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날 제 1 교시:경제학 시간 – 단순화로 찾는 우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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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상영된 톰 행크스 주연의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의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는 아이큐가 75인데다 다리마저 불편하다. 그런 포레스트가 우연히 바람처럼 달릴 수 있는 소질을 발견하게 된다. 그로 인해 고등학교도 미식축구 선수로 졸업하고, 대학에까지 축구 선수로서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청년이 된 포레스트는 군에 입대하여 그 자신의 달리기 솜씨로 전우를 구하는 공로로 훈장도 받고, 제대 후에는 새우를 잡아 큰 돈을 모으게 된다. 포레스트는 첫사랑 제니를 만났으나 그녀는 다시 떠나 버린다. 실망에 빠진 포레스트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달리기를 하면서 3년 동안 방방곡곡을 헤맨다. 그로 인해 다시 미국의 영웅이 된다. 포레스트는 정말 단순하게 산다. 무엇이든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렸을 적에는 엄마의 말만 듣고, 조금 성장해서는 한 여자만을 사랑하고, 그리고 그냥 달리면서 단순하게 생각하는 능력만 가지고 성공한 사람이 되었다. 아이큐가 75를 넘는 우리는 어떤가?

작은 물류회사의 칠판에 “생각하며 살자!”라는 구호가 적혀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직원들이 해야 할 일들을 자주 잊어버리는 바람에 생각해 낸 것이란다. IBM의 사훈도 ‘씽크(Think)’였다. 사훈 밑에 열 가지의 행동강령이 있는데 그것도 ‘씽크’다. IBM의 홈페이지에는 아직도 씽크라는 섹션을 따로 만들어 두고 있다. 오죽하면 IBM의 노트북도 ‘씽크 패드(Think Pad)’로 지었을까? 반면 우리사회는 요즘 책을 읽으라고 너무나 강조하고픈 나머지, 생각의 중요성을 소홀히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독서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저자와 대화하며 생각하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그 곳에 진정한 독서의 가치가 존재한다. 그래서 <이디오크러시>의 주인공 조는 책을 읽을 뿐 아니라 생각하면서 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 사고, 정신, 마음과 같은 단어는 조금씩 의미가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의 두뇌가 하는 일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생각이란 기억하고 판단하는 활동이라는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 판단을 위해서는 논리적인 사유가 필요하다. 연역적 판단과 귀납적 추론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생각을 통해 우리는 결정하고, 선택하고 또 무엇인가 만들어 낸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생각하는 능력은 한계가 없어 보인다. 우리가 이 세상에 만들어 놓은 것들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 우주여행을 꿈꾸게 하는 인공위성, 외국에 있는 가족과 언제라도 통화할 수 있는 무선 전화기 등 어느 하나 놀랍지 않은 것이 없다. 실제로 우리는 복잡한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고, 또 그것을 활용해 매일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하지만 수치적으로 보면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은 그렇게 대단하다고 할 수 없다.

엄청난 기억용량을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하면 우리 뇌가 생각하는 능력은 감탄할 정도가 못 된다. 특히 우리의 연산능력은 보잘 것없을 정도다. 우리에게 생각이 있다면 컴퓨터에는 중앙처리장치(CPU)가 있다. 우리가 컴퓨터에게 무슨 명령을 내리면 하드디스크에서 정보를 끄집어 내서 연산작용을 하게 된다. 인간도 장기기억 속의 정보를 찾아내서 생각이라는 활동을 한다. 요즘 PC(데스크 탑 컴퓨터)의 생각속도는 1기가 헤르츠가 넘지만, 인간의 생각의 속도는 10메가 헤르츠 정도라고 한다. 수치로만 보면 PC가 우리의 생각속도보다 최소한 100배는 빠른 셈이다. 생각하는 속도의 차이가 100배가 아니라 2배만 차이가 나더라도 왠만해서 극복할 수 있는 수치가 아니다. 우연히라도 이겨보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인간은 두 개 이상의 요소를 가지고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도, 아주 성능이 좋지 않은 컴퓨터에 비해서도 턱없이 부족한 정보처리 능력을 보여준다. 거기다가 수시로 계산에 실수하기도 한다.


연산이라는 것도 결국은 연역법적인 사고에 속한다. 알다시피 연역법이란 일반적인 원리를 근거로 특수한 사실을 주장하는 논증 방식이다. 즉, 연역적 사고 형식은 이미 알고 있는 원리나 지식을 기초로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의 답을 찾는 것이다. 연산이란 약속된 연산규칙에 따라 특수한 문제의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이런 연산규칙에 의거하여 ‘만약’이라는 조건문(IF THEN ELSE)의 논리로만 생각한다. 이처럼 단순한 생각의 컴퓨터가 인간이 할 수 없는 엄청난 계산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컴퓨터가 가진 능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그것은 처리 속도다. 반면 인간은 컴퓨터에 비해 천천히 작동하는 생각의 기술을 강점으로 가지고 있다.


