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째 날 제 2 교시: 진화경제학시간 –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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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역사 코미디 영화 <황산벌, 2003>은 등장인물들이 모두 지방의 사투리로 대사를 이어간다. 황산벌 전투를 앞두고 신라진영에서 신라의 왕자 김법민과 신라의 총장군 김유신이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김유신은 다음의 대사로 김법민에게 일격을 날린다.

“니나 니 애비는 정치는 알아도 전쟁은 모린데이. 세상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기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기야!”


다윈의 진화론은 한 마디로 환경에 유리한 특성을 가진 자는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을 곧잘 우리 인간사회에 적용하곤 한다. 적자란 환경에 적합한 사람이다. 환경에 잘 적응하는 사람을 강자라고 한다면,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 속의 김유신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자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머리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경쟁력이 있었던지 아니면 운이 좋았던지 상관없이,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은 자임으로 강자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진화의 본질은 살아남는 자가 아니라 살아남는데 도움이 되는 특성에 있다. 유리한 특성을 ‘가진 자’가 살아 남는 것이 아니라 유리한 특성 즉 ‘형질(形質)’이 살아남는 것이다.


복잡계를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키워드로 우리는 네트워크를 선택했다. 반면 자연계의 네트워크나 사회적 네트워크 모두 스스로 조직화하고 소멸하면서 변해가는 특성을 가진다. 그런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 변화를 잘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이미 언급하였듯이 ‘진화’라는 단어를 택해야 할 것 같다. 누군가 지시한 것도 아니고 계획한 것도 아닌 데도, 스스로 효율적으로 모습을 바꾸어 가며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릭 바인하커는 ‘조직, 시장, 경제는 생태 시스템과 단순히 비슷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진화 시스템’이라고 강조한다. 진화론에 의하면 오늘날의 정교하고 복잡한 생물들도 단세포 생물들이 수 억년에 걸쳐 진화한 것이다. 에릭 바인하커는 우리 경제도 진화의 기본법칙인 변이, 선택, 확산이 끊임없이 반복되며 환경에 적응해 다양성과 복잡성이 증가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몇 개의 단순한 도구만 사용하는 수렵 채취 경제에서 100억 개나 되는 다양하고 복잡한 상품이 생산, 유통되는 오늘날의 경제로 발전한 것도 그야말로 생태계의 진화와 똑 같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아메바와 같은 단일 세포 동물에서부터 진화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생물이 종적 번식과 생존을 위하여 자신에게 보다 유리한 특성을 선택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생물체들이 능동적으로 선택할 능력이 없었다면, 생존에 유리한 형질이 자연에 의해 선택받았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여하튼 이 과정에서 환경에 유리한 형질은 계속 강화되고 복제되었을 것이다. 우리 인간은 다른 생물체 보다 좀 더 능동적으로 유리한 특성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차별화다. 다른 생명체에서 차별화는 변이에 의해 나타난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남들과 다른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 주도적으로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성공적인 것이라면, 사람들은 그 창조물을 그대로 복사하거나 그 중 몇 가지 특성을 복제하여 자신에 맞도록 변형시켜 또 다른 차별화를 시도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따라하기’를 통해 자신 만의 특성을 만들어 낸다. 성공한 차별화는 다시 여러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되기 마련이다. 결국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태계의 변이, 선택, 확산은 인간 사회에서의 능동적인 차별화, 선택, 복제와 일대일 대응하는 개념이 된다. 특별히 인간 사회에 적용되는 진화라는 말은 지식을 축적해가는 일종의 ‘학습 알고리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에릭 바인하커의 표현처럼 진화란 ‘많은 것들을 시도해서 그 결과를 보고 도움이 되는 건 더 많이 하고 그렇지 않은 건 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많은 기술이나 디자인을 시험해보면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고, 그 중 좋은 것은 더 많이 채택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버리는 일을 반복한다. 결과적으로 채택된 기술, 채택된 사업은 살아남고 성공하면 그런 기술은 복제된다.


