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21년 진나라는 중국대륙의 춘추전국 시대를 마감하고 진정한 의미의 통일을 이루어 냈다. 이 보다 조금 이른 기원전 260년대 말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는 그리스와 이집트 그리고 중동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만약 이 때 진시황의 군대와 알렉산더의 군대가 맞붙었다면 누가 승리하였을까?
진나라는 30년이 지나고 한나라의 유방과 초나라의 항우에게 연달아 패배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알렉산더의 제국은 그가 기원전 250년 사망하고 4개의 나라로 분열하였다. 중국의 대륙을 다시 한나라의 유방에 의해 통일되었고, 기원전 156년 제 7 대왕 한무제가 즉위하면서 주변국가를 점령하거나 이민족을 몰아내고 강대한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당시 유럽에서는 로마가 점차 강성해지고 있을 무렵이다. 기원 전 50년 경 시저라 불리는 로마의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정복하고 실제적으로 유럽을 통일하게 된다. 만약 한 무제의 군대와 카이사르의 군대가 전쟁을 한다면 어떻게 됐을까?

2015년에 개봉된 《드래곤 블레이드》라는 영화에 로마군과 실크로드를 지키는 중국군대와 맞붙는 장면이 등장한다. 한나라와 로마가 실크로드에서 접촉한 적이 있다는 간단한 역사적 사실을 부풀려서 만든 영화임으로 양쪽의 전력을 가늠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배팅을 해야 한다면, 아마도 동양의 승리에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할지 모른다. 당시 과학의 발전 정도나 부의 수준 그리고 인구수로 보아서 중국이 더 우수했다고 판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평가는 부질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정답은 그 둘은 전쟁을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토너먼트에서 경쟁을 하고 있는 두 세력이 전쟁을 해야 할 이유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 곳에서 성공의 방법을 찾는다. 성공한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경영학이라는 학문이 승리한 기업의 성공스토리를 일반화한 학문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같은 수준의 능력을 가지고 있고 비슷한 수준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어떤 사람은 승리하고 또 어떤 사람은 실패한다.
모두에게 같은 형태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승자와 패자를 가르려면 프로야구나 축구처럼 리그의 모든 팀과 여러 번 경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은 늘 내 주변의 사람들이다. 내가 선택한 경우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이 그냥 그곳에 내가 놓여진 것이다.
더 불공평한 것은 여러 번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사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10번의 기회를 준다고 하면, 5번 이상 승리한 사람들을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런데 누가 그런 기회를 준단 말인가? 첫 사업 또는 초기 몇 번의 경쟁에서 패배한 탈락자들은 좀처럼 승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고 만다. 사업의 경우 첫 사업에서 실패를 하고 나면 다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반면 우연히 첫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패배자들보다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들로 온전히 구별되고 더 크고 더 큰 사업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한번의 승패가 그 이후의 경쟁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그렇다. 세상은 모든 것과 경쟁을 해야 하는 풀 리그가 아니다. 일대일로 만난다고 해도 우리가 만나는 경쟁의 형태는 리그가 아니라 단 몇 번만 기회가 주어지는 토너먼트다. 프로축구나 야구의 리그가 아니라 테니스의 토너먼트에 가깝다. 수 많은 사람들과 모두 경쟁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여러 번 경쟁을 시도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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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너먼트의 경쟁
늑대에게 쫓겨 희생당한 둥근 돌이는 학교 성적이 우수하고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반면 모난 돌이는 학교성적이 형편없는 데다가 엉뚱하기 조차 한 학생이다.
성난 늑대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고 매우 영리한 둥근 돌이는 늑대의 속도와 늑대가 자신들을 따라잡기 위해 달려야 할 거리를 어림잡고 나서, 17.9 초안에 늑대가 그들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계산을 해냈다. 그리고는 옆의 친구 모난 돌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모난 돌이는 구두를 벋고 운동화로 바꿔 신고 있었다.
그 순간 그들이 잠시 대화를 나눈 내용은 다음과 같다.
