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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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인 기원전 655년, 진(晉)나라는 괵 나라를 공격할 야심을 품는다. 진 나라와 왕은 대부 순식에게 귀중한 예물을 준비시킨 뒤에 진 나라와 괵 나라의 중간에 위치한 우 나라의 왕에게 그곳을 지나갈 수 있도록 요청을 한다. 이에 우 나라 왕 우공은 진나 라의 진헌공이 제시한 보물이 너무 탐이 나 길을 빌려주겠다고 허락하고 만다. 하지만 우 나라의 신하 궁지기가 우공에게 이렇게 간언한다.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나라와 괵 나라는 이웃으로 마치 입술과 치아 같은 관계입니다. 옛 속담에도 수레에서 판자와 바퀴는 서로 의지하고,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輔車相依, 脣亡齒寒)? 이것은 우 나라와 괵 나라를 두고 한 말입니다.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쪽도 지탱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만약 괵 나라가 진 나라에게 점령된다면 우 나라도 홀로 살아남기 어렵게 됩니다.”


그러나, 우왕은 재물에 눈이 멀어 진헌공에 길을 빌려주었다. 잘 알다시피 진 나라는 괵 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 나라까지 침략하여 우왕을 사로잡는다. 결국 우왕은 예물을 챙기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나라도 뺏기고 말았다.


공자가 편찬한 〈춘추 春秋〉의 해설서인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고사성어로 잘 알려진 이야기다. 순망치한이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이니, 독불장군이 없다는 이야기다. 혼자서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해석을 해볼 수도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당장의 이익에 집착하지 말고 궁극적인 경쟁의 목표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우 나라의 왕 우공은 당장의 예물에 눈이 멀어버려 미래에 자신에게 미칠 손해를 놓치고 말았다.

2007년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경영자를 대상으로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가장 힘이 된 습관’을 사자성어로 물은 결과 응답자 중 19.7%가 ‘순망치한(脣亡齒寒)’을 꼽았다고 한다.  조사를 위한 설문의 표현인 ‘힘이 되는 습관’이란 결국 경쟁력을 의미한다. 그 질문에 기업 최고경영자(CEO) 5명 중 1명 가량은 사람과의 인연이 소중하다고 답변한 것이다.

사실 누구도 혼자 스스로 성공한 사람은 없다. 눈에 보이지 않고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성공한 사람 뒤에는 늘 그들과 함께 해온 그림자 같은 사람들이 있다. 경쟁에 승리한 사람이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렇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보통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아마도 인간에게 있어 가장 비합리적인 생각이 이런 생각일 것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나에게도 일할 기회가 생기고 잘하면 추수 때 쌀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나에게 손을 내밀 확률이 줄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고 질시하기까지 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질문은 고사성어에 한정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더 일반적인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연하게도 LG경제연구원이 2007년도에 발표한 CEO리포트에는 명품 CEO의 조건이 나온다. 그 중 가장 첫 번째 조건은 실력이나 능력이 아니라 뜻밖에 ‘인간미’다. 이 보고서는 “경영자에게 있어 진정한 인간미는 배려, 칭찬, 겸손의 3박자를 고루 갖출 때 의미가 있다”고 전한다. 실제로 성공한 많은 CEO가 말하는 덕목 1위는 늘 ‘배려’다. 다시 말해 사람과의 좋은 관계가 경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말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고자 경쟁에 나선다. 언급하였듯이 경쟁의 본질은 자원의 부족에 있다. 하지만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원을 창조해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혼자서 이룬 것이 아니며, 혼자서 세상이 원하는 가치를 만들어 내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불평등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는 80:20의 법칙도 결국은 상대가 있기에 나타나는 결과다.

이 법칙을 이용해 <80:20룰>이라는 자기계발 책으로 정리한 리처드 코치는 따라서 20에 집중하고 80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100명의 직원 중 일 잘하는 사람 20명에 더 관심을 가지고 80명은 해고 시키거나 다른 쪽으로 방향을 전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잊은 것이 하나 있다. 20명만 남겨놓으면 그 중에 또 다시 80퍼센트인 16명이 뒤쳐질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경쟁에는 늘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지만, 사실은 최초의 승리자 20명도 80명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점을 쉽게 간과해 버린다. 물론 뒤쳐지는 그룹의 사람들도 더 나은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업에 있어 경쟁도 중요하지만, 협력 역시 그 못지 않게 중요한 법이다.

