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째 날 제 1 교시: 응용과학시간 – 최초가 최고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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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상영된 <뷰티풀 마인드>는 실제 인물인 수학자 존 내쉬의 이야기다. 주인공 존 내쉬(러셀 크로우)는 프린스턴 대학원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정도로 천재이지만, 사람과 어울리는 것보다 멍청하게 앉아서 떨어지는 물방울 개수를 세는 것을 좋아한다. 자신만의 ‘창조적 아이디어’를 찾아헤메는 그는 수시로 망상에 빠지고 만다. 기숙사에서 독방을 쓰고 있으면서 상상의 인물 찰스 허만이라는 룸메이트를 만들어 낸다. 대인관계에 있어서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는 그는 허구의 인물 찰스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MIT 교수로 일할 때는 다시 정부 비밀요원 윌리엄 파처라는 상상의 인물을 만들어 낸다. 자신의 일이 소련의 암호를 해독하는 일이라고 착각하는 그는 점점 더 사람을 회피하고, 정신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이때 그의 아내가 되는 앨리샤가 나타난다. 내쉬는 프러포즈하는 순간에도 증명이 필요하다고 머뭇거리자, 앨리샤가 한마디 한다. “우주가 무한하다는 것은 어떻게 믿지? 사랑도 마찬가지야.” 결국 이 여자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그는 정신분열증을 극복한다. 이 영화 속의 주인공 존 내쉬는 실제로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되며, 다음과 같은 수상소감을 표현했다.


“저는 오랜 세월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창조적인 이론을 발견하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발견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저는 그것을 제 아내 앨리샤를 통해 배웠습니다.”


존 내쉬John Nash 본인의 말 대로 그가 정신분열증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창조적인 이론’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의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존 내쉬는 다른 사람의 업적을 전혀 참고하지 않고 자신만의 아이디어와 방법을 이용하는 외로운 길을 택했다. 말하자면 무에서부터 시작하여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독창적인 문제해결방식을 제시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도 결국은 다른 사람의 학문적 성과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법이라는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들의 연구를 조사해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게임이론의 창시자는 존 내쉬가 아니라 폰 노이만과 모르겐슈테른이며, 존 내쉬가 프린스턴 대학원에서 수학할 당시 프린스턴에는 폰 노이만과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들이 재직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것을 찾아 헤매던 존 내쉬가 마침내 발견한 위대한 것도 아이러니컬하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찾아내는 ‘사랑’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 주어진 환경에 최적의 전략으로 맞서 살아가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그 전략이 최적이 아닐지라도 우리 모두는 그렇게 노력한다. 환경이란 대부분 주어지는 것들이다. 우리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위대한 인간의 정신은 환경 마저도 변화시켜 온 것도 사실이다. 인간의 창조적 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의 모든 과학과 문화는 인간의 상상력 덕분에 이만큼 와있다. 우리 사회가 상상력, 또 그와 관련된 창의력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상상력과 창의력의 관계는 무엇일까? 상상력과 창의력, 둘은 연관성을 가지지만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 상상력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낸 그림이거나 하나의 꿈과 같은 것이다. 반면에 창의력은 이러한 상상력을 통해 다른 것과 차별성을 가지고 실제로 구현하거나 표현해 낼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하게 된다. 창의력을 독창적 정신(initiative spirit)이나 독창력(Originality)으로 번역되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어렵게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다른 사람의 것과 유사하다면 독창성 즉 자신만의 창의성이 발휘되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상상을 통해 얻어진 아이디어가 어떤 형태로 표현되지 않는 경우에도 창의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 표현할 수 없거나 구현되지 않는다면 결과물이 없다는 말이니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차별성과 유용성에 의해 상상력과 창의력이 구분된다.


