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은 10만이 안 되는 병사로 1억 명이 넘는 유라시아 전체를 정복했다. 그 핵심역량은 아무래도 상대방이 예상하지 못할 스피드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적에게 공포심을 안겨준 ‘미디어 전쟁’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겁을 집어먹고 자멸하거나 항복한 전투가 몽고의 빠른 세계정복에 한 요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칭기즈칸의 군대가 이용한 최대의 무기는 공포(恐怖)였다. 상대방이 분노가 아니라 공포심에 떨게 만들어 감히 저항할 생각조차 못하도록 만드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지휘관과 원로와 평민들은 들어라. 신이 나에게 동에서 서까지 지상의 제국을 주었음을 알라. 복종하는 자는 살려둘 것이지만, 저항하는 자는 부인, 자식, 하인들과 함께 죽음을 당할 것이다.”
칭기즈칸이 오늘날 이란의 상업도시 니샤푸르 주민들에 보낸 전갈의 내용이다. 이런 경우 칭기즈칸의 적들이 선택할 길은 두 가지뿐이다. 반항하여 초토화되느냐 항복하여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살 수 있느냐이다. 니샤푸르는 결국 싸워 보지도 않고 미리 항복하고 말았다.

물론 이런 공포전술이 작동되려면 그에 맞는 명성을 쌓아 두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사람들의 인식에 강하게 부각될 수 있도록 만드는 전략이 있어야만 한다. 몽고는 실제로 많은 점령지역을 초토화하기도 했지만, 점령한 도시의 한가운데에는 진흙으로 탑을 세우고 거기에 전사한 사람들의 목을 잘라 박은 ‘해골 탑’을 만들어 전시하는 등 전시효과를 노린 수단을 활용하였다. 그렇게 적들에게 몽골군은 ‘지옥의 사자(Tartar)’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진정한 싸움터는 사람의 인식이다:

2008년 한국의 현대와 기아 자동차의 미국 자동차 시장점유율은 각각 3.2%와 2.2%로 합해서 5.4%를 차지하고 있었다. 미국의 시장이 세계 자동차 업계의 각축장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후발주자로서 대단한 성과다. 반면 일본의 토요타는 16.8%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으며, 일본의 혼다는 11%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했다. 자동차는 가격, 성능, 안전, 디자인과 같은 그야말로 질에 의해 시장에서 평가 받을 것이다. 정말 그럴까?
자동차의 질이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앞서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람의 인식이다. 질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토요타와 혼다의 판매량도 일본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하지만 토요타가 일본 시장의 반에 육박하는 46.8%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혼다는 13.8%로 토요타의 반도 되지 않는다. 일본에서 혼다는 오토바이를 만드는 회사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인식을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이다.

https://global.honda/en/Cub/history/stories/special-edition/
세계적인 개인용 컴퓨터 회사인 컴팩의 한국 자회사인 한국 컴팩 컴퓨터는 1998년 3월 18일 국내 주요 일간지를 통해 “지는 IBM이 있으면 뜨는 컴팩도 있다” IBM이라는 회사명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여 자사와 비교하는 광고를 게재했다. 이 광고는 한국 IBM과 컴팩간의 법적인 분쟁으로 이어지고, 컴팩의 사고 광고로 일단락 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이후 “졌다”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마십시오. 더 좋은 컴퓨터는 경쟁 속에서 태어납니다.”라는 카피로 비교광고 논쟁을 암시하는 광고를 게재했다. 왜 이렇게 컴팩은 도덕적 비난과 법적인 제제 속에서도 무리한 광고를 한 것일까?
사람들의 인식 속에 그래도 컴퓨터 하면 IBM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컴팩이 아무리 품질이 더 좋고 가격도 싼 컴퓨터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그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도전적인 비교광고를 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을 수 밖에는 없었다.