“너 정말 바보구나”라고 둥근 돌이가 말했다. “우리는 결코 저 늑대보다 빨리 달릴 수는 없을 거야.” “그래, 네 말이 맞아”라고 모난 돌이가 말했다. “그렇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너보다 빨리 달리는 것이야”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위의 이야기는 스텐버그(Robert J. Sternberg)의 저서 <성공 지능 successful intelligence>에 나오는 일화를 조금 변형시켜 본 것이다.
토너먼트의 규칙은 단순하다. 우선 자신의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의 경쟁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토너먼트 게임의 참가자들은 보통 맨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 초기에 경쟁에서 실력을 인정받기 전까지는 그렇다. 만약 경쟁초기에 인정을 받거나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토너먼트의 상위권에서 경쟁을 시작하는 시드(Seed)를 받을 수는 있다. 시드(Seed)를 가진다는 것은 더 좋은 조건에서 시작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지만 시드라는 말은 그야말로 종자를 선별한다는 뜻이다. 승자는 종자가 다르다는 말이다.
경기의 토너먼트 시합에서 강한 선수 또는 한 팀의 선수끼리 처음부터 대전하지 않도록 사전에 별도 블록으로 나눠 추첨으로 끼워 맞추는 방법이지만, 과거의 승리로 인해 승자가 얻는 혜택이 있는 셈이다. 현실에서는 부자의 자식으로 태어나거나 선진국가에서 성장하는 경우를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토너먼트의 경쟁은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다. 토너먼트의 참가자는 맨 밑바닥에서 출발해 가장 높은 자리로 올라간다. 그런 과정의 단계에서 패배자는 탈락하고 만다. 다시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토너먼트에서 빠져 나와 다른 토너먼트를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조직이나 산업 또는 시장은 이런 토너먼트를 경쟁의 방법으로 채택하고 있다. 조직이 피라미드 형태라는 것을 생각해 보라. 위로 올라갈수록 경쟁의 정도는 더욱 심해진다. 높은 지위로 올라갈수록 그 수가 적어지게 되어 있다. 초기의 경쟁은 승패의 법칙이 아니라 탈락의 법칙으로 결정된다. 승패의 법칙은 승자를 가려내는 법칙이다. 반면 탈락의 법칙은 패배자를 선별하는 법칙이다. 정글의 법칙처럼 냉혹하지는 않지만, 토너먼트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가지는 성과물은 크게 차이가 있다.
<괴짜 경제학>의 저자 스티븐 레빗과 더브너는 범죄조직도 이런 토너먼트의 경쟁을 채택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범죄조직은 마약을 주 사업으로 하고 있다. 이런 사업은 매우 위험한 사업이다. 많은 경우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위험한 사업이 수익이 높은 법이니 이 토너먼트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잘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대부분의 조직원들은 아직도 엄마의 집에 얹혀살고 있다. 그 이유는 하위 조직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수입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마약상 조직 구성은 형식적으로 맥도널드와 거의 흡사하며, 마약 판매원은 수백 개의 맥도널드 지점에서 일하는 점포 직원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갱단은 위험성을 수반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일반 회사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들은 벌이도 시원찮고 위험하기까지 한 그런 직업에 뛰어드는 것일까? 바로 토너먼트 경쟁에 그 해답이 있다. 초기 승진단계에서는 웬만하면 승진할 수 있다. 패자보다 승자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사람은 희망으로 산다. 당장은 비록 대우가 부족하더라도 미래의 수입이나 형편에 기대를 건다. 갱단의 조직원들이 목숨을 걸고 버티는 것은 보스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중간 보스단계로 올라가면 많은 수입이 보장될 뿐 아니라, 많은 ‘똘마니’들을 거느릴 수 있게 된다.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거나 특별한 재주가 있음에도 초기 수입이 적은 직업들은 더 급격한 피라미드 형태의 토너먼트 경쟁을 요구한다. 배우나 가수들 그리고 주방장의 직업들이 그렇다. 고도의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보수를 받고도 기꺼이 주방 보조로 일하는 것은 나중에 수석 요리사가 되면 많은 수입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회사를 생각해 보자. 보통은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비교해서 누가 더 일을 잘하느냐에 따라 승진이 결정된다. 가장 낮은 직급에 있는 사람에게는 아직도 더 높은 직급으로 승진할 기회가 여러 번 있기 때문에, 성과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크지 않더라도 직원들에게 높은 성과를 내서 토너먼트에서 이기고자 하는 강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점점 높은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남아 있는 승진의 기회는 줄어들게 되어 있다.