인류 역사 속에서 상상력은 여러 가지 형태로 많은 영향을 미쳐왔다.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는 수많은 발명품과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다양한 이론들 모두 상상을 통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 어느 때보다 창의력의 중요성이 더 강조되고 있는 시대다. 모든 분야에서 경쟁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반면, 그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는 이제 누구나 작은 수고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조금 안다고 으스댈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아니다.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시간과 노력만 들인다면 누구라도 쉽게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누구라도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전문 지식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전문적인 정보와 지식이 순식간에 상식이 되어 버려 더 이상 개인의 경쟁력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앨빈 토플러가 정보화 시대를 예견한지 벌써 27년이 지난 현재, 정보와 지식대신 창의력과 아이디어가 모든 사람의 경쟁력과 부의 원천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창의적이 될 수 있고 창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흔히 창조력이나 창의성을 이야기하면 톡톡 튀는 예술적 아이디어나 기발한 발명품을 떠올리지만,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처럼 대부분의 창조적인 결과도 기존의 창조물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창조를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모든 것에 대해 상상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하기 즉 모방은 늘 그랬듯이 창조의 시발점이 되어 왔다. 사실 우리는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늘 ‘따라하기’를 해왔다. 아이들은 위인전을 읽으면서 위대한 사람들을 따라하려고 노력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롤 모델을 찾아 그 장점을 배워가며 사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롤 모델(role model)’이란 말 그대로 ‘본보기’이다. 따라해야 할 대상이라는 말이다.


일상에서뿐 아니라 특허와 관련된 기술이나, 사업 아이디어도 마찬가지다. 뉴턴이 관성의 법칙을 정리하여 발표한 시기는 17세기다. 그런데 이런 아이디어를 기원전 3-4세기 경 이미 묵가(墨家)의 학자들이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묵자와 그의 제자들이 집필한 책이 묵경인데 논리학, 자연과학, 철학, 윤리학 등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관성의 법칙에 관한 구절이 남아 있다.

“운동하는 물체가 정지하는 것은 움직임에 반대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 반대하는 힘이 없다면 운동하는 물체는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는 소가 말이 아닌 것처럼 명백한 사실이다.”


만약 다른 자연과학자가 뉴턴의 앞서 이들의 발견을 알고 있었다면 뉴턴만큼이나 유명인물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단지 미적분과 같은 수학적 능력이 부족해 설득력 있게 표현을 못했을 뿐이지, 뉴턴과 동시대에 살고 있던 사람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소련의 알츠슐러Genrich Altshuller는 전세계 특허 20만 건 중에서 창의적인 특허 4만 건을 추출하여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너무나 뻔한 해결책이 전체 특허의 32% 그리고 사소한 개선을 통해 특허를 받은 경우가 45%에 달했다. 기존 발명에서 눈에 띄게 진보를 한 것이라 평가할 만한 것은 18%, 새로운 개념의 발명이라 볼 수 있는 것은 3% 그리고 순수과학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발견이라 보는 경우는 겨우 1% 미만이었다. 다시 말해 특별한 발명이라 할 수 없는 특허가 전체 발명의 77%나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는 과학적 발견의 영역인 1%를 제외한 99%는 누구나 학습을 통해 창의적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다.