경제학에서의 인간은 합리적이다. 여기서 합리적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자신의 이익에 맞춘다는 말이다. 그런 합리적 인간은 이익을 최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는 데 실수가 없다. 주어진 환경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행동을 선택한다. 예를 들어 소비자 이론에서는 소비자의 효용극대화라는 방법을 통해 수요함수를 도출해 낸다. 효용이란 만족도를 나타내는 것이지만, 결국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말이다. 생산자 이론에서는 이윤극대화를 통해 공급함수를 추출하고, 이 두 함수가 만나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만들어진다.

이 정도 합리성이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인간이 합리적이란 가정 때문에 경제이론이 우리 경제를 설명할 수 없다고 불평하지만, 사실은 모든 사람이 완벽한 합리적인 인간일 때만 이론이 성립되는 것도 아니다. 총체적으로 합리적일 경우에도 우리의 경제이론은 현실을 잘 설명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이 시장에 참여한다면 비합리적인 사람들의 행동은 합리적인 사람들에 의해 압도당해 매몰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에 있어서도 비합리적인 사람들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할 수밖에 없다.


경제학의 한 줄기가 되는 ‘게임이론’도 인간의 합리성을 바탕으로 만들어 진다. 게임이론의 모든 게임은 ‘나와 상대방 모두 합리적이라는 것을 나와 상대방 모두가 알고 있고, 따라서 나와 상대방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이루어 진다. 간단히 말해 모든 사람이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그 사실을 상대방과 내가 안다는 것이다. 이런 게임이론에서 서로 속이거나 협박하거나 설득하는 일이 없다. 그냥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인 사고에 열중한다는 가정하에 게임이 진행된다. 1970년대 루카스Robert Lucas에 의해 제기된 경제학의 ‘합리적 기대가설’은 더 나아가 사람들이 미래까지 예측하려는 합리성까지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 즉 현재 가능한 모든 정보를 적절히 사용하여 미래를 예측하고 행동을 합리적으로 수정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누구나 주어진 정보를 최대한 활용해 합리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정부의 경제 정책은 별다른 효과를 가지지 못한다. 정부가 내놓을 정책과 그 결과까지 다 알고 미리 행동에 반영한다면 정부가 내놓는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자본시장의 효율성도 합리적 기대가설에 근거를 하고 있다. 모든 정보가 증권가격에 즉시 반영되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한들 시장수익률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물론 우리 모두 미래를 예측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 합리적 기대가설이 이야기하는 수준의 사람이 많다고 볼 수는 없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도 않지만, 정보가 있다 해도 그 정보를 의사결정에 반영할 정도로 똑똑하지도 않다. 증권회사나 투자회사들이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인력을 투입하고, 정보를 분석하기 위해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프로그램에 돈을 투자하고, 엄청난 월급을 주면서 금융전문가를 고용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 모두는 그 정도로 똑똑하지는 못하다는 이야기다. 반면에 정보가 부족하거나 주변 상황이 변하여 결과적으로 잘못된 결정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하에서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단지 인간의 능력에 한계가 있어 그 과정에서 실수도 하고 또 시간이 걸리는 것뿐이다. 완벽하게 합리적인 존재가 될 수는 없지만, 우리 모두 합리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어쩌면 비합리성까지도 고려한 고도의 합리성 혹은 영리한 합리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인간은 한 두 가지 변수만 늘어나도 쩔쩔매는 것일까? 언급하였듯이 속도와 용량 때문이다. 컴퓨터가 제 속도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중앙기억장치인 CPU와 주기억장치인 램(RAM)의 속도가 어느 정도 균형이 이루어 져야 한다. 어느 하나의 성능이 뛰어나고 해서 컴퓨터의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없다. CPU에서 연산작용을 하려면 램에서 데이터를 받아야 하는데, 그 용량과 전송하는 속도가 늦다면 아무리 뛰어난 CPU라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의 단기 기억용량을 기억해 보자. 우리가 한번에 기억할 수 있는 용량은 보통 7가지의 정보뭉치일 뿐이다. 우리 생각의 속도가 기본적으로 늦을 뿐 아니라 우리의 단기기억 용량이 우리의 생각속도를 더 늦게 하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인간의 합리성에 방해가 되는 첫 번째 요인은 우리의 생각속도와 용량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우리의 능력이 경제학자들이 가정하는 합리적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요인이 몇 개 또 있다. 그 중에서 합리적 의사결정에 방해가 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을 꼽는다면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가 과거에 학습과 경험을 통해 열심히 구축해 놓은 기존의 지식과 정보다. 새로운 정보는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에 의해 해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편견과 선입관, 그리고 심리학자들이 사용하는 용어인 ‘앵커링 현상’들은 현재 주어진 정보를 우선적으로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으로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보자. 프랜치 커넥션이라는 의미의 FCUK라는 영국의 의류 브랜드가 있다. 무심히 보면 영어의 비속어가 생각날 수밖에 없다. ‘fcuk’은 ‘French Connection United Kingdom’의 약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셔츠에 새겨져 있는 로고는 우리가 흔히 듣는 단어를 연상하게 한다. 그것이 마케팅의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처럼 이미 알고 있는 단어나 문장으로 새로운 정보를 해석한다. 이런 우리의 능력은 매우 유용한 것이기도 하다. 두터운 보고서를 몇 시간 내에 읽어 낼 수 있는 것도 모든 문장을 글자나 단어 하나하나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문장이나 표현을 과거의 경험을 통해 하나의 덩어리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범하는 실수는 결국 우리가 효율성을 위해 무의식에 많은 것을 위임한 대가인 셈이다.


