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개인은 많지만, 강한 팀은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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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패자가 된 신흥 몽골제국은 1219년부터 1260년까지 40 여 년간 세 차례에 걸쳐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서정을 단행했다.

오늘날 이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에 걸쳐 번성하던 호라즘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를 단 3일만에 초토화시킨 칭기즈칸은, 몽골 제국의 가장 유능한 장군인 제베와 수베에테이에게 3만 병력을 주어 서쪽을 정벌토록 했다. 도주한 호라즘의 술탄 무하마드 알라 앗딘을 추격하는 것이 외형의 이유였지만, 유럽 세계를 정찰하고 정복하는 것이었다. 두 장군은 페르시아에서 몇 차례 작은 접전을 치른 뒤 러시아 남부 지역에 다다랐다.

그러자 1223년 5월, 8개의 러시아 공국들이 연합하여 무려 8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남하했다. 제베와 수베에테이 장군의 병력은 2만으로 적군의 4분의 1 규모였다. 러시아 연합군들은 갑옷과 투구로 완벽하게 무장한 기사들이다.

몽골군이 사용한 전술은 이날도 유인전술이었다. 러시아군과 교전하다가 힘이 부치듯 이내 달아나기 시작했고 잡힐 듯하면 달아나면서 무려 일주일간 달아나기만 했다. 러시아군은 침략자들이 퇴각을 거듭하자, 추격을 시작하였다. 러시아군의 진형은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고 장병과 말이 지칠 대로 지쳤다. 마침내 도망만 하던 몽골군이 칼카(Kalka)강에 다다르더니 갑자기 멈추더니 모두 새로운 말로 갈아탔다.  그리고 전투대열로 정렬하기 시작했다.

공격의 선봉에는 경기마대가 전투대형을 갖춘 일급 궁수들이 섰다. 이들이 일제히 활을 쏘며 길게 늘어진 러시아군 대열을 휘젓고 돌아다니자 러시아 진영은 눈깜짝할 사이에 흐트러졌다. 그들이 혼란에 빠졌을 때 경기병대가 사라지고 순식간에 중무장한 중기마대가 나타났다. 중기마대는 가볍게 무장한 경기병과는 달리 쇠미늘 갑옷에 흉갑을 두르고 전투용 도끼와 활 2개를 갖고 다녔다. 3.6미터에 달하는 긴 창을 마치 장난감을 갖고 놀듯 자유자재로 내질렀다. 러시아군 선봉대가 무너지자 잠시 사라졌던 경기마대가 다시 나타나 러시아군 본진에 비 오듯 화살을 쏘았다.

칼카 강 전투 후 포로가 된 러스 지휘관 므스티슬라프 3세 The Mongols Dined Atop their Live Enemies and Other Fascinating Historic Facts – History Collection


결과는 너무 참혹했다. 몽골의 궁수들은 잘 훈련된 말을 타고 정확도를 자랑하는 활을 쏘면서 러시아군 진영을 종횡무진 유린했다. 러시아군은 도주하기 시작했고, 그 뒤를 몽골의 경기병들이 추격하면서 패잔병 학살이 시작되었다. 해가 저물어 날이 어두워지자, 그제서야 몽골군의 추격은 끝났다. 불과 하루 동안의 이 전투에서 8만 명의 러시아군은 완전히 무너졌고 대부분의 병사들은 죽임을 당했다. 이것이 유럽에 몽골의 공포를 전한 칼카강 전투다.


칭기즈칸과 그 자손들을 다른 정복자들과 마찬가지로 세계정복이라는 욕구가 있었고 그 정복을 위한 자신들의 역량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몽골제국의 경우 그 역량은 기동력이 뛰어난 무적의 기마군단이다.

그렇다고 몽골군의 기병에 중무장한 기병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마부대에는 중무장한 중기병과 가벼운 차림의 경기병이 임무를 달리하면서 서로 협력하여 전투를 치른다. 경기병은 대체로 중무장하지 않고 말의 기동력과 활로 중기병의 돌격을 엄호하고 적진을 초토화하는 임무를 갖는다. 물론 이들이 연합하더라도 보병 밀집 대형의 중앙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측면 또는 약한 부분을 공격하는 작전을 구사한다.  경기병대는 주로 활로 무장한 후 적군의 궁수와 보병을 상대로 활을 발사하여 적진을 혼란에 빠지도록 하는 임무를 갖는다. 반면 상대가 약점을 보이면 이제 중무장한 기병대가 진격하여 승부를 결정짓는다.