영화나 문학에는 패러디라는 말이 사용된다. 패러디(Parody)란 원래 어떤 저명한 작가의 시의 문체나 운율을 모방하여 그것을 풍자적으로 또는 조롱 삼아 꾸민 익살스러운 시문(詩文)을 말한다. 유명한 작품의 한 단어, 한 구절을 비틀어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 그 본질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유명한 독백으로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라는 말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텔레비전의 역기능이 심각히 우려되었던 미국의 1960년대에는 이것을 패러디 한 “텔레비전을 보느냐 마느냐, 이것이 문제로다(TV or not TV that is the question.)”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이런 종류의 패러디는 실상 늘 있어왔던 일이다. 패러디가 오늘날의 특수한 현상도 아니요, 문학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넓은 개념으로 보면 패러디는 모방의 또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지구상의 모든 문화들은 서로 다른 문화들을 따라하면서 창조된다. 오늘날 우리가 즐기고 있는 음악이나 영화 등은 이제 더 이상 한국적인 것만은 아니다. 미국의 문화가 우리의 문화를 점령했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미국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미국의 문화가 언제부터 미국의 문화였는가? 미국의 문화 자체가 유럽문화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문화 역시 중국이나 인도, 그리고 중동의 문화를 따라하면서 진화된 것이다. 문화자체가 패러디인 셈이다. 각 나라의 문화는 결국 서로의 문화를 모방하고 선택하면서 진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진화한다는 말 자체가 누군가를 따라하면서 확산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비즈니스 세계도 마찬가지다. “새롭게 생각하라(Think new!)”는 당시 세계 최대의 컴퓨터 업체인 IBM이 1920년부터 시작한 오랜 슬로건 “생각하라(Think)”를 밖으로 표출한 한 때의 광고 카피였다. 그러자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1997년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면서 단어 하나 바꾸어 따라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과학적 발견이나 발명품 역시 ‘따라하기’로 만들어 진 것들이다. 세계최고의 부자라고 하는 빌 게이츠도 모방을 통해 사업에 성공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대형 컴퓨터의 운영시스템을 모방해 개인용 컴퓨터에 사용할 수 있는 도스시스템을 만들어 냈다. 그것도 게리 킬달 Gary Kildal이 만든 최초의 운영시스템을 개량한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회사가 직접 개발한 것이 아니라 시애틀의 작은 회사의 Q-dos라는 프로그램 소스를 구입하여 IBM에 납품하였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윈도우 체제도 1984년 애플이 먼저 출시한 상품이다. 애플컴퓨터가 그래픽 모드의 화면을 만들어 내자, 빌 게이츠는 다시 이를 모방해 윈도시스템을 내놓게 된다. 이처럼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제품은 다른 기업의 제품을 모방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시장을 관찰한 빌 게이츠는 더 나은 창조물을 만들기 위해 경쟁자를 따라하면서,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수 있었다.


과학과 발명 분야뿐이 아니다. 사회나 경제 시스템 역시 모방에 의하여 진화되어 온 것들이다. 진화경제학자인 리처드 넬슨Richard Nelson은 경제 성장에 필요한 기술을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 두 유형으로 나누고 있다. 물리적 기술이란 짐작하듯이 과학과 관련된 지식이며 사회적 기술은 일을 하도록 사람들을 조직하는 방식으로 법규, 화폐, 법인, 주식회사 등이 여기에 속한다. 리처드 넬슨은 이런 사회적 기술들도 물리적 기술과 함께 서로 공진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진화한다는 것이 선택되고 모방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회사의 형태도 이들이 이야기하는 사회적 기술 중 하나임으로 과거 종합상사라고 불리던 무역회사와 요즘 대부분의 기업의 형태인 주식회사도 사회적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만 해도 유럽의 사회적 기술과 물리적 기술은 동양에 비해서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드레 군더 프랑크Andre Gunder Frank의 <리오리엔트>에 의하면 17세기 초 중국의 난징과 광저우의 인구가 각각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17세기 인도 무굴 제국에는 무려 5,000여 개의 도시가 번성하고 있었고, 전체 인구의 15%가 도시에 거주했다. 반면 당시 서유럽 전체의 도시 인구는 모두 합쳐도 중국 광저우시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17세기 인도의 무굴 제국은 유럽을 대상으로 한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특히 화약의 원료가 되는 초석을 팔아서 많은 이익을 남겼던 모양이다. 당시 인도의 무역주체는 독점적 지위를 가진 국가였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인도의 무역체계를 모방하여 독립적인 동인도회사를 설립한다. 즉 독점적 지위를 가지는 인도의 무역방식을 모방하되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을 설립했다. 이것이 동인도회사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영국은 그들의 지배대상이었던 인도의 무역회사를 모방한 것이다. 주식회사 형태의 영국 동인도회사를 다시 유럽의 다른 나라가 앞다투어 모방하게 된다.