문장이나 상황뿐아니라, 가치의 판단 또는 선택의 단계에서도 이런 현상은 흔히 나타난다. 사실 이런 간섭현상은 인간 심리나 감정의 특성에 의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일부 심리학자들은 심지어 감정이 의사결정의 90% 이상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합리적이기를 희망하지만, 현실에서는 감정의 영향을 받아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게임이론에 최후통첩게임(Ultimatum Game)이라는 것이 있다. 서로 합의점에 도달하지 않으면 함께 공멸하는 게임이다. <부의 기원>의 저자 에릭 바인하커Eric Beinhocker는 이 ‘최후통첩 게임’을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같은 비행기에 세 사람이 않을 수 있는 좌석에 우연히 나와 한 명의 여자 그리고 또 다른 남자와 함께 앉게 되었다. 여자가 나와 남자에게 “두 사람이 어떤 배분이던 합의를 하면 아무런 대가 없이 공돈 5,00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단순히 배분금액을 합의하면 가질 수 있는 돈이다. 그러자 옆자리의 남자가 선수를 쳐서 나에게 이렇게 제안한다. “내 몫은 4,999만원, 너는 만원.” 이런 상황에서 합의할 수 있을까? 십중팔구는 판이 깨질 것이다. 전통경제학의 관점이라면 여기서의 거부는 비합리적이다. 만원이라도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기분 나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려는 의지가 있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생각은 감정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쇼핑을 하기 전에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도 상품을 구매하는 최종 순간에는 당시의 감정에 좌우되기도 한다. 무의식의 깊은 부분에서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이 최종적인 결정의 순간 우리 의식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생각하려는 인간의 특성, 이익보다는 위험이나 손실에 더 집착하는 본성, 타인의 행동이나 의견에 동조하려는 군중심리와 같은 것들도 합리적인 판단에 방해가 되는 요인이 된다. 우리의 비합리성이란 부정적인 정보를 더 중요하게 인식하지만 막상 자신에게 닥치면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들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인간의 특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다수의 지혜에 의해 창조되고 진화해 온 한 사회의 문화도 바람직한 판단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개인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하기도 한다. 문화의 충돌이라는 것도 그렇게 비합리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한 개인의 기존 지식이 편견과 선입견을 만들어 내듯, 한 사회의 문화가 우리 모두를 역사의 함정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 인간은 엄청난 속도를 가진 컴퓨터나 경제학의 이론 에서와 같이 ‘최적의 답’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시간이라는 조건과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에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에서의 우리는 ‘최적의 답’보다는 ‘우월한 답’을 찾을 수 밖에 없다. 모든 문제의 정답을 찾기보다는 그럭저럭 쓸만한 해결책을 찾아가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쓸만하고 우월한 답이나마 어떻게 찾아내야 할까? 간단하다. 축소해가면서 단계별로 생각하면 된다.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고 해도 시간과 자원만 있다면 일을 나누어서 할 수는 있다. 국가의 의사결정 문제라면 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부분별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전문분야의 연구는 해당 연구기관과 행정부처가 담당한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슈퍼컴퓨터에게 연산작용은 위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얻어진 결과를 통합하여 의사결정에 사용한다. 일상에서의 우리도 생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범위를 축소하고, 하나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가능하다면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버리거나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컴퓨터가 느려지는 것은 필요 없는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있거나 다른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작프로그램이 많거나 바탕화면에 많은 아이콘을 띄워놓은 것 그리고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바이러스나 에드웨어도 결국은 컴퓨터의 속도를 잡아먹는 이유가 된다. 아마도 우리의 생각도 비슷할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 더 치명적인 것은 컴퓨터는 느려지더라도 오답을 내지 않는 반면, 우리는 복잡한 생각을 하다가 엉뚱한 해답을 얻을 수도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하나의 특징 즉 변수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번에 생각해야 할 변수를 최소화하여 단계별로 나누어 생각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는 말이다. 무리하게 너무 많은 것을 한번에 생각하려면 시간도 많이 걸릴 뿐 아니라 잘못된 결과를 도출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장고 끝에 악수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많은 변수를 이용하여 결론을 도출해 낼 수 만 있다면 정답에 더 가까운 결론을 얻게 될지 모르지만, 아쉽게도 우리의 능력이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우리가 경험한 현실의 비즈니스 또는 삶의 현장을 떠올려 보라. 학창시절의 시험을 치르던 시간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다. 즉각적인 의사결정을 필요로 한 경우도 존재한다. 아니 충분히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결정은 그 자리에서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순간 우리 모두는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변수를 고려하여 결정하려고 하지만, 결국은 늘 부족하고 아쉬운 해답을 손에 쥐고 만다. 우리가 생각하는 능력이 거기까지기 때문이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라도 가능한 나누어 생각해야 하며, 버리거나 포기할 것들을 결정해야 한다. 모든 것을 망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에 주어진 조건과 시간은 가능하면 많은 것을 포기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단순함의 법칙>의 저자 존 마에다John Maeda는 ‘단순함은 명백한 것을 제거하고 의미 있는 것만을 더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너무나 명백한 것 그리고 중복되는 것들은 버린다고 해도 우리의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아니 그런 것들을 움켜지고 가는 것은 오히려 혼란만 일으킬 수 있다. 대부분의 정보는 일종의 잡음이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정보는 우리 삶에 방해가 될 뿐이다. 따라서 주어지는 정보의 중요성에 따라 제거해야 할 것들은 우선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중요한 정보를 놓쳐 손해를 보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결국 인생이라는 동전의 양면은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정확성을 위해 모두 받아들인다면 혼란과 복잡성이 우리를 괴롭힌다. 중요한 것만 받아들이다 보면 정확성이나 또 다른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


