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는 언어는 크게 고립어, 교착어, 굴절어로 나눈다. 단어가 생소하지만 개념은 다음과 같이 단순하게 정리해 볼 수 있다.
고립어 = 하나의 단어가 변하지 않고 레고조각처럼 조립하면 문장이 만들어 진다.
교착어 = 단어의 일부분이 부품처럼 교체되면서 문장을 구성한다.
굴절어 = 문장에 따라 원 단어가 비교적 휘든 꺾든 하면서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이런 분류를 언어의 형태론적 유형에 따른 분류라고 한다. 어렵게 들리지만 여기서 ‘형태’란 단어의 형태를 가리키며 결국 ‘단어를 만들고 사용할 때 변하는 모습’에 따라 언어를 분류한다는 말이다.
세계의 모든 말이 기본적으로 형태소(Morpheme)라고 하는 의미를 가진 말의 최소단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단어는 정의한 바와 같이 형태소를 조합하여 만들어진다. 영어를 예를 들면 ‘unreachabel’이라는 단어는 세 개의 형태소로 구성되어 있다.
형태소는 뜻을 가지고 있는 가장 작은 말의 단위이기 때문에 더 이상 쪼갤 수 없으며, 형태소를 쪼개면 의미가 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 사과 ’ 는 더 이상 형태소로 나눌 수 없는 하나의 형태소로 이뤄져 있다. 사과를 사와 과로 나누게 되면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 ‘사과나무 ’ 는 사과와 나무 이 두 개의 형태소가 결합된 단어이다.
이 지구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말을 형태에 따라 분류한다는 말은 바로 이 형태소를 어떻게 결합하고 또 활용하는가를 기준으로 나눈다는 말과 같은 셈이다. 세계의 언어는 일단 단어를 조립하는 방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한 단어가 하나의 형태소로 이뤄져 있는 경우 고립어라고 하고 반대로 한 단어에 다수의 형태소가 있는 언어를 포합어라고 한다. 형태소에는 과거 현재 미래와 같은 시제를 의미하는 형태소도 포함되어 있다.
중국어는 대표적인 고립어이다. 반면 한 단어가 거의 문장수준의 의미와 길이를 가지고 있는 마오리족이 사용하는 언어(Te Reo Māori)등이 포합어이다. 사실 많은 언어가 이 포합어에 속한다. 대부분의 언어가 위에서 예를 든 ‘unreachable’과 같이 한 개이상의 형태소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고립어(Isolating Languages)
고립어는 단어 자체가 하나의 형태소로 만들어진 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특징은 각기 다른 특성의 문장을 만들 때도 이 형태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단어가 일종의 레고의 한 조각과도 같으며 문장을 만드는 것은 이 레고조각을 조립하는 작업과도 같다. 다시 말해 문장을 만들 때 단어에 어떤 변화를 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고립어는 따라서 단어 자체의 변화가 아니라, 문장에서의 위치에 따라 의미가 변하게 된다. 중국어가 그렇다. 예를 들어 “我爱他.”, “他爱我.”의 경우 어순만 바꾸어 “나는 그를 사랑한다.” “그는 나를 사랑한다.”라는 표현을 만들 수 있다. 우리 말처럼 조사가 붙거나 동사의 끝이 변하지 않는다. 당연히 시제나 인칭에 따른 동사의 변화도 물론 없다. 그래서 고립어는 처음 배울 때는 쉽다. 단어만 알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대가로 해석할 때 많은 고뇌를 해야 한다.
포합어
두 개 이상의 형태소로 만들어지는 단어를 사용하는 말을 모두 포합어라고 부를 수 있다. 가장 복잡한 포합어로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이 사용하는 마오리어를 예로 든다. 아래의 긴 단어는 뉴질랜드 북섬에 위치한 한 언덕 이름이다.
타우마타와카탕이항아코아우아우오타마테아투리푸카카피키마웅아호로누쿠포카이웨누아키타나타후Taumatawhakatangihangakoauauotamateapokaiwhenuakitanatahu
“타마테아라는 큰 무릎을 가진 등산가가 여행을 하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피리를 불었다” 언덕이라는 말이다. 이런 단어를 어떻게 기억하단 말인가?