사업모델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야후라는 검색 사이트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따라한다. 역시 미국의 이베이를 모방하여 한국의 옥션이 탄생했다. 인터넷포털 네이버의 대표 서비스이며 오늘날의 네이버를 만든 일등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지식iN’은 인터넷 한겨레의 ‘디비딕’이라는 질문, 답변 커뮤니티에서 나왔다. 모방은 우리 모두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모방할 수 있는 사람은 창조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고 남이 하는 일을 따라만 하는 것이 창조라는 말은 아니다. 그렇게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창조하기는 기본적으로 ‘따라하기’ + ‘상상하기’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에 기업이나 산업에서 요구되는 아이디어에는 추가적인 것이 필요하다. 더 창의적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성과 유용성 때문에 그렇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더 창의적이기를 요구하는 것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며 시간 낭비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너무 앞서가는 발명품이나 기술은 시장에서 외면당할 위험도 그만큼 높아진다. 따라서 현실성 있는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사실, 정보, 지식들을 치밀하게 분석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분석을 기초하여 창의적인 재조합을 시도하는 것이 창조력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창조력은 ‘따라하기+분석하기+상상하기+조합하기’에 의해 강화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창의력 개발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수평적 사고를 강조한다. 수평적 사고란 사고의 폭을 확대시켜 상상이나 연상 그리고 때로는 엉뚱한 시각으로 새롭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찾아 자유롭게 넘나드는 생각의 방법을 의미한다. 지기(知己)에서 이야기한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반면 수직적 사고란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여 분석적이며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기술을 지칭한다. 언급하였듯이 이런 두가지 사고방식 역시 대립적이 아닌 상호보완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수평적 사고를 통해 생각의 폭을 넓힌 다음, 다시 수직적 사고를 통해 아이디어를 수렴하여 최선의 문제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 수평적 사고는 대안을 만들어 내고 수직적 사고는 선택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 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바로 이 수평적 사고라는 개념을 창시한 영국의 에드워드 드 보노Edward de Bono는 ‘창의력이란 단순히 신비한 능력이나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창의적 사고 기법과 도구를 사용하고 훈련함으로써 개발될 수 있는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2000년에 출판된 <단순함의 원리>라는 책에서 저자 스티브 리브킨Steve Rivkin과 잭 트라우트Jack Trout는 아이디어 발굴은 모방이라는 단순함에서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그 단순함은 단순한 ‘따라하기’는 아니다. 모방을 하되 자신의 목적에 맞도록 변형 또는 재조합을 거쳐야 할 뿐아니라 분석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리브킨과 트라우트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대용하기-기존 아이디어의 일부를 가져다 쓰기
혼합하기-기존의 아이디어를 혼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기
변형하기-유사한 것에 적용하기
확대하거나 축소하기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
제거하기
전환 또는 재배치하기


모방의 대상 전체를 가져다 유사한 곳에 적용하거나 다른 것으로 전환하는 것 등은 전체를 변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아이디어 중 일부를 가져다 쓰거나, 확대하거나, 축소하기 그리고 제거하기와 혼합하기 등의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따라하기’의 대상을 분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분해의 결과로 얻어진 조각들이 다름아닌 우리가 이야기한 모듈에 해당한다. 그 모듈들을 하나하나 분석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변형해야 할 것은 수정한 후에 그 중 전부 또는 일부를 재조립하는 것이 모방을 통한 창조과정이라는 것이다.


불루오션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낸 김위찬W. Chan Kim교수와 르네 마보안Renee Mauborgne이 공동으로 저술한 <불루오션 전략>이라는 책이 있다. 그들은 불루오션을 찾아내는 방법으로 ‘이알알시(ERRC)’를 제안한다. ERRC는 Eliminate, Reduce, Raise, Create 즉 제거, 감소, 증가, 창조의 머리글자다. 불루오션을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역시 하나의 제품이나 서비스 또는 사업을 잘게 잘라 보는 일이다. 그런 것이 다름 아닌 분석이다. 그런 후 각각의 요소 중 일부를 아예 없애버리거나 줄여버리고, 바람직한 요소는 증가시키고 또 첨가하여 재조합 하여야 한다. 그런 재조합의 단계에서 목표하는 창조의 대상에 우리의 독창적인 상상력을 불어 넣어야 한다. 결국 따라하기 대상을 찾아내어 분석하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재조립하는 전체 과정이 모두 결합하여 ‘창조하기’가 이루어 진다.


