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법칙: 누가 나보고 넘버 쓰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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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넘버 3>에는 삼류 깡패 태주(한석규)가 주인공이다. 그가 제일 싫어하는 말은 자신 보고 넘버 3라고 부르는 것이다. 태주의 친구는 그 정도면 성공한 것이라고 위로하지만, 그는 자신이 넘버 2가 아닌 것이 늘 불만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태주도 넘버 2와 넘버 3가 가져가는 몫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리그가 되었던 토너먼트가 되었던 경쟁이 지속되면 늘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바로 불평등이다. 이기고 지는 과정이 계속되면서 전체적으로 보면 늘 끊임없는 변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그 변화는 항상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불평등에도 규칙이 있다는 말이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바로 경쟁 때문이다.  

오늘날의 경쟁은 전장(戰場)이 아닌 시장(市場)에서 벌어진다. 시장이라는 단어를 만나면 어떤 영상이 먼저 떠오르는가? 새벽시장에서 만나는 부지런한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 내는 분주한 모습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구수한 인간미가 넘치는 재래시장의 소란스러움이 생각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자체가 아름답고 정겹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저변에는 늘 경쟁이라는 것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넓은 의미로 보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모든 곳이 시장이다. 그 시장에서 우리는 서로 협력도 하지만, 늘 경쟁을 하고 있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존재하는 정글처럼 말이다. 더구나 그 시장은 매우 불공평한 곳이다. 아니 세상 자체가 불공평하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이 세상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으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온통 불평등한 것으로 가득 차있는 현실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특별히 토너먼트의 경쟁에 참여한 사람들이 낮은 단계에서의 보잘것없는 수입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자신의 역할을 하는 이유는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갈수록 부와 권력이 조금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더구나 한 번 상위단계에 올라가면 그 명성만으로 시드자리를 꿰차고 앉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단 한 곡의 히트곡을 가지고 평생 방송계에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정치인도 사업가도 그리고 작가도 한번 유명인이 되면, 나름대로 일자리가 보장된다. 자신들이 속한 토너먼트에 수많은 참여자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여하튼 그런 불평등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동기부여의 수단이 되고 있는 셈이다. 결국 그 결과 불평등은 더욱 심화된다.

문제는 이런 불평등이 자연의 법칙처럼 우리의 시장과 자연에 늘 존재하는 현상이며 규칙적이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불평등의 규칙성

그 규칙성을 가장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 80대 20의 룰이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80:20룰은 이탈리아의 파레토라는 경제학자가 이탈리아 인구의 20%가 80%의 땅을 가지고 있는 현상을 보고 이를 일반화하여 만들어 낸 법칙이다. 불평등에 관한 최초의 법칙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전체 고객의 20%가 백화점 매출의 80%를 올려주고, 유능한 직원 20%가 회사 전체업무의 80%를 해결하고, 범죄자 20%가 80%의 범죄를 저지르는 것 등이 그런 법칙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회와 자연에 나타나고 있는 많은 현상을 이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80:20의 규칙성은 우리가 만나는 불평등 법칙의 일부분이거나 어림치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대충 그런 정도의 수치라는 말이다. 우리는 이제 복잡계 과학자들 덕분에 이 불평등의 법칙이 ‘거듭제곱의 분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돈이 되었던 권력이 되었던 또는 영향력이 되었던 그 크기는 순서에 따라 몇 개가 아니라 몇 배의 차이가 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정치권력 2위의 힘이 10이라면 권력 1위가 가지는 힘은 11나 12가 되는 것이 아니라, 10의 배수인 20, 30, 또는 40처럼 커진다는 말이다. 또한 권력 1위가 한 명이라면 2위는 2명, 3위는 4명 4위는 8명처럼 그 숫자는 배로 많아지게 된다. 그래서 아주 부자는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지만 그 숫자는 적고 아래로 갈 수록 사람들이 가지는 재산은 몇 분의 1로 줄어드는 반면 그 숫자는 몇 배씩 늘어나는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1997년 방영된 우리 영화 <넘버 3>에서 주인공 한석규는 자기보고 넘버3라고 하면 화를 내면서 “누가 넘버 3래, 나 넘버2야 넘버2”라고 우기는 것이다. 한 마디로 한 단계 내려가면 자신의 몫이 몇 분의 1로 줄어든 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말이다.

이를 좀 더 쉽게 보기 위해 미국의 경제학자 로렌츠(M.O.Lorenz)가 고안한 ‘로렌츠 곡선’을 살펴보기로 하자. 로렌츠 곡선은 한 사회의 구성원을 소득이 가장 낮은 사람으로부터 높아지는 순서에 따라 차례로 배열한다고 할 때, 전체 소득 가운데 하위 몇 %에 속하는 사람들이 몇 %의 부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파악해 연결해놓은 곡선이다.