마케팅은 기본적으로 기업이 시장에서 해야 하는 모든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4P를 이야기한다. 마케팅에서의 4P는 상품product, 가격Price, 유통Place, 판매 촉진Promotion를 가리키며 마케팅 전략이란 이 4P를 어떻게 믹스(Mix)하느냐를 의미하게 된다. 또한 이 4P를 믹스하는 데에도 기본적인 원칙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학자들 마다 다양한 마케팅 원칙이나 법칙을 제시하지만, 사실 그 모든 원칙 역시 ‘차별화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차별화에도 여러 분야의 차별화가 있다. 혁신을 통한 제품 차별화 그리고 시장 세분화를 통한 시장의 차별화도 결국 차별화의 방법이다. 하지만 이 역시 결국은 사람의 인식 속에 차별화가 되어야 한다는 대 원칙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마케팅에서의 경쟁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그리고 그 전쟁터는 고객의 인식 안에 있다. 그렇지 않다면, 수 많은 회사들이 광고에 열중할 리가 없다. 인식에서의 전쟁이 아니라면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만드는 데 집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우리 인간의 기억장치는 현재 우리 책상 앞에 놓여있는 PC에 비해 아직은 우월하다. 기억용량만 따진다면 우리의 기억장치는 약 100 테라 바이트(TB)정도다. 책으로 치면 2천만 권이 넘는 용량이며 동영상으로 해도 10만 편 정도를 저장할 수 있다. 테라라는 것이 조를 의미하니 1기가 바이트 즉 10억 바이트 정도의 동영상이라면 10억X10만 해서 100조 바이트가 된다. 우리 생각의 속도가 형편없기는 하지만 10 메가 헤르츠 정도는 된다. 오늘 날 PC의 속도가 2 기가 헤르츠 정도니 1/200정도는 되는 셈이다.

문제는 단기 기억용량이다. 인간의 단기기억에 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사실 모든 문제가 인간의 단기기억 용량에서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컴퓨터에는 램(RAM: Random Access Memory)이라는 장치가 있어 필요한 정보를 단기로 기억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컴퓨터가 실제로 어떤 작업을 하려면 램 상에 정보가 떠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컴퓨터도 한 번에 작업할 수 있는 한계는 램 상에 떠있는 정도다. 따라서 해야 할 일이 많다면, 나누어서 할 수밖에 없다.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는 많은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지만, 실제로 일하는 데이터는 램 상에 불러온 것들 뿐이다. 읽어 들인 정보는 이제 램 상에 머물면서 작업에 사용된다. 컴퓨터의 단기기억력은 점차 좋아지고 있어, 웬만하면 8에서 16 기가 바이트 정도 된다. 우리 인간도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필요할 때 마다 찾아서 단기기억에 띄워 놓아야 한다. 인간에게 있어 단기기억은 컴퓨터의 램에 해당한다.
우리는 수시로 눈, 코, 귀, 입 그리고 온 몸의 감각기관에서 받아들인 정보를 처리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위치에서 주위를 한번만 둘러보기만 해도 엄청난 양의 사물과 소리가 눈과 귀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처리해야 한다면 우리의 두뇌는 엄청난 부담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이들 정보 중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만 선택적으로 끄집어내어 주의를 기울여,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만 장기기억으로 보내 저장해 놓는다. 그것이 해마의 역할이다. 반면 우리가 무엇인가 생각해야 한다면, 이 장기기억에서 필요한 것을 떠올려 단기기억으로 가져와야 한다. 현재 이 순간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들은 모두 단기기억인 셈이다.
문제는 우리 인간의 단기기억 능력은 형편없다는 데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인간의 단기기억을 숫자로 이야기 하면 7에서 더하기 빼기 2 정도의 정보뭉치 정도다. 천재소리를 듣는다면 한번에 기억할 수 있는 정보뭉치가 9개 정도 된다. 우리 컴퓨터 CPU안에는 레지스터라는 작은 방이 있다. 이곳은 램에 기억되고 있는 정보가 불려와 실제로 연산에 사용되기 위해 잠시 대기하는 곳이다. 컴퓨터는 단기기억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16비트 레지스터를 한 항목의 기억용량으로 보면, 우리의 단기기억은 7개의 16비트 레지스터에 해당한다. 8비트가 1바이트에 해당함으로 우리의 단기기억 용량은 14바이트 정도다. 컴퓨터의 램이 8기가 바이트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단기기억 능력은 그야말로 초라한 수준이다.
우리는 한번에 7개 이상의 정보덩어리를 기억하기 어렵다. 보통사람들이 일곱 혹은 여덟 개의 숫자로 된 전화번호는 쉽게 받아들이지만, 그 이상의 숫자를 가진 전화번호는 한번에 기억하기 쉽지 않다. 인간이 한 번에 생각할 수 있는 기억의 용량이 7에서 더하기 빼기 둘 정도다. 한번에 7개를 기억하는 경우는 의도적으로 애쓸 때 이야기다.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한번에 떠올리는 생각의 덩어리는 보통 셋 정도다.
새로 TV를 장만할 계획이 있다고 해 보자.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장에 존재하는 모든 브랜드를 검토할까? 많은 연구결과가 아니라도, 우리는 보통 3가지 정도의 브랜드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삼성, LG, 그리고 아마도 외국 브랜드 하나 정도 다. TV뿐 아니라 모든 제품의 구매가 실제로 이렇게 결정된다.
만약 모든 소비자가 이렇게 행동한다면, 결국 하나의 시장에 큰 거인 둘 또는 셋이 활보하고 나머지 작은 난쟁이들은 전혀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 위해 차별화하거나 다른 시장으로 갈 수 밖에는 없다는 이야기다. 수확체증의 법칙과 네트워크 효과 여기에 사람들이 인식하는 방법까지 작동된다면 세상은 평등해 지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다. 특별하고 인위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기업은 인간의 기억력 덕분에 3위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월등한 실력을 갖춘 ‘작은 거인’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렇다.
스포츠나 연예계의 스타들도 마찬가지다. 팬이 아니라고 해도 연예인 몇 명을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고 단 3명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 그럴까? 시장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시장으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세분화 된 시장에서 2 이나 3명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가수에서도 발라드 가수 누구 락 가수 누구 그리고 배우의 경우에도 액션배우, 연기파 배우, 코믹 배우 등 각 시장으로 나누어 사람들은 최고와 그 비슷한 수준의 연예인을 떠 올린다.
일상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학창 시절 공부 잘하는 아이로 기억되는 아이들은 3등 안에 드는 정도다. 만약 7 등 정도 했다면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친구들에게 심어 줄 수 없게 된다. 아니면 특별히 수학을 잘했다던지 아니면 영어를 잘했던지 하나의 작은 시장에서 월등한 능력을 보여주었어야 할 것이다. 그도 아니면 아주 착한 인상 아니면 웃기는 아이로 인식되어야 기억에 남는다. 경쟁이란 이처럼 실질적인 경쟁도 존재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의 인식 안에서 벌이는 경쟁이 대부분인 것이다.
심리학자 들 중에는 인간에게 있어 흥분되고 정말 중요한 경험은 한정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 일찍 많은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이후에 겪게 되는 경험이 시시해지고 기억에도 잘 안 남는다는 말이다. 이런 주장은 인간의 뇌 크기와 한 사람이 유지하는 인간 관계의 수가 비례한다는 로빈 던바(Robin Dunbar)의 연구결과와 유사하다.