인간사회에 어느 곳에도 독불장군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의 사회도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곳에도 협동과 협력 그리고 공존의 원칙이 존재하고 있다. 먹이와 번식 상대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늘 경쟁만 하는 것도 아니다. 동물의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돕고 사는 관계가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은 동물들은 떼를 이루어 다녀 더 크고 위협적으로 보이게 함으로써 포식자에게 덜 잡아 먹힌다. 하이에나는 사자에 비해 덩치도 작고 힘이 약하지만, 사자보다 무리의 숫자도 많고 잘 뭉치기 때문에 힘의 균형을 유지한다.


성공한 사람들이 가끔 교만해 져서 스스로 성공했다고 설쳐대기도 하지만, 사실 성공한 사람 주변에는 늘 도움을 준 사람들이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손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도움은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을 관찰해 온 엉뚱한 사람일 수도 있다. 세상에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좋은 협력자를 가진 사람이 경쟁에서 아주 우월한 위치에 서게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기업들이 적과의 동침이라도 마다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수확체증의 법칙, 란체스터 법칙 등 양의 피드백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의를 떠올려 보자.


사실은 하나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공하는 기업은 흔하지 않다. 일할 수 있는 양과 종류에 한계를 가진 개인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언급하였듯이 대부분의 제품이 길고 복잡한 네트워크의 모양을 가진 가치사슬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날 디지털 경제에서는 홀로 성공하는 제품을 찾기는 더 어렵다. 가치사슬 안에서 나는 어떤 사람의 소비자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공급자다. 이들 전체가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가치사슬에 속한 모두가 한번에 경쟁력을 잃어 버릴 수 있게 된다.

오늘날의 비즈니스 세계의 경쟁은 개인 대 개인 또는 기업 대 기업의 싸움이 아니다. 네트워크 대 네트워크가 생존을 걸고 싸우는 세계대전이다. 과거 이런 기업간 경쟁방법을 깨닫지 못한 기업은 어려움을 겪은 반면 이를 깨닫고 적극적으로 이용한 회사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성장을 이루어 냈다.


시장이라는 네트워크에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생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네트워크가 자신들만의 리그가 아니다. 앞서가는 사람들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 경쟁력을 확보한다.


애플은 컴퓨터라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회사다. 하지만 그들이 만드는 컴퓨터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그들이 만드는 하드웨어 자체도 우월했지만, 그들이 제공하는 그래픽 운영시스템은 매우 창의적인 것이었으며, 앞서가는 소프트웨어였다. 하지만 애플은 매킨토시 시스템에 다른 회사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다. 자신의 기술적 경쟁우위를 통해 시장을 홀로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장은 전체 개인용 컴퓨터의 8%에 불과했다.


반면 IBM은 자신들의 컴퓨터를 모방한 컴퓨터의 생산을 허용했다. 그런 컴퓨터를 ‘IBM 컴패터블(Compatible)’이라고 불렀다. IBM의 컴퓨터와 호환할 수 있는 컴퓨터는 모두 IBM 컴패터블이었으며, 이 컴퓨터는 미국은 물론 한국과 대만에서도 생산해 냈다. 이제 컴퓨터는 ‘그냥 PC’와 ‘애플의 맥’ 이라는 두 종류의 전쟁이 되었다.

이런 전쟁에서 어부지리를 얻은 것이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IBM에 운영시스템을 공급하는 단순한 협력업체로 시작했을 뿐이다. 단순히 IBM의 네트워크에 속했을 뿐이데 92%의 ‘그냥 PC’의 운영시스템 시장이 그들에게 돌아갔다. IBM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분리해 생각하고 애플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하나의 상품으로 생각하는 동안 그 이익이 마이크로소프트로 돌아간 것이다. 물론 IBM이 PC시장의 크기를 과소평가했고 애플은 자신의 경쟁우위를 과대평가한 덕분이다.


개개의 기업이 얻은 성과는 전략적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기는 했지만, 연합하여 만드는 시장이 독자적으로 창출하는 시장보다 훨씬 더 클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실제로 기업들은 이제 경쟁보다는 협력이라는 방식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전략적 제휴를 기업전략의 필수적인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엉뚱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제휴(Alliance) 소식이 쏟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한국 전자상거래의 선두주자였던 옥션도 제휴를 통한 네트워크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 초창기의 중요한 전략 중 하나였다. “하루에 하나의 제휴를 만들자”가 일종의 마케팅 부서의 구호였을 정도다. 지속적인 성장과 혁신을 갈망하는 기업들에게 제휴는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 요건이 되었다.

과거에도 기업 간 제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의 제휴는 세력을 확장하거나 방어를 위한 소극적인 합치기였다. 반면 오늘날의 제휴는 보다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것이다. 시장을 키우려는 목적을 넘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나이키가 애플과 제휴해 선보인 ‘나이키 플러스’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달리면서 애플의 아이팟 제품을 사용하여 음악을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운동하며 사용한 칼로리, 시간, 거리, 페이스 등을 측정하도록 만든 것이다. 둘이 협력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 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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