언급하였듯이 진화경제론자들은 경제를 ‘물리적 기술’, ‘사회적 기술’, 그리고 ‘사업계획’ 이라는 세 개의 영역이 개별적으로 진화를 해가면서 동시에 공진화가 진행되는 질서로 본다. 돌로 만든 바퀴에서 시작해 자동차, 비행기와 우주선까지 만들어지는 과정이 모두 물리적 기술의 진화다. 자연과학이 주로 탐구하는 영역에 속한다. 사냥과 농사를 위해 가족단위의 소규모 조직에서 시작해 시장이 생겨나고 돈과 복식부기가 발명되고 주식회사가 발전하며 자본시장이 형성된 것은 사회적 기술의 진화로 사회과학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생물 진화의 기본 요소인 유전자는 경제에 있어서 ‘사업계획’이라는 지식의 집합에 해당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업계획이란 한마디로 생존을 위한 지식의 집합 또는 총체적 지혜라고 할 수 있다.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을 통합하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현실에서 선택된 사업계획에는 자원이 투입되어 그 생존여부를 시험받게 된다. 이 실험에서 성공한 사업계획은 다른 기업과 언론 그리고 학자들에 의해 알려지면서 수많은 모방자를 양산하면서 확산하게 된다. 이것이 에릭 바인하커가 정의하는 경제의 진화 메커니즘이다. 이런 과정은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차별화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생물은 멸종되고 기업은 소멸한다. 자연의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기업 생태계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유다.


헤겔은 일찍이 역사의 발전 법칙을 정반합의 이론으로 설명했다. 기존의 것을 정이라고 하고 새로운 것 또는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것을 반이라 하고 그것을 통해서 새롭게 생성되는 것을 합이라고 한다. 오늘날의 퓨전이란 말도 이종문화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이며, 단어는 새롭지만 그런 현상은 과거부터 있어 왔던 것이다. 문화와 인류의 발전은 결국은 지속적인 퓨전에 의해 발전을 해왔기 때문이다. 사회의 변화만 정반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과학과 기술도 마찬가지다. 어떤 기술도 독립적으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모든 기술은 다른 기술들과의 관계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이동전화의 발명은 라디오 기술을 활용한 것이지만, 결국 컴퓨터 기술과 코딩 기술 등 다른 분야의 기술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가능했다. 사회적 기술도 그리고 지식이라는 것도 서로 영향을 주면서 발전해 왔고 또 그렇게 발전할 것이다.