하지만 언어를 배울 때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단어를 가지고 문장을 만들 때 단어가 변하느냐 아니냐 그리고 변한다면 얼마나 변하느냐는 사실에 에 달려있다. 그래서 이 포합어는 단어를 가지고 말을 만들 때 단어가 변하는 방법에 따라 굴절어와 교착어로 분류하는 것이다. 이 분류의 기준은 “단어의 구성요소인 형태소가 문장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가 반대의 시각에서 보면 얼마나 원 모습이 유지되는 가?”이다. 문장에서 형태소가 비교적 잘 보이면 교착어 분명하지 않으면 굴절어라고 할 수 있다.
굴절어(Inflectional language)
문장에 따라 단어의 변화가 많은 언어들은 굴절어(屈折語, Inflectional language)에 속한다. 굴절이란 단어는 변한다는 말이다. 굴절어는 보통 성(性),수(數),격(格), 인칭, 시제, 상(相), 태(態), 법(法),양상 등등의 문법 범주에 따른 어형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영어의 다음 표현을 보자.
I love him.
He loves me.
주격일 때는 I, He인데 목적격일 때는 me, him으로 변화한다. 이런 것이 굴절이다. 영어의 이런 변화는 사실 몇 개에 불과하다. 반면 독일어와 라틴어 경우에는 성(性),수(數),격(格)에 따른 단어의 변화는 영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복잡하다.
영어 학습자로서 다행스러운 것은 영어가 굴절어에서 진화하여 지금은 고립어에 속한다는 점이다. 불규칙한 동사 들과 대명사의 격에 흔적이 남아 있지만, 단어의 변화없이 단어 그 차제를 레고조각처럼 조립하면 문장이 만들어 진다는 말이다.
교착어(膠着語, agglutinative language)
위 굴절어와 고립어 중간쯤에 변화가 많기는 하지만 비교적 규칙에 의해 움직이는 교착어가 있다. 명사와 동사 모두 문장에서 변하기는 하지만 원 모습 즉 형태소가 분명하고 변화자체도 규칙적이라는 말이다. 학문적으로는 명사류의 굴절을 곡용(曲用), 동사의 굴절을 활용(活用)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사용하지만 결국은 변한다는 이야기다.
굴절어는 같은 의미의 단어가 아예 다른 단어처럼 변하는 경우가 많지만, 교착어는 앞 뒤가 살짝살짝 변하면서 세밀한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다. 일본어와 우리말이 그렇다.
위의 예문 “한나가 책을 보았다.”라는 문장에서 명사의 경우 ‘가’와 ‘을’이라는 조사에 의한 변화가 있고 ‘보다’라는 동사의 경우 과거시제를 나타내는 ‘았’이라는 어미변화를 통해 말이 만들어지고 있다. 변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달라지지는 않는 언어가 교착어라는 말이기도 하다. 또 굴절어의 경우와 비교할 때 형태소의 결합이 느슨하여 단어의 어근 즉 원래의 형태소의 모습이 남아있다.
영어와 우리말
이제 우리의 주요 관심사인 영어와 한국말을 비교해 보자. 한국말은 교착어다. 반면 영어는 한때 굴절어였다가 현재는 고립어화 된 언어다. 물론 굴절어의 흔적과 교착어의 요소가 공존한다.
영어에서 굴절어의 흔적은 불규칙 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I’와 ‘me’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동사에 꼬랑지처럼 붙는 과거형 ~d와 삼인칭 동사에 붙는 ~s는 교착어의 변화와 유사해서 규칙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동사의 형태와 활용에 있어 굴절어와 교착어의 흔적이 있지만 영어 문장을 만들 때 단어가 변하기 보다는 위치에 따라 의미가 전달되는 중국어와 같은 고립어의 특징이 더 많은 것이 오늘날 영어이다.
사실 영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며 기본적으로 굴절어였다. 하지만 여러 갈래의 단어들이 모여 영어 자체가 재편되면서 단어 즉 어휘 중심의 언어로 고착화된 듯하다. 단어 중심의 언어가 바로 고립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학습자의 입장에서 보면 보통 다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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