영국의 인류학자인 로빈 던바는 영장류 연구를 통해 뇌 크기와 집단 크기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런 가설을 인간에게 적용하여 관찰을 해 본 결과 인간이 의미 있는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숫자가 150이라는 이론을 내놓게 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일반 사람들에게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5명 정도 그리고 가까운 친구는 15명 그리고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50여명 그리고 의미 있는 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150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일반화 되면 마을이론(Village Theory)이 된다. 인류학자들이 조사해보니 사람들이 사적으로 맺을 수 있는 인간관계 중에서 즐겁고 중요한 인간관계는 수적으로 제한 되어 있으며, 중요한 인간관계의 수는 장소, 철학, 문화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의 경우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을 알고 있는 마당발인 사람도 사실 중요한 관계는 다른 사람처럼 몇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의례적인 관계일 뿐이다. <80/20룰>의 저자 리처드 코치는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의 머리 속에 하나의 마을을 가지고 있어서 일단 마을에 일정 인원이 채워지면 그 이상 마을 사람을 늘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과 만나면서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일정 수준 이상의 관계가 형성되면 그 사람의 생각 속에 있는 마을의 집의 하나를 차지하게 된다. 누군가 그 집을 차지하고 나면 다른 사람이 그 집에 들어 갈 수 없게 된다. 한 마디로 사람이 일생 동안 맺을 수 있는 인간 관계의 수와 폭이 제한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마케터들이 자신들의 시장을 포기할 리가 없다. 그 노력이 바로 차별화라고 부르는 마케팅 전략이다. 다시 한번 인간의 기억용량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기억해보자. 물론 그들의 주장처럼 상대방의 생각 속 마을에 이미 누군가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가기는 어렵다. 하지만 늘 새로운 집을 짓 도록 할 수 는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인식에서의 차별화다. 예를 들어 소비자의 인식 속에 기술이 가장 뛰어난 자동차 메르세데스 벤츠, 주행에는 BMW, 그리고 안전에는 볼보라는 단어가 심어져 있다면 다른 자동차 회사가 그 단어가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은 쉽게 결과를 얻기 어렵게 되어 있다. 하지만 새로운 집, 예를 들면 연비 또는 지속성과 같은 집을 새롭게 건설할 수는 있다는 말이다. 바로 창의적 마케터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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