TRIZ라는 창의적 문제해결 방법을 개발한 알츠슐러는 세계의 특허를 분석하면서 3가지 중요한 발견을 정리해 놓았다. 첫째, 문제와 그것의 해결방법은 산업과 과학의 경계를 뛰어넘어 반복된다. 둘째로 기술의 진화유형은 산업과 과학의 경계를 뛰어넘어 반복된다. 셋째, 한 분야의 혁신은 다른 분야의 과학을 이용하여 일어난다. 알츠슐러의 이야기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기술은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모방하면서 진화된다는 것이다. 복잡계 경제학자들도 물리적 사회적 기술들이 진화의 알고리즘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아이들은 레고 블록을 가지고 자신만의 창조물을 만든다. 우리들은 지식, 물리적 사회적 기술들을 잘게 잘라 그 하나하나를 레고 블록처럼 재조합 해가면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탁월한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형태의 레고 블록이 발견되었을 것이고, 그 새로운 블록으로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창작물의 종류는 더 다양해졌다. 1932년 한 덴마크 목수에 의해 설립된 레고는 ‘레그 고트(Leg godt)의 약자를 딴 것으로 ‘잘 놀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실제로 레고 블록 2개로 24개의 다른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6개로는 무려 9억1500만개의 조립이 가능해 지루하지 않게 잘 놀 수 있다. 레고를 만드는 회사의 설명이 그렇다. 여하튼 그 이유는 모든 레고 블록이 모두 표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양과 크기, 색상은 서로 다르지만 어느 블록이건 서로 끼워 맞출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 무한한 조립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런 레고 블록이 결국은 어른들이 가지고 노는 ‘모듈’과 같은 것이다. 모듈(Module)이란 것이 오늘날에 생겨난 특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정확도를 양보한다면 모듈은 단순히 부품이다. 단 교환이 가능하며 표준화되고 규격이 정해진 부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확장성과 변형성 모두를 특징으로 가진다. 여러 모듈 중 일부만 결합하여 변형된 물건을 만들어 낼 수도 있으며, 다른 제품의 모듈과 결합하여 전혀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기계나 컴퓨터 프로그램 등이 모듈화 되면 비용과 시간이 절약되기 때문에 많은 산업에서 모듈화가 진행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념적으로 지식이나 기술들도 모듈화되면 진화나 발전이 더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이 사용되는 모듈은 진화론에서 이야기하는 유리한 특성이나 형질에 해당한다. 지식과 기술이라는 것이 구체적인 모양을 가진 것이 아니니, 사용자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모듈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장점마저 가지고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킴 클라크Kim Clark가 지적했듯이 기술은 본질적으로 모듈적이라고 할 수 있다. 브루스 매즐리시는 그의 저서 <네 번째 불연속-인간과 기계의 공진화>에서 `진화’라는 개념이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진화의 기초단위도 모듈이다. 지식은 본질적으로 다양한 모듈로 인식할 수 있다. 컨설팅회사, 경영대학 교수들 기업가들 모두 경영의 모범사례를 찾고 이를 확산하는 데 힘을 쏟고 있는데. 바로 이 모범 사례라는 것이 실상은 모듈이라고 에릭 바인하커는 지적한다. 에릭 바인하커는 모듈을 연결하는 접착제를 전략이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사업계획에는 그런 전략들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에디슨은 “당신의 아이디어는 현재 진행 중인 문제에 적용될 때만 독창적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다 창조적일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다. 모방으로부터 시작으로 하되 어느 한 부분만 창조적이면 충분하다. 지식이 모듈로 이루어져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다른 사람이 개발해 놓은 모듈을 가져다가 조합하면 새로운 창조물이 나오게 된다. 물론 자신이 직접 개발한 모듈을 더한다면 독창성은 더욱 가치가 있게 된다. 우리나라의 옥션(www.auction.co.kr)도 원래는 이 회사를 사들인 이베이(ebay)를 모방한 것이다. 이베이는 인터넷 경매라는 모듈을 가지고 있다. 옥션은 여기에 구매자 보호프로그램이라는 모듈을 개발하여 접목시켰다. 또 하나의 창조물이 만들어 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진화된 기술의 예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디지털 기술과 기존의 전자제품이 만나 디지털 전자제품이 나왔다. PDP와 DVD 등이 그 예다. 전자기술과 생명공학의 기술이 만나 바이오 칩이 생겨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상품은 정보기술(IT)과 바이오 기술(BT) 그리고 나노미터 수준의 작은 물체들을 만들고 조작하는 나노기술(NT)아 만들어 놓은 새로운 모듈에 의해 가속화된 것이다.


우리 모두 경험과 학습을 통해 이런 모듈을 배우고 익혀간다. 그런 모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본인에게 달려있다. 대부분의 지식이 활용여하에 따라서는 지혜가 될 수 있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만의 창작물을 만든다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통합 또는 재조합 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남이 하는 것을 따라하면서 자신의 ‘상상력’을 더하는 것이기도 하다. 학습한다는 것도 결국은 따라한다는 말이며, 다른 사람들의 업적이나 방법을 따라하면서 작더라도 자신의 상상력을 보태는 것이 학문의 연구이며 예술의 창조작업이기도 하다.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상상력 자체가 따라하는 것이며 그것이 창조에 필요한 절대적 정신이라고 강조한다.


Creative thinking is not a talent. It is a skill that can be learnt. ~ Edward de Bono 창의력이란 단순히 신비한 능력이나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창의적 사고 기법과 도구를 사용하고 훈련함으로써 개발될 수 있는 기술이다. ~에드워드 드 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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