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 have loved you, so you must love one another.

A new command I give you: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so you must love one another.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요한복음 13:34

Explore the Table of Contents

Go to English Version


<Source: FreeBibleimages :: The Great Commission :: Jesus commissions His disciples to share the gospel (Matthew 28:16-20)>


우리가 지금까지 인용한 영어의 성경구절은 국제성서공회(International Bible Society, IBS) 가 제작한 영어성경 NIV(New International Version)를 기본으로 하고 WEB(World English Bible)와 KJV(King James Version)를 참조하였다. 그리고 우리말 성경은 대한성서공회가 만든 한글개역개정판 성경에서 인용하였다. 

구약성경은 대부분이 히브리어로 쓰여졌으며 아람어가 일부 포함되어 있다. 신약성경은 그리스어인 헬라어로 쓰여졌으며 약간의 아람어가 등장한다. 이런 성경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것이니, 원문에도 충실하고 현대적 언어 생활에도 잘 맞는 편리한 성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 무척 어려울 것이라는 짐작을 가능하게 한다. 영어성경의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으며 오늘날에도 성경번역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예로 ‘성(性)-중립적인 성경(Gender-neutral NIV)’이라 불리는 TNIV(Today’s New International Version)’에 관한 논쟁을 들 수 있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성경에 등장하는 언어에 있어 남녀의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 반대하는 사람들은 문화적 흐름(Cultural shift)에 맞추기 위해 성경의 원래 뜻을 변질시켜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에 대한 옳고 그름은 우리의 주제를 넘어선다. 단지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은 여러 차례에 걸쳐 번역되고 또 수없이 개정된 것이라는 점이다. 어느 언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완벽하게 전달할 수 없기에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여하튼 사람마다 이런 저런 목적으로 영어 성경을 읽는다. 내가 영어로 성경을 읽는 이유도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한 가지는 영어로 성경을 읽음으로써 말씀의 의미가 좀 더 정확해 지는 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언어도 글쓴이의 의도를 완벽하게 전달할 수는 없다. 두 언어로 표현된 성경을 읽다 보면, 둘 사이에 비록 작더라도 의미에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둘 다 잘못된 번역일 수도 있고 우리말 성경이나 영어성경 중 하나가 원문과 차이가 나는 것일 수도 있다. 언어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두 개 이상의 언어로 성경을 읽음으로써 좀 더 나은 이해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보자. 야고보서에는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 야고보서 1:13)”라는 구절이 있다. 하지만 이 성경구절에서의 시험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시험(test)’이 아니라 ‘유혹’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영어성경 구절을 보면 분명해 진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위 로마서 5장 3절과 4절에 등장하는 성경구절의 영어 표현 “suffering produces perseverance; perseverance, character; and character, hope.” 중 ‘character’라는 단어의 우리말 사전의 번역은 ‘성격’, ‘품성’, ‘인격’이다. 헬라어 신약 원본을 직접 번역한 우리말 성경 표준새번역 판은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품격을 낳고, 품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로 ‘character’의 사전적 번역에 가까운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반면 우리말 개역개정판 성경에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로마서 5:3~4)”라고 되어 있다. 이에 해당하는 중국어 성경에는 “知道患難產生忍耐,忍耐產生毅力,毅力產生盼望” 라고 적고 있다. 해석하면 “환란이 인내를, 인내가 의력(毅力)을, 의력이 반망(희망)을 생산한다”라는 말이다. 중국어 성경은 영어의 ‘character’에 해당하는 단어를 굳센 힘을 의미하는 ‘의력(毅力)’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이것만 보면 우리말 성경에 나오는 ‘연단’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정말 그럴까?

이런 경우 결국은 원어를 살펴볼 수 밖에 없다. 헬라어 성경에는 이 단어가 ‘도키메- dokimhv(dokime)’로 되어 있다. 헬라어 사전에 의하면 도키메는 시험, 신임, 증거, 인정된,  연단된 등의 뜻을 지니고 있는 단어다. 그러니까 도키메는 ‘갖가지 일들과 위험에 의해 그 진실함이 증명된 원숙한 사람의 품성’을 뜻한다. 그렇다면 어느 표현이 더 원래의 의미에 가까운가?

 

개인적으로 로마서 5장 4절에 나오는 ‘연단’이라는 표현도 다른 성경구절과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비교적 원문에 가까운 멋진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연단이라는 단어는 우리말 성경 여러 곳에 등장한다. 구약에 나오는 다음의 성경구절을 보자.

위의 성경구절을 보면 우리말 ‘연단’이라는 단어는 ‘시험하다’라는 뜻을 내포하면서 ‘훈련 뒤에 얻는 성과’라는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훈련을 통과한 후에 얻는 일종의 상과 같은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연단’은 원어에서 ‘씻는다’ 또는 ‘제련하다’ ‘불을 통과하다’라는 뜻을 가진 여러 단어를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결국은 불순물을 걸러내어 더 순수한 금속을 만드는 것처럼, 몸과 마음을 단련시켜 굳세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라면 로마서 5장 4절의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는 표현이 더 멋지게 들리지 않는가?

사실은 위의 모든 표현이 조금씩 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여러 성경을 읽음으로써 더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와 함께 우리말로 된 성경에서 더 멋진 표현을 발견하는 것도 영어 성경을 읽는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 다음의 성경구절을 보자.

‘Many who are last’라는 표현을 ‘마지막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나중 된 자’라고 의미가 다르지 않으면서도 간결하고도 창조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한글성경의 야고보서 1장 4절은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말로 시작한다. 깊은 뜻이 담겨 있는 듯 보이는 이 표현은 사실 조금 모호한 느낌이 있다. 이 말의 영어 성경구절은 “Perseverance must finish its work”이며, “인내를 가지고 일을 끝내야만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제 우리말 성경구절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말의 ‘깊은 뜻’이 더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는가? 두 개의 언어가 가지는 의미를 합하면 성경구절은 조금 더 완전해지기 시작한다. 사실은 상황에 따라 늘 다른 구절이 우리들 가슴에 와 닿는다.

영어라는 게임의 룰을 정리하고 영어성경을 읽는데 도움이 되는 글을 쓰겠다는 의도로 시작했지만, 조금이나마 말씀에 더 가까워 졌음에 감사하며 이 글을 끝내고자 한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The grace of the Lord Jesus be with God’s people. Amen. – Revelation 22:21


[1] 도가니, 가혹한 시련

[2] 용광로, 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