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검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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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현자가 한 움큼 손에 쥔 구슬들을 쟁반 위에 쏟아냈다. 구슬은 요란스럽게 소리 내며 요리저리 좌충우돌 굴러다니다 잠시 후 조용히 멈춰 섰다. 그리고는 현자가 입을 열어 말한다. “구슬들이 쟁반 위를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것은 운명(運命)이고, 쟁반 턱에 딱 가로막혀 멈춰서는 것은 숙명(宿命)이며, 이런 모습을 연출하며 쟁반 위에서 넌지시 쳐다보는 것은 천명(天命)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가 알고 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다룬 일본 소설 ‘대망’에서 나오는 한 대목을 조금 바꾸어 본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https://www.nippon.com/en/japan-topics/b06907/



우리가 만나는 경쟁의 게임은 최소한 무엇을 잘해야 이기는 것인지를 안다. 한 마디로 게임의 룰을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승자에게 주어지는 상이 무엇인지도 알고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만날 현실은 룰 조차도 분명하지 않다. 따라서 내가 그 게임을 하기 위해 포기해야 할 가치조차도 알 길이 없다. 누구와 경쟁하는지도 사실은 잘 모른다.

더구나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경쟁은 그 불확실성이 더 커지고 변화의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과거 흔히 박사, 의사, 변호사 등 사자만 달면 어느 정도 성공이 보장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성공이 보장 되는 시대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230년 전에 활동하던 <전쟁론>의 클라우제비츠도 전쟁의 3/4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라고 지적했다. 오늘날의 우리 삶은 더할 것이다. 더 많은 요소가 네트워크의 모습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서로 상호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확실성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에서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 조차 없다. 더듬어 보면서 앞으로 가는 방법 이외는 말이다. 다행이 내가 잘하고 또 좋아하는 토너먼트에 들어섰기를 기대하며 또 보상이 제법 크기를 소망할 뿐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운에 달려있다는 말은 아니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듯이 기술이 최소한 성공의 30%은 차지한다. 그것도 작은 숫자는 아니다. 그냥 열심히 기술만 익혀서 인생을 시험 보듯이 30점만 맞아도 어디인가. 그럼 나머지는 정말 운일까? 아니다 우리가 그냥 잘 모르는 모두를 그냥 뭉뚱그려 운이라고 부를 뿐이다. 따라서 운칠기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운칠기삼의 운을 잘게 해체하고 분석해보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여하튼 전쟁이나 실제의 삶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정보가 불완전하고 우연이 지속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에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 다른 상황을 만난다. 클라우제비츠는 이와 같이 예기치 않은 요인과 끊임없이 싸워 이기려면 암흑 속에서 자신을 진리로 이끄는 ‘혜안((慧眼, coup d’oeil)’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coup d’oeil’은 프랑스어로 ‘한눈에 알아차리는 힘(power of the glance)’이다.

한 마디로 혜안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동물적 감각이라 부르는 것에 가깝다. 이런 감각을 가진 사람들은 운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특별한 분석이나 논리적 근거도 없이 성공의 냄새를 맡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심리학자인 마야 슈토르흐(Maja Storch)는 아예 “동물적 감각으로 승부하라”고 조언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 때 이성적인 판단에 의존하기 보다는 감성적인 직감에 의해 해결하는 게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저서 <동물적 감각으로 승부하라>에서 그 증거로 역사적 위인이나 성공한 기업가들은 대부분이 직감이나 육감으로 사고하고 판단했다고 강조한다.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도 가끔 순간적인 나의 직감이 옳았다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동물적 감각이란 우리가 직감 또는 육감이라고 하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말콤 글래드웰은 이를 ‘브링크’라고 부른다. 그리고 브링크를 새로운 상황을 만나거나 긴박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의미한다. 그의 표현대로 그 생각은 짧지만 강력하기조차 하다. 누군가를 만났는데 왠지 다시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골프의 그린에서 처음 느낀 경사도가 옳았음에도 이런 저런 관찰과 장고 끝에 잘 못된 의사결정을 하기도 한다. 처음의 판단이 옳았다는 말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우리의 생각 대부분이 무의식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오감에 육감이라는 감각을 더 한다. 여기서 말하는 육감이란 성적인 느낌이라는 의미의 육감(肉感)이 아니라 여섯 번째 감각이라는 의미의 육감(六感)이다.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이 육감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명하기는 하지만, 우리 인간에게 모르는 또 다른 감각기관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육감이란 기존의 오감을 통합해서 받아들이는 감각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말하자면 통합감각이다.

오감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모두 분석해 인간의 뇌가 가지고 있는 슈퍼컴퓨터가 통합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그 판단은 의식적이거나 단순히 느낌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적이 주변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다”와 같은 느낌 말이다.