경쟁과 협력이 적절이 조화된 조직이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조화를 이루는 행복한 균형(Happy Balance)을 모른다. 사실 세상에 완전한 선이나 완전한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찾는 답은 늘 그 중간 어디 쯤에 자리잡고 있다. 그것을 알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다.

누군가와 경쟁하고 또 다른 누군가와 협력한다. 오늘은 협력하지만 내일을 경쟁할지도 모른다. 수시로 삶이라는 게임의 룰이 바뀌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경쟁은 단순하게 남을 이기는 게임이 아니다. 따라서 경쟁력 역시 단순히 이기는 힘이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모든 분야에서 이기는 것이 게임의 본질이 아니기도 하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이겨야 할 경쟁이 무엇인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우리가 가장 흔히 듣는 이야기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후 온갖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성공학이라 불리는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두 번째로 인기가 있는 이야기는 성공했지만 불행한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이런 종류의 주인공들은 주로 영화나 소설에 등장한다. 반면 능력도 있고 노력했지만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디서도 듣기가 어렵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실 늘 정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흔히 듣는 이야기는 명문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과외는 한 적이 없고 학교 공부에 충실했다고 하는 말이다. 기업인의 성공 스토리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성공한 기업인은 한 우물을 부지런히 팠고, 그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은근히 미래를 읽을 줄 아는 능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늘 거의 패자라는 낙인이 찍 일 정도로 실패를 경험한 후 패자에서 승자로 극적인 전환을 만들어 낸다. 그 기적 같은 얘기가 책이나 영화의 단골소재로 쓰인다.

대부분 이런 이야기는 과장되거나 포장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 그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그들과 똑같이 살면서 실패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은 그들의 이야기가 성공의 공식은 아니라고 말해 준다. 잘 보아주어도 성공의 하나의 요인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세상에는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한 사람이 늘 더 많기 마련이다. 더구나 토너먼트의 경쟁이 경쟁의 기본 형태라면 성공의 기준을 토너먼트 피라미드의 위로 높게 잡을수록 실패자는 더 늘어나게 되어 있다. 더구나 요즘은 성공을 단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하기로 작정한 듯하다. 그 기준은 바로 돈이다. 이런 ‘성공 스토리’는 더 많은 패배자를 만들어 내는 요인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성공했지만, 불행한 사람들을 양산할 수도 있다. 돈을 기준으로 한 단 하나의 토너먼트에서는 필연적으로 소수의 승리자가 있기 마련이며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로 경쟁한 사람이 더 많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은 모든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기도 하지만 무지한 일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잘하는 것이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불필요하게 더 많은 적을 만들 뿐이다. 또 비록 경쟁을 해야 하는 상대라고 해도 모든 경쟁을 이길 필요는 없다. 한 전투에서는 패배하더라도 궁극적인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승자가 된 예는 너무도 많다. 로마는 한니발에게 자신의 텃밭이 이탈리아 반도에서 처참하게 짓밟히고 만다. 하지만 로마의 스키피오는 한니발의 근거지인 카르타고를 직접 공략함으로써 전투에는 졌지만 전쟁에서는 승리를 쟁취하였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돈과 지위에 달려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오직 그 목표를 향해 죽으라고 달려가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인생에 승패의 법칙만 존재한다. 실제로 우리는 셀 수없이 많은 토너먼트에서 다양한 종류의 경쟁을 하고 있는 데도 말이다. 돈이 목표라면 대부분의 우리는 패배자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식의 경쟁만이 존재할 때 우리는 신경심리학자인 폴 페어솔(Paul Pearsall)이 말하는 ‘성공중독(Toxic Success Syndrome)’에 걸리고 만다.

‘성공 중독’은 우리를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며,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적개심을 품게 한다. 항상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증과 부족한 것만 보게 하는 실망감으로 결국은 우울증에 빠져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혼자 성공할 수 있는 사람도 없지만, 그 성공을 혼자 즐기면서 만족하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한 승리는 자신 스스로 만족하며 감사할 줄 아는 것이며, 그 승리의 기쁨을 주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을 때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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