승진이라는 인센티브만으로 직원들의 성과를 이끌어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따라서 회사에서는 높은 직급으로 승진할 때마다 거액의 연봉 인상을 인센티브로 제시하고 있다. 이런 토너먼트 이론을 주창한 에드 레이지어(Ed Lazear)는 “사장의 임금은 사장에게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하기보다는 부사장에게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한다.”고 강조한다.
이 논리로 따지면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는 CEO가 하루 종일 책상 위에 두 발을 얹어놓고 빈둥거리더라도, CEO를 꿈꾸는 수많은 부하 직원들에게 열심히 일할 동기를 부여했다면 그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이 그 사람이 공헌한 것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 다는 말이다. <경제학 콘서트2>의 팀 하드포드는 이렇게 반문한다. 디즈니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13년 동안 미국 국채에 투자한 것 보다 훨씬 적은 수익을 올렸으므로, 디즈니의 사장들은 그렇게 많은 급여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임원과 일반직원간의 임금 격차도 약 20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보고서가 있다. 조사대상 28개 기업의 이사들의 보수를 우리나라 전체 임금노동자의 보수와 비교하면 격차는 38.6배에 이르며, 비정규 직 노동자의 임금수준에 견주면 무려 63.7배나 된다. 임원진 전체가 아닌 최고경영자(CEO)와 일반 직원의 보수 수준을 비교 분석했다면 격차는 더 벌어질 게 뻔하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08 세계노동보고서’에서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 최고경영자의 소득은 45%나 늘었지만 중간관리자의 소득은 15%만 증가했으며 일반 노동자들의 임금은 겨우 3%만 올랐다”며 소득 불평등을 우려한 바 있다. 경영학의 글루 피터 드러커 (Peter Ferdinand Drucker)는 <넥스트 소사이어티Next Society>에서 는 CEO들에게 임직원의 적개심과 사기저하가 회사를 망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경영자와 임직원 사이의 임금격차가 20 대 1을 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미 1930년대 초반에 산업혁명에 의해 야기된 커다란 불평등이 사회적 절망감을 생성했고, 오늘날의 현상도 피터 드러커가 리더십 붕괴의 위험수위로 제시한 경고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버렸다.
임원과 최고경영자의 급여가 높은 것은 이들이 기업의 실적 상승에 더 많은 공헌을 했다는 명분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임금상승은 기업의 실적 상승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바로 토너먼트의 경쟁 방식이 도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토너먼트의 경쟁방식은 위로 올라갈수록 자신들이 조직에 올려준 수입에 비해 엄청난 연봉을 제공받는 시스템이다. 사장으로 하여금 그의 월급보다 많은 수익에 공헌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현실의 경쟁은 그런 모습이 아니다. 옳고 그름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만나는 현실이 그렇다는 말이다.
토너먼트의 경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최초의 승리가 중요하다. 아니 많은 부분을 결정하기도 한다. 토너먼트의 하위 단계를 넘어서게 되면 다른 탈락자에 비해 많은 이점을 안은 채 경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먼저 올라선 사람들의 교만이나 방심으로 실패하는 수도 있지만, 위에 올라선 사람들은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늘 경쟁우위에 서게 된다. 테니스 토너먼트에서 시드를 받는 꼴이다. 삶이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 경쟁 자체가 불평등을 만들어 낸다.