우리는 매 순간 엄청난 정보를 받아들인다. 바람이 부는 소리, 그 바람이 다리를 스치는 느낌, 그리고 바람과 함께 다가온 냄새, 바람이 몰고 온 낙엽이 뒹구는 모습 그리고 그 순간 내 입에 물고 있던 박하사탕의 맛 등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을 느꼈다면 우리는 이 정보를 의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무의식으로 받아들인 정보는 이 보다 훨씬 더 많다. 이 모든 정보를 종합해 우리는 좋고 나쁘고 우울하고 상쾌해지기도 하며 비가 올 것 같다는 이성적 판단을 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모든 정보를 통합해 나름대로의 최종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의식적인 생각조차도 무의식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정보나 하급관리들의 도움 없이는 상위관료들도 자신들의 임무를 모두 수행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무의식에 저장된 정보를 의식으로 가지고 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제 의식이 그 정보를 통합하여 의사결정을 내리게 된다.


우리가 분석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이미 이해하고 있는 나의 지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면 그 정보를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로 해석하여 저장하거나 기존의 정보와 재구성하여 또 다른 정보를 만들어 낸다. 한 마디로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호로 내 하드디스크에 저장해 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간혹 중요한 정보이기는 하지만 내 의식으로 해석하지 못하는 경우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 이때도 무의식의 도움을 받는다. 그 중요한 정보를 해석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정보부터 우리의 하드디스크에서 끄집어 내 새로운 정보를 해석한다. 보통은 의식이 그런 일을 담당하지만 긴박한 상황에서는 무의식에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뇌 과학자들은 이렇게 얻어지는 순간적인 깨달음 또는 이해를 직관이라고 해석한다. 이런 직관 중 실천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 7의 감각: 전략적 직관>의 저자 윌리엄 더건(William Duggan)은 ‘전략적 직관(strategic intuit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윌리엄 더건이 말하는 전략적 직관이라는 것도 결국은 기존의 지식과 정보를 새롭게 만나는 정보와 결합하여 만들어 지는 것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전략적인 혜안은 역사적 사례, 냉철함, 섬광 같은 통찰력, 결단력의 4 단계로 구성된다고 말하고 있다. 역사적 사례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여러 사건들에 대한 이해와 기억을 말한다. 따라서 이런 지식은 열심히 준비함으로써 갖출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지식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고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수록 더욱 가속화된다. 영화 속의 나폴레옹이 겨드랑이 밑에 끼고 있던 두꺼운 책은 그가 얼마나 철저하게 전쟁사를 연구했는지 보여준다. 우선은 과거의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지식으로 현실의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다. 현실은 연속적인 아날로그인데 반하여 지식이라는 것은 디지털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이나 시를 읽는다. 이론이나 학문으로 채울 수 없는 지식을 얻어내기 위함이다. 재미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렇게 해도 우리의 머리 속에 현실의 일부라도 채워 넣기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저장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학습의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새로운 지식은 스스로 만들어 낼 수 밖에 없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창의력이다. 그렇다면 창의력은 어떻게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인가? 이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기회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클라우제비츠로 시작했으니 그의 방법을 더 알아보기로 하자.


클라우제비츠가 이야기하는 혜안을 얻는 두 번째 단계는 냉철함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냉철함은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과거와 똑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인 통찰력을 떠올려야 한다. 자유로운 머릿속에서는 다양한 과거의 예들로부터 선택된 요소들을 새롭게 조합하는 것이 통찰력이다. <지식의 재구성>에서 강조한 지식을 모듈로 하여 상황에 맞는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치열한 경쟁에서 진정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처한 경쟁환경의 요소들과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을 어떻게 새롭게 결합하느냐에 달려있게 된다. <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가 말하는 천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신속하고 적절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다. 클라우제비츠에게 있어 전략적 직관은 혜안이다. 그는 혜안을 “평범한 정신의 사람들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거나 오랜 고찰과 사색 끝에 비로소 볼 수 있는 진리를 신속하게 파악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혜안을 가진 사람 즉 그가 말하는 천재는 어떠한 규칙이나 법칙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탐구하는 정신으로 만들어 진다고 강조한다. 


이런 혜안이 필요한 것은 우리가 만나는 현실과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리 익혀둘 수 있는 것은 기술과 같은 것이다. 기계를 작동시키는 기술은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가 만나는 현실은 우리의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그래서 임기응변이 필요하고 미세조정이 요구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직관이다. 우리는 이런 직관이 뛰어난 사람을 동물적 감각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일대 일의 진검 승부에서 한 번도 패배가 없었다는 전설의 일본 최고 검객인 미야모토 무사시는 “나에게 검법은 없다. 오로 지 알아서 물과 같이 싸울 뿐이다”라고 말했단다. 하지만 오랜 훈련과 학습을 통해 어느 정도 단계에 올랐을 때 이야기다. 삶이라는 경쟁이 있는 환경에서 우리가 기술을 익히고 예술을 해야 하는 이유다. 정답을 미리 알고 갈 수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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