로렌츠곡선

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왼쪽에서부터 시작하여, 소득이 가장 낮은 사람부터 줄을 세운다고 해보자.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부의 정도를 나타낸다고 가정하자. 각 개인의 부가 아니라, 줄에 서있는 모든 사람의 부를 합한 숫자를 적는 것이다.  만약 전체 인구의 10%까지 줄을 세웠다면, 그 10% 인구가 가지고 있는 부의 정도가 맨 마지막 사람 머리 위에 쓰여져 있게 된다. 점차 부자들이 줄을 서면서 부의 크기는 커져가고, 마지막 부자가 이 행렬에 참가하면서 부는 100%가 되고 사람들의 행렬도 끝난다. 이런 모습을 그래프로 그려놓은 것이 로렌츠 커브다. 한 마디로 누적분포다.



가령 하위 10%의 사람이 국가 전체가 생산한 부의 10%를, 하위 20%에 속한 사람들이 20%를, 30%에 속한 사람들이 30%를 가져가는 식으로 완벽하게 소득이 균등 분배된다면 개인소득의 누적 분포는 그래프의 가운데를 통과하는 45도선이 될 것이다.


반면에 한 사회의 모든 재산을 한 사람이 가지고 있다면 로렌츠 그래프는 L자를 좌우로 바꾸어 놓은 형태를 보이게 된다. 이를 그래프로 표시하면 위의 표 와 같다. 이 그래프에 현실에서 얻어지는 통계로 도출된 로렌츠 곡선을 그려서, 이 곡선이 대각선에 가깝게 위치하면 할수록 평등한 소득분배가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고 멀어질수록 불평등도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로렌츠 곡선 중 80:20의 분포


위의 그래프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80:20의 룰을 로렌츠 곡선으로 나타내 보인 것이다. 잘 알다시피 80:20의 룰이란 20%의 땅부자가 80%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뿐 아니라, 20%의 주요고객이 80%의 매출을 올리며, 20%의 범죄자가 80%의 범죄를 저지르며, 20%의 일 잘하는 직원이 80%의 일을 한다는 불평등에 관한 경험의 법칙이다.

실제로 많은 나라의 로렌츠 곡선이 이런 곡선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미국의 로렌츠 곡선은 80:20의 룰보다는 조금 나은 분포를 보여주고 있지만, 크게 보면 80:20의 분포와 유사하다. 스웨덴 인도네시아와 같은 나라는 상위 20%의 부자가 약 80%의 부를 가지고 있다. 캐나다 독일 노르웨이 프랑스 등은 상위 20%가 약 70%의 부를 한국, 호주 중국 아일랜드 일본 등의 국가는 상위 20%가 약 60%의 부를 소유하고 있다.

반면 전 세계적으로 보면 부자 1%가 전세계 부의 40%를 가지고 있으며 지구촌 인구 10%가 지구상에 있는 부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85%의 부를 가지고 있다. 80대 20의 법칙에도 못 미치고 있을 정도의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 회사의 소득은 어떤가? 미국의 경우 2000년 대 초 CEO와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봉은 약400배의 차이가 났다고 한다.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메릴린치나 리먼브라더스의 CEO들은 회사는 망하게 했으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연봉과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 메릴린치 CEO인 존 테인은 지난해 12월 에 선임되면서 2500만 달러 즉 300억이 넘는 봉급을 받았고, 자신의 회사를 결국 파산신청으로 몰아 넣은 리먼브라더스의 딕 풀드는 800억이라는 돈을 연봉으로 챙겼다.

스포츠계나 연예계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기자가 한 회 촬영하며 받는 돈은 보통 40만원 정도다. 하지만 배용준은 태왕사신기 1회에 1억이 넘는 돈을 받았고 에덴의 동쪽에 출연한 송승헌은 회당 7000만원의 출연료를 받았다고 한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최고연봉자는 부자구단 첼시의 프랭크 램퍼드다. 그는 2008년 시즌을 포함, 그 후 4시즌 동안 연봉으로 벌어들이는 수입만 4천만 파운드 약 900억 원이라고 한다. 혼자서 프리미어리그 1개 클럽의 연봉에 버금가는 금액을 혼자서 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1994년 한 해 동안 1억 6,500만 달러를 벌었다. 그에 비해 능력면에서 크게 뒤 떨어지지 않는 다른 영화감독들은 그에 비할 수 없을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아직도 수많은 감독들이 배가 고픈 생활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불평등이 시장경제뿐 아니라, 어느 사회 더 나아가 자연현상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계획경제라면 권력의 불평등이 나타날 것이다. 한 산업에서는 기업의 크기나 매출에 있어 불평등이 이렇게 나타난다. 인터넷에서는 사이트에 접속수가 이런 분포를 하고 있다. 연예인이나 스포츠계 그리고 금융계의 소득에서도 이런 불평등이 나타난다. 시장에는 늘 이렇게 두 명의 거인과 아주 많은 작은 난쟁이들이 존재하거나 아예 두 명의 거인이 다투는 가운데 단 하나의 소인이 간신히 버티고 있는 정도다.


Comments

“불평등의 법칙: 누가 나보고 넘버 쓰리래?”에 대한 5개의 응답

  1. 공감이가는 글이네.
    자주 볼수 있으면 좋겠어요.

  2. 공감이가는 글이네요.
    자주 볼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1. 이런 곳에서 소통하다니… 영광입니다. ^^

  3. 넘버쓰리 넘버투 비교 신선합니다. 파래토 법칙이 잘 해당되는 사례네요

    1.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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