<아웃라이어 Outliers>의 말콤 글래드웰은 성경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마태복음 효과라 부른다. 성경이 가리키고자 하는 내용과는 조금 의미가 다르지만 마태복음 25장 29절에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토너먼트의 경쟁은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경쟁에 관한 교훈을 던져준다. 첫째는 우리가 어디서 시작하고 성장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토너먼트에서 경쟁하느냐가 미래의 우리 성공에 커다란 영향을 줄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둘째로 처음의 성공이 그것이 우연이든 아니든 점차 더 큰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점이다.
왕따 게임
영국에서 시작된 ‘윅키스트 링크(Weakest Link)’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윅키스트 링크’를 직역하면 ‘가장 취약한 연결고리’가 된다. 이 프로그램은 2000년 방영 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미국과 호주 등지에서도 유사한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끝나지 않고 2024년 4월 미국 NBC TV에서 다시 부활한다고 한다.


원래의 퀴즈 프로그램은 8명의 참가자로 시작한다. 사회자는 참가자에게 차례로 문제를 던진다. 문제에 제대로 답을 하면 팀 전체의 주머니에 돈이 적립된다. 8명에게 모두 질문이 돌아가면 한 라운드가 끝난 것이다. 문제를 맞추면 전체의 최종상금은 올라가고 틀리면 그렇지 않다. 개인별 상금은 따로 없다. 문제를 틀렸다고 해서 탈락하지는 않는다.
그런 다음 8명이 공개적으로 탈락할 사람 한 명을 지목한다. 출연자들 스스로 가장 문제를 못 풀어서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을 지명해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을 탈락시키는 방식이다. 물론 다수결이다. 공개투표를 통해서 내보낼 사람의 이름을 쓰면 사회자는 왜 그를 지목했는지 묻기도 한다. ‘당신의 연결고리가 가장 약하군요. 잘 가요’ (You’re the weakest link. Good bye!)라는 사회자의 멘트는 영국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2명이 남을 때까지 매 라운드 마다 공개투표로 ‘윅키스트 링크’를 뽑고 마지막 2명은 양자대결을 해서 남은 한 명이 모든 돈을 차지한다.
다름아닌 토너먼트 게임이다. 한 명씩 탈락시키면서 모두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탈락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 탈락의 법칙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합리적이라면 실력이 좋은 사람은 팀 전체를 위해 남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탈락의 법칙은 말 그대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다. 즉 다른 사람과 연결부분이 가장 약한 사람부터 탈락하게 되어 있다.
한 회 방송에 함께 출연하는 출연자들이 사회자가 내는 문제를 많이 맞출수록 최종 승자가 가져갈 수 있는 상금이 올라가게 되었다. 따라서 자기 차례에 문제를 잘 맞추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동료 출연자들의 미움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를 이용해 사회자는 일정 시간이 지날 때마다 출연자들에게 이른바 윅키스트 링크의 이름을 적어 보여주도록 한다.
실제로 낮은 단계에서는 실력이 없는 사람이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실력 있는 사람은 나의 적수가 된다. 따라서 참가자가 3, 4명으로 압축될 때까지 쫓겨나가는 사람들은 문제를 잘 못 풀어서 돈을 적립시키지 못한 사람이 된다. 그런데 그 후에는 오히려 문제를 가장 잘 푼 우승후보자가 투표로 쫓겨나간다. 게임의 초반에는 돈을 많이 적립하는 것이 참가자의 관심사이다. 그런데 선수가 압축되면 최종 라운드의 양자대결을 생각하게 된다. 양자대결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실력이 없는 사람 즉 약자와 같이 최종 라운드에 남고 싶어 한다. 즉 적립금을 늘리는 것보다 이 단계에는 자신이 적립금을 차지하는데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말이다.
마지막에 3~4명 정도가 남는 상황이 되면 이들은 상금을 가져갈 사람을 가리는 마지막 승부에서 자신에게 부담스러운 상대가 될만한 실력 있는 사람을 오히려 윅키스트 링크로 꼽아 내쫓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고리가 약한 사람은 보통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능력이나 실력이 뛰어나다고 가장 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 실력만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유대관계가 탈락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내 상대가 아니며 또 모두 상대할 필요도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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