더구나 시간이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하나의 특징이나 핵심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반면 조금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모든 항목을 둘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강점과 약점, 비용과 수익 또는 단기와 장기와 같이 상반되거나 대비되는 두 항목으로 분리해 보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과 악에 대한 특성을 알아본다고 하자. 이 경우에 한쪽에는 인간이 악하다는 증거들을 나열하고 또 다른 한쪽에는 선한 증거를 나열해 볼 수 있다. 어느 쪽이 더 많을까? 물론 어느 한쪽이 더 많다고 해서 그것이 절대적인 증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일종의 가설 정도를 만들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좀 더 복잡하게 생각하더라도 우리의 생각이 소화할 수 있는 정도는 사실 2X2 매트릭스 정도다. 하나의 복잡한 상황을 두 개의 변수로 나누고 그 변수를 다시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 보는 방법이 그것이다. 만약 우리가 한번에 생각하는 수준을 여기까지 올려놓기만 한다면 상당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아무리 복잡한 현상도 대립하는 두 요소를 찾아내어 매트릭스라는 틀로 정리할 수 있다면, 양자택일 대신에 새로운 차원의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복잡한 현상도 이러한 2×2 매트릭스로 단순화가 가능하다. 아이젠하워의 원칙이라는 것도 결국은 일의 중요성과 긴급성이라는 두가지 요소로 만들어진 매트릭스다. 물론 세상의 복잡한 현실을 4개의 칸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기술과 창조력이 필요하기는 하다.

단순화란 늘 노력과 훈련이 필요한 법이다. 축소에 의한 단순화는 다른 사람에게 우리를 표현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기술이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빠르게 생각하고 복잡한 것을 생각하는 데 능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정형화된 매트릭스도 사실은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기법으로 발전된 것들이다. 다행히도 우리의 생각이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버리거나 포기함으로써 생각의 범위를 축소하고, 특징에 집중하는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두뇌는 컴퓨터가 가지지 못하는 또 다른 축복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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