스티브 리브킨과 잭 트라우트가 제안하는 창조의 방법과 김위찬의 ERRC는 결국 같은 이야기다. 지식자체도 이렇게 모방에 의해 진화되고 있으며, 이처럼 모방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창조의 확률이 높을 뿐 아니라 시장에서 성공할 확률도 높아지게 된다. 새로운 아이디어란 늘 시장에서 실패할 위험을 안고 있게 되어있다. 아주 엉뚱한 발명품 보다는 시장에 존재하는 것을 개선한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불루오션의 ERRC보다 더 구체적이며 실증적인 창의적 문제 해결 방법론이 트리즈(TRIZ)다. 세계 특허의 분석을 통해 발명에도 어떤 공통의 법칙과 패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이미 언급한 소련의 알츠슐러라는 사람이다. TRIZ는 러시아어인‘Teoriya Reshniya Izobretatelskikh Zadatch’의 약자로 영어로는 ‘Theory of Inventive Problem Solving’ 즉 TIPS다. 우리말로는 ‘창의적 문제 해결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TRIZ는 리브킨과 트라우트 그리고 김위찬 르네 마보안이 제안하는 창조적 접근방법에 비해 더 실질적인 것이고, 체계화된 것이다. 사실은 불루오션의 ERRC나 리브킨과 트라우트의 제안은 비즈니스를 위한 개념의 차원임으로 TRIZ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TRIZ의 방법론 역시 ‘따라하기’로 시작한다. 모방의 대상을 따라하기 위해서는 우선 모방의 대상을 잘게 자르는 작업이 필요한데, TRIZ 역시 같은 방법을 제안한다. TRIZ는 자르는 방법에 있어서도 보다 구체적으로, 시간, 공간, 전체와 부분, 그리고 조건에 의한 분리가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그 대상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상위 하위 시스템 모두를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이 분리된 것들을 재조립함으로써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 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그 모방의 대상을 찾아야 할까? 비즈니스의 세계에서의 창조는 독창적이어야만 한다. 하지만 알츠슐러는 “한 분야의 혁신은 다른 분야의 과학효과를 이용하여 일어난다”는 것을 특허의 분석을 통해 증명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속하지 않은 분야의 기술이나 방식을 모방하여 자기의 분야에 새로운 창조물을 내밀라는 이야기다. 사실 우리 앞에 놓여진 창조의 과제는 우리만 고민하고 있는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미 다른 이들이 오래 전부터 그리고 나와 전혀 다른 분야에서 오랫동안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으며, 그 중에 일부는 이미 해결되어 세상에 나와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가 따라하려는 대상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시야를 그 대상의 시공간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무선통신의 기지국 부하문제는 도로교통의 체증을 감소시키는 방법에서 그 해결책을 찾았다고 한다. 자신의 문제에 파묻히지 않고 한 걸음 물러나 주변을 둘러 보면,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분야에서 자신의 문제와 유사한 것들이 보이고 또 그 해결방안의 실마리를 찾아 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발견한 모방의 대상을 잘게 분해해 놓고 우리에 맞도록 재조합 해야 한다. 리브킨과 트라우트는 7개의 재조합의 방법을 내놓았고, 불루오션의 ERRC는 4개의 방법을 내놓은 반면 TRIZ는 40개의 발명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 세상은 이러한 재조합적인 혁신으로 성공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더 많아 질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이 세상이 요구하는 수준을 이미 넘어서 있을 정도로 발전하여, 추가적인 기술의 발전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이익의 증가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새롭고 획기적인 발명보다 기존의 기술과 지식을 재조합 하는 방법이 더 현명한 창조가 된다. 오늘날에는 자신과 전혀 다른 것들과 조합되기를 기다리는 기술과 방법들은 여기저기 널려있다. 그들을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각종 모양의 레고나 각 분야의 어른들이 찾아 헤메는 물리적 사회적 기술의 다양한 모듈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각 모듈을 창의적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학습을 통한 아이디어와 전략을 얻어내야 한다. ‘따라하기’란 결국 개인에게 있어서는 끊임없는 배움의 과정이며 사회 전체로 보아서는 학습을 통한 진화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 ‘따라하기’를 기반으로 분석적인 사고와 수평적사고를 오가며 남들이 하지 못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창조하기’다. 그렇게 만들어진 쓸만한 창조물들은 다시 ‘따라쟁이’들에 의해 확산되고 변형되면서 계속해서 진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