세우는 것과 부정적인 측면을 먼저 이야기하는 단순한 구성의 차이에 의해서도 잘못된 선택을 유도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과학지 <뉴사이언티스트, 2007. 5. 5>에 게재된 논문 ‘탁월한 선택을 위한 10가지 방법’에서 더글러스Kate Douglas와 존스Dan Jones는 다음과 같은 예를 소개하고 있다. 질병이 발생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600명이 사망한다고 가정해보자. 병과 맞서 싸우기 위해 두 가지 계획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프로그램 A는 200명을 구할 수 있다. 프로그램 B는 600명을 구할 수 있는 확률이 3분의 1, 아무도 못 구할 수 있는 확률이 3분의 2다. 이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사실 A와 B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하든 확률로 보면 결과는 동일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A 프로그램을 더 나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프래그램 B에서 아무도 못 구할 수 있는 확률이 3분의 2라는 것이 너무나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더글러스와 존슨도 매퍼든이 강조한 바와 같이 “긍정적인 틀 안에서는 부정적이거나 위험한 상황을 회피하는 반면 부정적인 틀 안에서는 좀 더 위험한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때문에 식료품의 제품 설명서에 “지방 함유율 10%” 대신 “90% 무지방”이라고 씌어 있다는 것이다. 같은 이야기지만 부정적인 단어가 선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부정성 효과(Negativity Effect)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어떤 부정적인 정보가 나타나면 다른 긍정적인 정보보다 부정적인 것에 더 비중을 두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반면에 부정성 효과의 반대되는 현상으로 후광효과(Halo Effect)라는 것도 있다. 어떤 대상을 평가할 때 그 대상의 어느 한 측면의 특질이 다른 특질들에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보통 인물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외모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을 경우 그 사람의 지능이나 성격 등도 좋게 평가하는 경우를 가리키다. 이 또한 자신이 처음 결정한 것이나 자신에게 닥친 일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간의 이런 특성은 우리의 일상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닌 즐거운 것으로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되면 더 고통스런 결과를 경험할 수도 있다. 예를들어 주식시장이 침체에 빠져 약세장에 들어섰음에도, 자기가 산 주식만은 오를 것이라고 낙관하는 경우가 그렇다. 다른 사람들의 흉을 많이 보는 바로 내 앞의 사람도 자신만에게는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충분한 근거가 없음에도 ‘이들은 모두 내 편’일 것이라고 낙관하기도 한다. 여기에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를 뿐아니라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교만함까지 더하면 자기 확신이나 과신에의해 스스로 선택의 함정을 찾아 들어가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경험하고 자주 목격하는 일이다.
과거의 많은 성공적인 기업이나 기업가들이 이런 함정에 빠져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한번 성공한 사업으로 인해 가는 곳마다 주변사람들이 알아주기 시작하고 여기저기 불려다니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인기스타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이런 성공에 도취되어 자신의 역량을 과신하다 보면 자신의 내부에 실패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것조차도 알지 못한다. 알다시피 벤처기업은 성공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벤처기업이다. 이처럼 전체적으로 성공의 확률이 매우 낮을 수 밖에 없음에도 대부분 자신만은 그런 확률에서 예외라고 확신한다. 더 나아가 그런 확률에서 살아남은 몇몇 기업인은 자신의 성공을 모두 자신의 역량 때문이라는 착각에 빠져 버리고 만다.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창업자들 일부가 그랬다. 수익 한번 제대로 내본적도 없이 코스닥에 등록되어 시가 총액이 소위 굴뚝기업을 능가하게 되자, 자신의 경영수완이나 미래를 보는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는 자기과신에 빠져 많은 사람들을 어려움에 빠뜨렸다. 비도덕적인 사람들의 경우는 아예 우리의 논의에서 빼놓기로 하자. 그들은 자신의 성공에 주변환경의 우호적인 변화와 자신과 함께 한 사람들의 뒷받침이 존재했다는 평범한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은 다 볼 수 있는 데 정작 본인은 자신 앞에 놓여진 그런 함정을 보지 못한다.
이러한 함정들은 우리가 늘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선택이 전혀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그런 결과가 최선이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심리적 함정에 빠지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그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객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으며 쉽게 선택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함정에 빠지게 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 방심하거나 격한 감정과 같은 것들이 있다. 특히 화가 났을 때나 슬플 때처럼 감정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후회스러운 선택을 하는 경우는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냉정은 이성과, 열정은 감정과 대치된다. 냉정을 잃는 경우 쉽게 선택의 함정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사냥에서 돌아오는 길에 칭기스칸이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시려 하자 그가 기르던 매가 물을 못마시게 방해했다는 일화가 있다. 칭기즈칸은 화가 나서 자신이 아끼던 매를 칼로 베어버렸다. 다시 물을 마시려 위를 쳐다보니 바위 안의 고인 물에 죽은 독사가 썩어가고 있었다. 자신의 총명하고 충성스러운 매가 독물을 마시지 못하게 했다가 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깨닫고 다음과 같이 결심한다.
“이제는 화가 난 상태에서는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않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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